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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Apr 07.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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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희는 그날 이후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왼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였고 왼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골절된 대퇴부에 아직 철심이 박혀 있었다. 다리를 절었다.


“이런!”

동희를 본 칠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이야기할까 아님 조금 더 조용한 곳으로 갈까?”

지팡이를 꽉 움켜쥔 동희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근처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 몇십 미터 걸어가면 공원이 나왔다. 구석 벤치에 모로 누워 잠든 사람이 있을 뿐 공원은 조용했다. 칠오는 벤치 한 곳을 찾아 앉았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뒤따라온 동희가 칠오를 노려보며 서있다.


“모든 것이 너의 짓이야!”


“뭐?”


“이 모든 것이 네놈이 꾸민 짓이야! 칩이 불러온 사건도, 칩을 폭파시킨 것도, 정부 관계자가 해킹이니 뭐니 하는 모든 것이 다 네놈 머릿속에서 나온 시나리오였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지 알기나 해, 네놈 하나 때문에?”

칠오는 동희를 올려보았다. 가로등을 등지고 서있는 그의 표정은 볼 수는 없었다. 앉으라 손짓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서 있던 동희가 결국 벤치에 몸을 걸쳤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왜 그런 짓을 꾸민 거야?”


“오픈 베타 테스트!”  


“뭐?”


“테스트는 기대 이상이었어. 애초부터 칩이 질병을 치료한다는 건 하나의 명분이었어. 물론 치료 효과도 있었지. 나오미와 나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세상을 꿈꿨어. 나오미는 나오미 방식대로, 난 내 방식대로. 맞아! 모두 다 내가 꾸민 짓이야. 나오미 몰래, 어느 누구도 몰래, 나 혼자!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위해 칩의 성능 테스트는 불가피했다.”


“테스트?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테스트라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었어.”


“돈 때문이야? 돈 때문에 그런 거야?”

일어서려는 동희를 칠오가 저지했다.


“악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은신처가 민중이니 국민이니 하는 곳이지. 성숙되지 못한 인간들이 만든 민주주의처럼 위험한 것은 없어.”

그때 경고음이 울리고 열차가 철길을 따라 통과하는 소리가 들렸다. 칠오가 잠시 말을 멈췄다. 소리가 완전히 지나가자 동희가 입을 열었다.


“너 때문에 훌륭한 정부가 몰락했어!”

풀이 죽은 기세가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아직도 민주정부 따위를 신봉하는 건 아니겠지? 민주정부 따위가 존재하기나 할까? 훌륭한 정부나 몇몇 의로운 자들로 세상을 바꾼다는 엘리트주의는 이미 구시대 유물일 뿐이야. 몰락한 정부가 신사적이긴 했지. 하지만 어떤 정부가 되었건 난 이 일을 감행했을 거야. 정부 조직 따위가 불필요한 세상이 오고 있어. 감상적인 표현이 아니야. 이젠 가능해! 사람들 마음을 조금 움직이면 되는 거야.”

동희가 고개를 들어 칠오를 빤히 쳐다보았다.


“네 짐작대로 칩은 사람들 생각을 읽게도, 조종하게도 해. 그래도 조종하는 건 기대만큼 쉽진 않더군. 난 사람들 머릿속을 깨끗이 청소해 주고 싶었어. 돈 때문이냐고? 돈에 물든 건 사람들이지.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할 거라는 믿음으로 머릿속이 온통 오염되어있어. 그 무엇보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너를 끌어들인 것부터 밝혀야겠군. 너는 다른 사람과는 달랐어. 우리가 개발 중인 프로그램을 정부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해킹했다는 말에 순진한 편집장이 너를 추천하더군. 그런데 안타깝게도 네 머릿속에도 칩이 박혀있더라고, 그 빌어먹을 칩이 말이야! 아마도 너의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서였겠지? 너를 담당한 의사가 너도 모르게 집어넣었을 거야. 그런 일은 종종 있었으니까.”

칠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나는 혹시 모를 칩의 영향으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어. 페트리였나? 카메라 이름 말이야?”


“뭐라고?”


“그래. 편집장이 선물한 그 카메라,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너를 칩의 변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어. 그런데 제대로 작동을 못했는지, 결과적으로 넌 보호받지 못한 것 같군. 그날 카메라를 지니고 있지 않았었나? 편집장에게 그렇게 신신당부했었는데, 너에게 항상 지니고 다니게 하라고……”

동희는 주위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동희 기자! 당신은 대한민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무슨 수작이야!”


“너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물었다. 너의 머릿속에 칩을 박은 의사만 봐도 그래, 어떻게 환자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 이익을 위해 그 따위 짓을 벌일 수 있지? 사회정의? 정의를 이야기해볼까?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둑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야. 법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지. 그런 사람들이 범죄자를 단죄한다? 웃기지 않아? 정치인들과 결탁한 재벌은 돈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하지. 이런 불의를 보고도 방관하는 언론은 어때? 스스로 진보라 자처하는 자들은 또 어떻고? 너도 알잖아 대한민국 진보라는 자들이 얼마나 편협한 것들인지. 보수는 탐욕스럽고 진보는 옹졸해. 하나같이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반동으로 탄생한 동전의 양면일 뿐이야. 썩은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칠오가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젠 국민들까지 오염되고 있다는 거야. 세상은 사람들에게 오직 돈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며 부자가 되라고 부추기지. 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만든 세상에서 그들을 위한 불쏘시개로 전락하고 말뿐이야. 부자들은 말하지. 세상은 공평하다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면 문제는 당신에게 있다. 누군가 공정이나 분배를 이야기하면 그는 부자를 향한 르상티망이나 가진 자로 바보 취급하지. 그들 체제에 대한 반항은 인류를 파멸시킬 극도의 위험한 심리상태가 되어버려. 그렇게 기득권을 쥔 자들은 모든 인간을 자신들의 세계에 순응시키려 해. 또한 가용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국민을 편 갈라놓지. 결국 사람들은 능력 없는 자신을 저주하며 그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를 서로 주워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싸우는 거야. 너무 서글프지 않아? 이 체제 속에선 더 이상 과거사 청산이나 통일도 가치를 잃어버려! 오직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 두뇌를 리셋하는 거야! 합리적 의심과 추론을 가지며 높은 자존감을 가지게 끔 유도하는 것. 이 방법만이 어그러진 세상을, 탐욕의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난 사람들 정신상태를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 리셋할 거야. 그리고 더 이상의 제어는 없어. 장담하지만, 제어 단계는 바로 거기까지야!”


“그럼, 칩은 왜 폭발시킨 거야?”


 폭발시켰냐고? 폭발은 사고였어. 단지 칩을 무용지물로 만들 작정이었지. 사실 폭발 가능성도 배제할  없었어.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예상과 달리  대부분이 폭발한 거야.  점은 나도 유감스러워. 어쨌든 머릿속 낡은 칩은 사라져야만 했어. 칩과  2 모두 새로운 칩과 충돌이 일어나거든. 하긴, 이제 칩이라 부를 수도 없겠군. 전혀 다른 형태가  테니깐. 조잡한 칩 따위가 아니라 백신을 통해 주입된 나노 입자들이 엄청난 일을 벌일 거야. T 임파구와 백혈구가 세균들과 맞서 싸우듯 국민들 머릿속에서 부패 정치인의 거짓 선동과 거짓 언론에 맞서 싸울 합리적 지성이 빛을 발할 거야. 동시에 잊고 살아왔던 소중한 것들도 일깨워  거고. 어쩌면, 한반도에 통일이 찾아올지도 몰라. 대한민국은 진정한 독립국이 되는 거지! 그것을 위한 혁명이 필요한 거야. 그리고  혁명은 광장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칠오가 집게손가락으로 자기 이마를 두드렸다.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거야! 나는 그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걸 각오가……”


“닥쳐! 이 미치광이야! 넌 미쳤어!”


칠오는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국민들은 조금 오염되었을 뿐이야. 이들이 정화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야. 사람들 두뇌를 리셋하고 나면 나는 궁극의 세상을 선물할 거야! 모든 사람들이 언어 없이 생각만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세상! 텔레파시가 현실이 되는 거지. 이 모든 것이 주입된 나노 입자들로 가능해져. 너무 기대되지 않아? 서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공감을 느끼는 호모 엠파티쿠스의 시대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서로 떼어놓으려 할 거야. 인간들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니깐. 하지만 우린 연결되어야만 해! 결국 너의 부모님이 꿈꾸던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걸, 어때?”


칠오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난 모든 걸 각오가 되었어.”


삭발한 머리가 달의 분화구처럼 우둘투둘했다. 칠오는 어느 종교단체가 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분명 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초라한 그의 모습에서 동정심마저 일었다.


“너도 내가 부자에 대한, 강대국에 대한 르상티망 따위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칠오가 동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될 거야! 나와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넌 처음부터 기레기들과는 달랐어.”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짧은 밤을 뒤로하고 그들 주위로 어둠 속에 잠들어있던 사물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때쯤에 공기가 서늘하게 식어있었다. 일찍 찾아온 더위는 곧 해가 뜨면서 다시 도시를 데울 것이다. 번득이는 안경알 속에 작은 눈이 움직였다.


“마음이 정해지면 연락 줘, 난 네가 필요해!”

명함 한 장을 동희에게 건네며 칠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걸어가다 멈춰 되돌아왔다.


“시간이 별로 없어. 나오미 외조부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 그전에 그분이 가진 재력의 힘을 빌려야 해. 아직 완성 보지 못한 몇 가지 자잘한 과정이 남았거든.”


동희는 멀어지는 칠오를 바라보며 계속 앉아있었다. 짧게 삭발한 짱구 머리에 대충 걸친 야구모자. 살이 빠져서인지 키는 더 커 보였다. 벌어진 검정 후드 티 속에 보이는 목이 헐렁한 티셔츠. 평평한 운동화와 통 넓은 카고 바지. 부랑자 같은 옷차림의 그가 처음엔 심한 과대망상증을 앓는 것처럼 여겨졌다. 차츰 그보다는 무정부주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둘의 차이는 뭘까? 둘 다 세상이 원치 않는 것이었다. 칠오의 행방을 찾아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과대망상증과 무정부주의를 구분하는 것조차 피곤하게 느껴졌다. 분명 그가 위험한 인물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지 않는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한쪽 구석 벤치에 잠들어 있던 노숙인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머릿속이 전류가 흐르듯 찌릿찌릿했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으리라 마음먹었을 때 하늘 한쪽은 이미 밝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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