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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길어지는 사이

by 민선미

생각보다 길어지는 기다림에 초조함은 더해지고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는데 갈수록 나란 존재의 가치는 연기처럼 사라져 갔다.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했던 나는 더 이상의 내가 아니었다. 자신했던 나의 말, 몸짓, 눈빛은 점점 옅어지고 없어졌다. 나의 언행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불안을 심어주는지 주변을 배려해야 하는데 점점 진이 빠져 여유가 없었다.


기다릴수록 초조해지고 생각은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균형을 잃어 조각조각 깨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덩어리가 됐다. 짙은 어둠 속에서 지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늘 나보다 더 고통받던 남편, 친가, 시가 부모님까지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겉으로 상처를 드러내 보이면 더 이상의 상처가 아닌데 숨기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손주를 안겨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초조할 뿐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나의 손짓, 눈짓하나를 놓치지 않으시려고 일거수일투족으로 바라보며 밥 먹을 때 유심히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한숨지으셨다.


어려서부터 밥을 복스럽고 먹음직스럽게 먹는데도 왜 몸이 더 바짝 말라가냐며 근심 걱정이 담긴 한숨 소리가 들린다. 마른 체질이 건강에 더 좋은 거라고 막상 큰소리는 쳤지만, 애꿎은 살 타령으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해맑게 웃고 있어도 그늘진 딸의 사정을 지켜보는 것도 부모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차라리 자식 말고 내가 그 고통을 당하는 게 더 낫다 싶으셨는지 엄마는 말을 꺼내려다 그냥 삼켜버렸다.



옛 어른들은 이상하게도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동했다. 막내딸의 고통을 따뜻하게 쓰다듬어주고 어루만져주기는커녕 “내 탓이라며’ 자책하는 친정엄마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에게 효도는커녕 짐이 되고 걱정만 안겨드렸다. 엄마가 편하다는 이유로 안 보이면 궁금하다가도 마주하면 서로 트집 잡고, 상처 내기 바빴고, 집으로 돌아오면 후회만 남았다. 시원하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퍼붓고 돌아오면 나는 숨이 쉬어지는데……. 내가 뱉어버린 아픈 말을 가슴에 담은 엄마 걱정은 할 겨를도 없었다. 한동안 친정에 가는 발길도 뜸해지면 엄마의 안부가 궁금해서 또 찾아가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응석을 부렸다. 유일하게 내 응석을 받아주는 곳이었다.



양가 집안에서 가장 걱정거리 문제아는 바로 나였다. 어려서부터 속 썩이는 딸은 아니었다. 이름처럼 착하게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자랐는데 결혼하고 부모님께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인절미 같은 부담을 주고 있었다. 때로는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거칠게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를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버둥거리는 나는 내가 아니었다. 웃고 있어도 속은 울고 있는 가면을 뒤집어쓰기로 했다.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고 했다가도 결국에는 도돌이표처럼 항상 “임신 못 하는 나”로 초점을 맞춰져서 가슴팍으로 돌진해 왔다. 아기가 나에게만 없는 거 같고, 우리만 안 주는 거 같아 괴로웠다. 심지어 주변을 볼 때 스스로 임신한 사람과 안 한 사람, 아기를 낳은 사람과 안 낳은 사람으로 비교하는 몹쓸 습관이 생겼다. 약속된 만남도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갑작스럽게 외출을 피하며 감당할 수 없는 우울감으로 자포자기했다.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쪼잔한 속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 문제를 가장 잘 알면서도 객관적으로 직시해서 보고 싶지 않아 피했다. 이런저런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점점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주관적인 생각이 똘똘 뭉쳐 변명하기 바빴다. 급기야 주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갔다.

집안에 머무를수록 계속 우울감이 깊어졌다. 하루에 몇 발자국 걷지도 않는 나를 보며 이러다가 큰일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순간 몰려왔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문 앞에 나서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 놀이터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조차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하는지 연습했다.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파트 정원을 한 바퀴라도 돌려고 해도 아기 엄마들과 마주치는 게 싫어서 최대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점심시간으로 정했다. 최대한 인적이 드문 장소와 시간을 계산해서 산책하러 나갔다. 내 마음의 매듭이 엉켜있어 아기엄마를 보는 것조차 질투심에 불타 하염없이 부러운 대상이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홀로 앉아있던 방안의 우울한 기분이 신발을 신고 산책을 나오는 순간 사라졌다. 바람이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며 말 걸어주는 친구가 되었고, 따스하게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태양이 싫지 않았다. 매일 땡볕을 받으며 걷는 나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고 혼자가 아니었다.



사람과는 달리 자연은 ‘무슨 일이냐고’, ‘왜 이제 서야 왔냐고’라며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바라는 게 전혀 없었다. 때론 며칠 뒷산을 가지 않아도 산은 서운한 내색도 하지 않았고, 이미 내 일을 알고 있는 것처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산길을 걷다가 알 수 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한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나무와 풀, 꽃은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주말이면 남편은 동네 한 바퀴를 함께 걸어주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은 내 얘기를 다 들어주었고 뜨끈뜨끈한 순대국밥을 함께 먹었다. 혼자 집에만 움츠리고 있는 내가 안쓰러운지 기분전환 시켜준다며 쇼핑가자고 조른다. 쇼핑을 즐기던 내가 쇼핑마저 끊으니 수상하게 여겼던 거다. 세심하고 자상한 남편에게 늘 푸념과 짜증을 늘어놓았던 게 후회됐다. 갑자기 바깥 생활하는 남편이 나보다 더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미안스럽고 화났다.



그동안 나만 살겠다고 이기적이었다. 아기 갖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머리에 고장이 난 게 틀림없었다. 사람을 만나도 남편이 더 많이 만나고, 임신 소식을 묻는 사람도 나보다 훨씬 많았음이 분명한데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아찔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이 더 딱했다. 내 아픔만 아픔이고 남편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려 하지 않았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어느 틈에 벌써 징징대는 나를 보게 된다. 남편도 울고 싶을 때가 있고 징징대고 싶을 때가 많을 텐데.



여자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나 보다. 남자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다는 말이 떠올라 화해를 먼저 시도했다. 무뚝뚝한 남편은 자기는 괜찮다며 나를 또 위로해 주고 있다. 꽤 괜찮은 남자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부부 사이에는 오해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오해가 쌓이기 전에 서로 들여다보는 대화를 필수적으로 하는 시간을 정해야 했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는 미루게 되면 멀어지기 쉽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에는 꼭 산책 데이트하는 날로 잡아서 두 손 꼭 잡고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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