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되새김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an 26. 2024

그렇다면 나도?

<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 - 권수호 >

"보자 보자 보자~~~ 갑을병정..... 자축인묘.... 요즘 글 쓰는 게 영 시들한데?"

"헙!!!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에 쓰여 있어. 뭘 써야 하는지, 왜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지?"

"와! 대박! 제 마음에 들어왔다 가셨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말하는 게 아니야. 우리 수호신령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네."

"그래서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대요? 부적이라도... 써야 돼요? 굿을 해야 하는 건 아니죠?"

"에끼!!! 우리 신령님은 그런 분이 아니야. 어디 함부로!!! 신령님이 네 옆에 앉아서 글감 잘 찾는 돋보기안경을 눈에 딱  대주고 있네. 됐어! 이제 가서 써.  그냥 써. 막 써!!!"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의 1부를 읽고 났을 때의 심정이었다. 뭐지? 권수호 작가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지?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아서 어디에라도 쏟아내야 살 것 같았던 그날의 나와 너무 닮았는걸? 나도 마흔을 갓 넘긴 나이지. 어랏? 나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두 번 했는데?

무작정 쓰다 보니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고 그로 인해 행과 불행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던 나의 삶, 그러다가도 문득 이렇게 무작정 쓰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들어 털썩 주저앉기도 했던 나를 어찌 이렇게 잘 알지? 그렇게 내내 감탄하며 1부를 순식간에 읽었다.


글을 쓰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어떻게 느껴질까를 염두에 두며 1부를 다시 읽어봤다. 작가는 절대 독촉하지 않는다. 글 쓰는 것이 참 쉽다며 희망 고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는 힘들다고 고해성사한다.


글쓰기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기 전에는 귀찮고 힘들고 하기 싫지만, 막상 올라가면 알게 된다. 내가 왜 산에 올라왔는지. 올라가는 길 중간에 다리가 아프고 땀이 흐르고 그냥 뒤돌아 내려오고 싶지만, 막상 올라가면 말하게 된다. 올라오길 잘했다고. 글쓰기는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 귀찮지만 귀찮지 않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 그리고,

 글쓰기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p80)

글쓰기가 힘들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증거를 여기저기에 슬쩍슬쩍 흘려둔다. 그러다가 우아하게 한 마디를 남긴다.

글을 쓴다는 것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변주곡이다. 빨라져도 느려져도 괜찮다. 여전히 나의 노래는 재생 중이니까. 비록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 속도 조절이 잘 안 되고 중간중간 틀리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 노래는 스스로 끝내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연주자로 나선 내가 이번 생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겠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두드리고 , 연주하고, 듣는 과정이 즐겁다면 중간에 틀리고 음이 어긋나고 어설퍼도 괜찮은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p88)


'나도 한 번 글을 써볼까? 아... 그런데 아무리 써도 좋은 글을 쓰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면 그만 쓰고 싶어질 텐데. 차라리 시작을 말까?'라고 고민하고 있을 예비 작가들의 마음에는 어느덧 이런 마음이 싹트게 된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과정이 마냥 즐거운 연주자가 되어보는 게 글쓰기라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은 독자이건, 글을 쓰고 있는 독자이건 상관없이 마음에 콕 박힐만한 내용을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작가가 신기했다. 게다가 작가는 글쓰기 전문의처럼 글 쓰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병명을 알려준다. '쉬어도불안해병', ' 첫문장어쩔병'.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궁금했다.


 에세이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다. 물론 일기와 마찬가지로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누군가 읽어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느냐가 중요한 차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꼭 가상의 독자를 생각한다. 머릿속에 가상 인물을 한 명 만들어 놓고 그가 이 글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친구든 가족이든 아니면 동네 아저씨든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p72


그랬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나를 따라다니며 쳐다보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화 같, 신묘한 이 책의 비결은 가상의 독자에게 말하듯이 쓰는 것이었다.

책에는 이런 꿀팁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첫 문장 쓰는 법, 한 줄 요약으로 글의 방향을 잡는 법, 퇴고하는 법 등 작가가 스스로 터득한 글쓰기 노하우, 일명 영업비밀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런데 압권은 2부다.



2부에서 작가는 일타강사로 변신한다. 글감을 찾는 방법을 '관찰', '경험', '행복', '삶의 의미'를 통해 알려주는데, 작가가 썼던 에세이를 예시로 보여준다. 특별한 설명도 없다. 그런데 읽으면서 자꾸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어? 나도 줌에서 내 비디오 미러링 보고 식겁한 적 있는데?"

"어? 나도 급똥 때문에 아찔했던 경험 있는데?"

"뭐야? 나도 마스크 꼈을 때 안경에 습기 차서 불편한 적 있잖아? 그런데 작가는 거기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국화빵에 대한 추억은 나도 있지~ 나도~"

"거미줄을 보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해봤지?"

"나도... 나도 그랬지..."


2부를 다 읽고 책을 덮을 즈음이 되면 작가가 쌓아놓은 빌드업에 감탄하게 된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라고 했지만 각각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의 일상도 빛나는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급기야 입에서 "그렇다면 나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의 마음을 꿰뚫는 점쟁이이자 꿀팁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일타강사이기도 하며 글을 쓸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페이스 메이커였다.

독자에서 시작한 우리는 어느새 글쓰기 비법을 전수받는 제자이자 즐거운 글쓰기, 가벼운 글쓰기를 함께 이어나가는 크루가 된다.

반복된 일상으로 지쳐가는 마흔 즈음에, 혹은 마흔과는 상관없는 어느 때든, 글쓰기가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선물 같은 책.

책 중간중간에 그려진 연필도 선물 같다. 손에 꼭 쥐고 즐겁게  써보자. 그게 무엇이든.



매거진의 이전글 감사하며 여유롭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