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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엄청났다. 휴대전화 통신망을 통해 누군가 방출한 특정 주파수대 전파가 칩을 자극했다. 칩은 엄청난 속도로 진동했다. 칩과 칩 2 할 것 없이, 진동을 견디지 못한 칩 대부분이 폭발했다. 12월 10일 정오를 기해 7분간 가해진 ‘전자파 테러’는 전국 통신망 영역 대에 머물던 사람들 머릿속 칩을 파괴시켰다.
칩을 삽입한 사람마다 피해양상은 천차만별이었다. 무증상부터 가벼운 출혈, 심각한 뇌출혈, 갑작스러운 뇌진탕과 이로 인한 2차 피해까지. 건물 안팎에서 사람들이 쓰러졌다. 일부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으며 일부는 의식을 잃은 운전자가 모는 차량 때문에 2차 피해를 입었다. 전국에 걸쳐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수 백대의 차량이 파손되고 돌진한 자동차가 수많은 건물을 파괴했다.
“여러분, 드디어 터질게 터졌습니다. 저는 그간 수 차례 기자 회견을 통해 말씀드리고 경고했습니다. 재차, 삼차 강조하지만 이번 사건은 인재입니다, 분명 예정된 인재입니다! 정부가 경고를 받아들이고 대국민 기만극만 제때 멈췄더라도 이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국민들을 훔쳐보고 마음껏 조종하려 한 대가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감히 이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이제 속 시원하십니까?”
상대가 궁지에 몰렸을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고 나오는 재능은 노련한 정치인일수록 비상했다. 역시나 가장 먼저 입을 뗀 것은 야권 유력 대선 후보 김영주였다. 칩 폭발사건으로 정부가 칩을 이용해 벌여 온 국민감시와 통제가 증명되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선견지명도 강조했다. 하지만 대국민사찰에서 칩 폭발로 이어지는 개연성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검찰과 사법부 일부를 장악한 재벌과 이들을 옹호하는 언론의 지지를 받는 김영주는 거칠 것이 없었다. 여기에 초기 친 정부 인사를 자처했지만 소홀한 대접에 불만을 품은 지식인들까지 가세하자 정부를 향한 여론은 급속 냉각되었다.
더 이상 인과관계는 의미 없었다. 민심은 합리적 추론이 아니라 즉흥적 감정에 동요되었다. 칩이 폭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는 이미 규탄 대상이었다. 오직 국민 소수만이 정확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반정부 세력이 희생자 유족을 앞세워 조직적으로 맞서는 힘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국민 대다수는 반정부 세력이 사주하는 언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군중이 청와대로 몰려갔다. 부모를 잃고, 자식을 보내고 울부짖는 성난 국민이 정문까지 밀려오는 것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경찰도 막지 않았다. 전국이 며칠간 밤낮으로 혼란스러웠다.
집권 여당의 태도 또한 가관이었다. 이들마저 서둘러 정부와 관계를 끊으려 했다. 결국 사건 발생 17일 만에 대통령 스스로 하야를 선택했다.
‘악을 선으로 갚으려 한 대가였다. 인간 개개인의 악은 선을 통해 감화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모여 만든 조직적 구조악에 맞서기 위해선 세련된 전략이 필요했었다.’
물러나는 대통령의 깨달음이었다. ‘조직적 구조악에 맞서 세련된 전략’을 구사해야 할 세력마저 대부분 오염된 마당에, 대통령과 몇몇 인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