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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Feb 03.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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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오전 9시 30분경에 동희는 광화문 역에 도착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대한통신 광화문 지사가 근처에 있었다.

“나도 함께 갈게.”

역시 희권을 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 잘한 일 같았다. 희권은 의사지 기자가 아니다. 그가 있을 곳은 병원이었다. 그리고 환자를 잘 돌보기 위해 휴무일은 푹 쉬어야 한다. 무엇보다 불미스러울 수 있는 일에 – 어쩌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일에 – 그를 연루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함께 했더라면 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가슴이 떨렸다. 편집장 생각도 났다. 한칠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려나? 사실 요 며칠, 사무실 선배들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혼자다, 지금부터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서 행동해야 한다.

며칠 동안 꺼져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위치추적이 들어오고 누군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것이다. 그들을 피해 다녔지만 이젠 그들 도움이 필요했다. 희권의 말대로 익명의 메일을 보낸 자가 간첩이며 대한민국을 교란시키기 위해 세운 전략이라면, 진작에 국가가 인정한 전문 요원들과 상의했었어야 옳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프로그램 해킹 주체가 증거인멸을 위해서 벌이는 수작이라면? , 그마저도 아니라면…… 이렇던 저렇던 일단 대한통신으로 가서 통신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고 칩과 관련된 자신의 의견을 말이라도 해봐야 한다.  찾아올 정장 요원들이 자신 말의 신빙성을 높일 것이다. 대한통신 사람들에게 적어도 자신이 미치광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것이다.  모든 일이 정오가 되기 전에 해결되어야 한다.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휴대폰에 전기는 충분히 먹여 두었다. 네트워크가 연결되고 수많은 문자와 부재중 번호가 쏟아져 나왔다. 엄마에게  통의 문자와  차례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무척이나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오가 지나는 즉시 엄마에게 전화할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길 건너에 대한통신 광화문지사가 있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보행자 신호가 켜지자 보란 듯 성큼성큼 입구로 향했다. 차량 출입 차단기 옆 초소 창문이 열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경비원이 알루미늄 새시 창틀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월간 라이프저니 잡지사에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5G 관련 기사를 쓸 예정인데, 기술 담당하시는 분과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동희가 내민 기자증을 본 경비원이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했다. 통화를 마친 경비원이 2층 총무부로 가서 대외담당 계장을 찾으라 했다.



“어느 잡지사라켔지예?”

계장이 사무실 접대용 소파에 앉아있는 동희에게 믹스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꽤 나이 들어 보이는 계장은 사투리가 심했다. 웃을 때 덧니가 보였다.

“월간 라이프저니입니다. 이번에 저희가 5G 특집 기사를 구상 중인데, 오늘은 5G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저도 처음에, 취재하실라모 본사 홍보실로 가시야지, 서버만 있는 이곳으로 오모 우야노 그래 생각했심더. 지금 저희 본부장님께서 외부일로 아직 출근 전이신데 곧 오실김더. 그동안에 제가 이곳 안내를 쪼매 해드리겠심더. 자! 가보입시더!”

계장의 목소리가 컸다. 목소리만으로는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사무실 직원들이 동희를 힐끔거렸다. 동희는 서둘러 커피가 든 종이컵을 비웠다. 계장은 메인 서버가 있는 3층으로 동희를 안내했다. 굳게 닫힌 철문이 몇 개 보였다. 그중 가장 큰 문을 열었다. 안에서 청원경찰 두 명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청원경찰은 한눈에 봐도 키가 엄청 컸다.

“별일 없지예? 일은 할 만 한가예?”

계장이 청원경찰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 사이 동희는 내부를 둘러보았다. 많은 서버들이 내는 소음으로 내부가 웅웅거렸다. 저 서버들을 통해 도시 전체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소통하고 있을 것이다. 계장은 동희에게 그 방의 역할을 대충 설명해주었다. 방을 나와 복도를 걸어갈 때도 계장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따, 그저께 새로 온 청원 경찰 분인데, 아까 그분 말임더, 덩치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기고, 마, 듬직하니, 억수로 마음에 드네예. 참, 기자님도 명함 하나 주이소!”

동희가 지갑을 꺼내 펼치다 다시 닫았다.

“이런! 명함이 다 떨어졌네요. 다음에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계장이 입맛을 다셨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전국의 모든 통신망을 일시에 셧다운 시키는 것이 가능한가요?”

두 눈과 입까지 동그래진 주임이 동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동희에게 말했다.

“몇 년 전에 이곳에 화재가 있었는데예. 서울 일대 통신망이 불통이 됐다아임꺼. 아마도 아실 긴데예. 그때 피해규모가 으마으마 했다아임꺼. 잠깐이라도 또 그런 일이 일어나뿌모 마, 국민들이, 모르긴 몰라도, 폭동을 일으킬걸예! 요새 스마트폰 없으면 마, 사람들이 다 미치뿐다 아임꺼! 허허!”

계장이 동의를 구하듯 동희를 쳐다보았다.

“우리 막내 딸내미도, 지금 중2인데, 고놈이 스마트폰 중독이 와가지고, 와! 내가 마, 미치고 팔딱 뛰겠심더. 뭐 이런 기 다 있노 싶다가도, 지도 마, 통신사에 근무는 하는지라…… 아! 내가 지금 뭔 말을 하고 있노? 허허! 실례했심더. 어디까지 했지예? 아! 맞다! 여가 국내 최대 규모의 으마으마한 서버를 제어하는 곳인데, 아! 이 말도 했구나. 그때, 그 화재 때, 저희 직원들 3일 연짝으로 집에도 못 가고, 복구하느라 전원 밤샘 대기하고, 마누라들 속옷 들고 찾아오고, 손잡고 울고불고, 와! 전쟁터도 그런 전쟁터가 없더라고예. 그때만 생각하모, 마, 지금도 등골짝이 서늘한기…… 겨우 수습하고 우리 고객님들께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보상도 해드맀다아임꺼! 그건 그렇고, 기자님 질문은, 전국에 있는 모든 통신망을 셧다운 시킬 수 있나? 없나? 뭐, 그런 말씀 아임꺼?”

국내 최대 규모의 ‘으마으마한’ 네트워크 망을 자랑하는 대한통신 서버실이 있는 건물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오래전에 만든 낡은 건물이었다. 옆에서 귀여운 덧니를 드러내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계장처럼 허술한 구석이 많아 보였다. 사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그저 엄청난 규모의 서버들이 윙윙거리는 곳일 뿐이다. 화려하고 엄청난 일을 하는 컴퓨터 내부가 고작 플라스틱 쪼가리에 금속판, 구리선들을 얼기설기 납땜으로 엮어 놓은 것처럼.

대한통신은 이런 건물을 전국에 몇 채나 가지고 있었다. 한때 여기서 교환수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했다. 시스템은 자동으로 바뀌고,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건물이 있는 곳은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서버 둘, 몇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건물은 임대사업용으로 전환했다. 국민 세금으로 모든 시스템이 구축되고 수익 올리는 일만 남았을 때 민영화되었다. 결국, 늙어 퇴물이 된 정제계 거물들에게 감투를 씌워주고 억대 연봉이라는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는 곳 중 한 곳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언제 나옵니꺼?” 계장이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음 달이요.”

그때 계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 본부장님! 네, 네. 지금 바로 내려 가겠심더.”

그 시각, 대한통신 경비초소 앞 차단기에 검은색 세단 한대가 멈췄다. 차 안을 둘러보는 경비원의 눈에 정장 입은 4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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