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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02. 2024

어머니, 우리도 글을 써볼까요?

< 고부공감 - 황영자, 권세연 >

사랑하는 어머니

처음이네요. 어머님께 편지를 쓰는 일 말입니다. 어머님의 며느리가 된 것이 벌써 스무 해를 한참 넘었는데 카드 한 장 쓴 적이 없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제가 읽은 책 한 권의 힘이 이렇게 크네요.


< 고부공감 >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제가 아는 작가님이 시어머님과 함께 내신 책인데요, 읽는 내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작년 이맘때 어머님의 자서전을 써드리겠다고 매거진을 시작했는데, 몇 꼭지 채우지 못하고 멈춘 상태였으니까요. 깊은 잠 못 이루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면 잠자리가 좀 편해지실까 생각해서 시작했고, 듣기만 하기는 아쉬우니 글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들어드리는 쉬운 일조차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것이 아쉬웠습니다.


권세연 작가님은 시어머니께 참 살갑고 예쁜 며느리이더라고요.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정성을 다하실 테지만요. 매월 달력에 두 번 동그라미를 친대요. 어머니가 장사를 쉬는 매월 1일과 셋째 주 일요일에요. 잊지 않고 안부 전화를 드리기 위함이랍니다.

권세연 작가님의 시어머니이자 공동 저자인 황영자 여사님은 35년 넘게 야채 장사를 하고 계시대요. 세 번의 큰 수술을 받고 온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서도 장사를 접지 않으신 것은 오로지 자식들 때문이라 하시더라고요. 당신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야 자식들도 잘 살 거라는 믿음 때문에요. 그 마음을 며느리는 어찌나 잘 알아주던지요. '기둥, 등대, 장군'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분인 줄 알았던 시어머님의 내면에는 여린 소녀와 엄마에게 응석 부리고 싶어 하는 어린 딸이 들어가 있더랍니다. 그걸 권세연 작가님은 세심하게 알아보았습니다. 글마다 감사, 염려, 존경, 사랑이 가득한 문장으로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있더군요.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당신을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열렬히 응원하는 며느리를 둔 황영자 여사님은 얼마나 든든하실지.... 나는 작가님처럼 어머니의 마음에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어머니의 삶 속 고단함을 어루만져 준 적이 있던가. 읽는 내내 어머님께 한없이 죄송했습니다.


무뚝뚝한 저는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꽤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묵묵히 제 할 일이나 하며 '최소한의 도리'만을 고집했지요. 게다가 철없던 시절, 베베 꼬인 마음으로 살던 적도 있습니다. 늘 섭섭하고 속상한 일 투성이었지요. 함께 한 세월이 쌓이니 그제야 어머니의 외로움, 고단함이 보이더라고요. 누구나 마음속에 저마다의 돌덩이 하나쯤은 끌어안고 사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머님을 보는 제 눈도, 대하는 마음도 편안함에 이르렀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고 끊으려는데, 유난히 깊고 긴 한숨 소리가 들리더군요. 전화기 저편 어머니의 한숨이 전화기 이편 제 심장에 닿아 쾅쾅 두드리는 것 같았어요.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딱 3년만 살다가 자다 죽었으면 좋겠는데..."라는 문장으로 바뀌어 절 쳐대고 있었지요. 수술을 했지만 여전한 무릎 통증, 진통제 몇 알 입에 털어 넣고 청해도 오지 않는 잠, TV와 유튜브를 밤새 틀어놓아야 까무룩 드는 얕은 잠, 그 잠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무릎 통증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긴긴밤의 외로움, 삶에서 해방되고 싶은 소망과 조금은 더 잘 살아내고 싶은 희망 사이의 괴로움.


어머니, 우리도 글을 써볼까요?

황영자 작가님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썼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님께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요? 너무 아까운 연세에 돌아가신 아버님. 외출에서 돌아오는 어머니를 맨발로 맞아주었다는 아버님.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했는데 아까운 사람'이라서 돌아가신 지 25년이 되었는데도 어머니를 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아버님 말이에요.


무슨 말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시겠다면,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시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던 권세연 작가님처럼요. 고부, 부부, 부모자녀 사이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공감이 일어나려면 제대로 된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지요. 그러려면 제대로 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테고요. 공감의 포문을 여는 것은 질문이라는 것을 책 속에 펼쳐진 수많은 질문을 보면서 새삼 느꼈어요. 묻고 답하는 사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깊은 공감이 일어났고, 어머니를 향한 편지를 쓰면서 모녀의 공감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보니, 공감은 타인과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친정어머니께 편지를 쓰던 황영자 작가님이 해낸 것은 자기 자신과의 공감이었습니다.

삶을 매 순간 열심히 살았던 자신을 위로하고,

힘들었지만 잘 버텨준 자신을 칭찬하며,

지금의 행복을 건강하게 오래 누리고 싶은 소망을 응원하는,

'나' 말이지요.


사실 나는 그냥 엄마 품에 안겨 엄마한테
딱 한 마디 칭찬 듣고 싶어.
'우리 영자 잘 살았다.'
(p37)

어머니, 우리도 글을 써보아요.

누구를 향해 썼든 간에 결국은 어머니 자신께 부치는 편지가 될 글을요. 그래서 어머님이 조금은 덜 아프셨으면 좋겠고 조금은 덜 불행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질문을 할게요. 그리고 들어드릴게요.

제 첫 번째 질문은...

지금, 이 순간 누가 가장 보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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