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 - 권수호 >
글쓰기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기 전에는 귀찮고 힘들고 하기 싫지만, 막상 올라가면 알게 된다. 내가 왜 산에 올라왔는지. 올라가는 길 중간에 다리가 아프고 땀이 흐르고 그냥 뒤돌아 내려오고 싶지만, 막상 올라가면 말하게 된다. 올라오길 잘했다고. 글쓰기는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 귀찮지만 귀찮지 않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 그리고,
글쓰기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p80)
글을 쓴다는 것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변주곡이다. 빨라져도 느려져도 괜찮다. 여전히 나의 노래는 재생 중이니까. 비록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 속도 조절이 잘 안 되고 중간중간 틀리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 노래는 스스로 끝내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연주자로 나선 내가 이번 생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겠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두드리고 , 연주하고, 듣는 과정이 즐겁다면 중간에 틀리고 음이 어긋나고 어설퍼도 괜찮은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p88)
에세이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다. 물론 일기와 마찬가지로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누군가 읽어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느냐가 중요한 차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꼭 가상의 독자를 생각한다. 머릿속에 가상 인물을 한 명 만들어 놓고 그가 이 글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친구든 가족이든 아니면 동네 아저씨든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