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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연 Feb 04. 2024

신체적 배고픔보다 영혼 허기짐을 채워주는 이가 고맙다.

스치는 인연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한다. 

어제는 테트리스처럼 일정이 꽉 들어찬 날이었다. 테트리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말 감사하게도 다음에 내려올 퍼즐을 내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퍼즐은 1월 2일부터 시작한 유산소 운동이다. 오늘 있을 강의 준비로 어제 새벽 2시가 다 되어 잠들었던 지라, 햇볕 쨍한 날 아스팔트위에 늘어붙은 껌처럼 침대에서 질척거리며 좀 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7시가 다 되어서야 헬스장에 발도장만 찍고 오자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나를 집 밖으로 내몰았다. 역시 운동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침대에서 신발장까지 가는 시간이다. 막상 도착하니 1시간 동안 7킬로를 걸으며 선방했다. 


집에 돌아오니 둥지에서 먹이달라 삐약거리는 새처럼 반가워하는 딸내미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 최애 간식 떡꼬치를 주문받아 후딱 만들어 대령하였다. 


그후 땀으로 뒤범벅인 나를 씻긴 후 냄새나던 몸에 산뜻한 향을 선물했다. 오늘 10시부터 1시반까지 만날 친구들은 내가 멘토코치로 일하고 있는 월드비전에서 치열한 선발전을 거쳐 중1부터 현재 고2가 귀한 친구들이다. 오늘 친구들과 함께 주제는 셀프리더십과 셀프브랜딩이었다. 사실 나에게도 필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할 있었다. 


누가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고 하였는가. 이 아이들 눈에서 반짝이는 빛을 한번이라도 보았다면 반짝임의 대명사로 별을 꼽지 못할 것이다. 


강의를 마치고 버스로 이동하는데 어떤 손님이 기사님께 오늘 4시부터 밤새 비가 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깜짝 놀라 처음 보는 그 아주머니에게 '오늘 비가 온대요?' 라고 물었더니 낯선 나에게 너무도 친절하게 네이버 날씨를 보여주시며 우산을 챙기라고 알려주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도 아들이 이야기해줘서 알았다고 서로 이렇게 돕는 거 아니냐고 웃음 지으셨다. 


마침 환승 지하철역에서 우산을 살 수 있었다. 지하철에 올라타 2시부터 내가 애정하는 강사님 성장발표회를 마음다해 응원하며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귀한 시간에 나를 초대해준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신사역에 도착해 종종 걸음으로 장소로 향했다. 오늘 모임은 함께 글을 쓰는 분들이 서로의 글에 대해 나누는 라라크루 합평회 시간이었다. 합평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작품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평가하는 모임'이지만 내가 합평회를 가는 목적은 조금 다르다.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궁금해서 간다. 나는 종이책보다 사람책을 좋아한다. 


작품만 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글을 쓴 사람을 안다면 그 글에 몰입할 수 있는 깊이는 감히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글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작가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나는 정말 즐겁고 기대된다. 가족사진, 부모해방일지, 강과 울음, 나는 누구인가, 잡동사니, 정거장, 확률보다 인연, 안달루시아, 2023 결산, 시장, 복권, 닭, 기적, 꿈 등 여러가지 주제로 한계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 글을 쓴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다는 것은 나에게 더 없이 좋은 선물이다.  그리고 엊그제 선물 같은 '고부공감' 책 후기로 나를 아이처럼 엉엉소리내서 울게 만들었던 늘봄유정 작가님을 운좋게 마주보고 앉을 수 있어 정말 감사했다.


[출처:하민영 작가님 인스타]

어제가 더 감사한 건, 많은 작가님들께서 내가 지난 달 출간한 '고부공감'이라는 책을 준비해오셔서 싸인을 요청해주셨다. 나는 안다. 책을 실제로 구입하고, 그 책을 챙겨 그 책의 작가에게 들고 와주는 마음은 보통 애정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ㅠㅠ 그렇기에 정말 마음담아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그렇게 감사를 표현해도 부족하고 내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에 죄송함을 느낄 뿐이다.


합평회를 뒤로 하고 아이들이 있는 집을 향해 부랴부랴 향한다. 초행길이라 어디에서 내려야하는 집중

하고 있었지만 처음에 잘 못내려 이미 떠나가는 버스를 부여잡고 다시 갔음에도 결국 잘못내렸다. 


어둠으로 가득 찬 길에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네이버 지도앱을 켜 환승할 수 있는 정류장을 향해  가로등도 없는 좁은 골목길을 헤맸다. 눈 앞에서 내가 타야할 버스가 떠나는 뒷모습을 힘없이 바라보며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쓰러질 기운조차 없어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낮에 사둔 우산에 몸을 간신히 맡기고 다시 걸었다. 우산이 없었다면 노트북과 외장하드가 든 가방을 붙잡고 안절부절했을 것이다. 낮에 만난 그 아주머니가 참 고맙다. 


내가 도착한 버스정류장에는 내 팔뚝보다 아주 조금 굵은 기둥에 a4용지만한 초록색판에 버스정류장이라고 쓰여있었다. 몸을 좀 기대 힘을 쭉 빼고 있고 싶었지만 기대면 기둥이 뿌리째 뽑혀버릴 것 처럼 힘없어 보였다.  정류장은 삭막한 공장같은 곳에 덩그라니 있었다. 뒤에 그 공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초록색과 갈색이 아기자기하게 숲처럼 꾸며진 유기농 빵집이 있었다. 가게가 참 예쁘다. 이런 외딴 곳에서 장사는 될까. 오지랍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사랑해라는 말 대신 바빠도 밥은 먹고 다니라는 말로 나에게 애정을 전하는 엄마와 통화를 마친 후 넋놓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인데 어둡고 공장으로 둘러쌓인 삭막한 곳에서 갑작스런 낯선 스킨십에 깜짝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눈이 동그래져 뒤를 돌아보았다. 


가녀린 여인이 동화속에서나 볼 듯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가게를 마감하며 창밖에 서있는 내가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유기농 빵이라 건강한 맛이고 맛있다고 오늘 먹어보라는 인사를 전해주었다. 


얼떨결에 빵을 받아들고, 제가 이걸 받아도 되냐고 묻자, 당연하다며, 맛있게만 먹어달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차례하니 분은 그정도는 아니라며 손사레를 치며 돌아섰다. 분이 오기 전까지는 칠흙같은 어둠속에 핀조명이 나를 간신히 비추고 있는 같았다. 분의 등장뒤에는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 기분이었다. 


사장님은 알랑가 모르겠다. 사장님께서 오늘 주신 빵이 아니라 내가 다시 힘낼 무적의 에너지가 되었다는 걸. 분명 모르실 같다. 조만간 다시 찾아가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책도 선물로 드리며 알게 해드리고 싶다. 지금 검색해서 찾아보니 유기농빵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빵집이었다. 


13년 전 결혼 이후 내 일생에서 가장 큰 행사인 북토크를 신도림 씨네큐에서 2월 24일 토요일 4시에 맞춰 준비하느라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며 88열차를 타는 듯한 요즘을 보내고 있다. 


살아가면서 서로를 응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정적 순간에 그게 아니라는 제스츄어를 취하는 사람을 만나면 지하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내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영화관에서 몇백인치의 스크린에 영화배우들이 열연을 할 때, 내 앞에 앉은 키가 큰 사람이 앉아 스크린의 0.00001% 아주 일부분을 가렸을 때 온 신경이 그리로 쏠리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더 많은 것을 보며 즐기는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면 내가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음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 


나를 어둑어둑한 밤 정류장에서 홀로 쓸쓸하게 비 맞지 않게 오늘 날씨를 알려준 버스에서 처음 만난 아주머님과 오늘 함께 서로의 글을 나누며 따숩게 토닥여준 작가님들. 정류장 뒤 예쁜 빵집 '가루씨상점' 사장님께서 환한 미소로 건내주신 빵 덕분에 그동안 헛헛했던 영혼의 허기짐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가루씨 상점 사장님께서 주신 영혼을 채워주는 빵

오늘 아침 주신 빵을 따뜻하게 데워 신체적 배고픔도 충만하게 채울 수 있었고 덕분에 출간후 쓰지 않았던 글도 이렇게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스치듯 만난 인연이 주신 에너지로 오늘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아주. 많이. 고맙습니다. 


▼ 선물같은 고부공감 책 후기 작성해주신 '늘봄유정'작가님 브런치

https://brunch.co.kr/@yjjy0304/965

가루씨 상점 블로그 

범계 건강빵집__일상의 기적꽃x가루씨상점빵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고부공감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

고부공감 - 예스24 (yes24.com)

★살고 계신 지역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주시면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_^

(그리고 저에게 정말 큰 희망이 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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