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한강 작가님께서 어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셨다. 마침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던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무던한 일상에 하나의 포인트가 생겼다랄까? 사실 최근 잔잔하다 못해 고요한 일상을 보내는 중인데 채식주의자에 나온 하나의 문장이 날 더욱 생각에 잠기게 했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친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채식주의자에 수록된 연쇄소설 세번 째 작품인 '나무불꽃'에 수록된 작품으로 영혜의 언니에게 닥친 가혹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녀의 책무는 떠밀려 오는 상황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이후 그녀가 영혜를 설득하는 30분의 촉박함과 긴장감,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을 표현할 때도 인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동기부여 글귀를 찾아보다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때론 그 공정함이 가혹하디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든 그런 시간이 없었겠냐마는 나에게도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시간은 정말 저 문장을 아득히 넘어서는 가혹함과 공정함을 갖춰, 내가 방황하는 새를 기다려주지 않더라. 꿈을 꾸고 꿈을 키우고 실현시켜 나가고픈 어린 아이에서 어느새 꿈이라는 게 연봉과 재산으로 표현되는 나이가 된 지금에 이르기 까지 시간은 참 가혹했다 느껴진다.
난 언제까지나 꿈을 쫒고 만들어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혹한 시간과 현실, 사회는 그런 이단아를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어쩌면 부모 조차도 '트루먼쇼'의 배우인 것처럼 나를 가혹한 시간의 흐름에 밀어 넣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단지 밥이 날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꿈. 달리 말하면 희망이다.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멋진 모습의 내가 되는 것. 그게 꿈이고 이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런데 시간은 참 가혹하게도 공정해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던 꿈을 잃게 만들었다. 하류로 나아가는 내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럼에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뭘까? 지금은 모르겠다. 빨리 찾아야 할 거 같다. 아니면 정말로 이 공정하다 못해 냉철한 무언가에 휩쓸려 잠겨버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