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되새김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an 27. 2024

파스텔빛 세상이 그리울 때

<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 이현영 >

시 쓰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압축된 단어로 독자의 얼어붙은 바다를 내리치는 시인들의 솜씨에 경탄하고는 다. 어쭙잖게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구구절절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에 안 맞았고 무엇보다 깜냥이 안 됐다.


보리 작가님이 늘 부러웠다.

작가님이 올리는 디카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눈은 범인의 눈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단 몇 줄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면 눈만 문제가 아니었다. 내공이 달랐다.


동시를 쓰는 사람은 더 대단해 보였다.

나이라는 장막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아이의 언어로 표현하는 어른이니 말이다. 남다른 시선과 표현력을 가진 보리 작가님의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이 기다려졌던 이유다.


작가님의 책에는 총 60여 편의 동시가 소개되어 있다. 작가님이 제목으로 삼고 싶으셨다는 < 임마 사랑해 >는 나에게도 가장 오래 여운이 남는 동시다. '엄마'가 '임마'로 잘못 쓰였어도 글을 배운 아이가 최초로 쓴 글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순수한 사랑의 깊이가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는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보이고 그 시절의 풍경이 보인다. 세탁소 아저씨, 전학 온 친구, 도시락, 나비, 옥수수, 종이 피아노, 나팔꽃, 대추꽃, 노란 민들레, 옆집 강아지, 배추벌레, 키다리 할머니, 구멍가게 할머니, 인순이 할머니... 파스텔톤 빛깔의 동시를 읽다 보면 금세 마음이 포근해진다.


요즘 아이들은 동시를 읽을까? 동시를 쓸까? 동시에 어떤 내용이 담길까? 궁금해졌다. 회색빛 아스팔트에 회색빛 태블릿, 회색빛 스마트폰, 회색빛 친구 얼굴, 회색빛 하늘이 가득한 동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문득 주변이 온통 회색빛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고개를 돌려 <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을 펼쳐 들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다면 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