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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Apr 04.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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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응천이 파리로 돌아왔을 때, 칠오가 숙소에 와있었다. 분위기는 어색하지도, 훈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평소 그들이 모일 처럼. 그런 분위기에서 늘 그랬듯이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칠오는 드림캐리어社의 미래를 이야기했고 나오미는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응천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충돌을 우려했다. 같은 일을 두고 칠오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표현을 썼고, 나오미는 이젠 모두 끝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오미! 제발 좀 감상적으로 굴지 마! 너의 아빠를 봐! 그분을 위해서라도 칩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조급하게 먼저 감정을 드러낸 이는 칠오였다. 나오미는 칠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에게 이메일로 앙리가 머물고 있는 요양원을 알려준 것은 그였다. 나오미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잠깐 침묵한 그녀는 다시 많은 말을 쏟아냈다. 둘 사이에 고성이 몇 차례 오갔다. 응천의 소곤거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런 상황은 그날 밤 여러 번 반복되었다. 마지막으로 칠오가 엄청나게 큰소리를 질렀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칠오 모습이었다. 나오미와 응천은 물론 칠오 자신도 놀란 듯했다. 마침내 칠오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내가 졌어, 졌다고!”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세 사람은 흩어져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나오미는 한동안 꾸지 않던 꿈을 다시 꾸었다. 모든 상황 비슷했다. 하지만 이젠 그 형식이 진부했고 색까지 바래 있었다. 눈물은 전혀 나올 분위기가 아니었다. 익숙해진 꿈은 더 이상 악몽이 될 수 없었다. 조금은 유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꿈의 마지막이 이전과 달랐다. 키 큰 그림자 남자는 달아나는 대신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빠였다! 심지어 어린 자신을 끌어올려 꼭 안아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언제나 함께 할게.”

평생 꿔온 악몽이 행복한 꿈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두 번 다시 시커먼 그림자 따위가 나오는 꿈은 없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눈물 없이 꾼 꿈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은 무척이나 파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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