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적륜재 Dec 24. 2021

2. 책에 관한 책들부터

의외로 책에 대한 책들이 세상에는 많다.

책을 읽고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사서 모으기를 조금 더 즐겨하다 보면, 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궁금해졌다. 뭐랄까 내가 아직 모르는 책의 세계가 더 있을 텐데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라고 할까. 서재의 구조에 대해 쓰면서 무엇부터 이야기를 할까 둘러보다 처음부터 특정의 주제에 대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이 책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 적어도 아, 여기 이 사람이 쓰는 글들이 어떤 특정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이런저런 책에 대한 것이구나 하고 혹여 이 글을 읽게 되는 이들도 미리 짐작할 수 있을 테고, 무슨 이야기를 한다 해도 어찌할 수 없이 생기게 되는 선입견을 너무 일방적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는 묘수라면 나름 묘수일 수 있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책들은 몇 가지의 유형이 있다. 우선은 책 혹은 문헌 자체에 대한 책들이 있다. 예를 들면 표지 커버에 대한 책처럼 책의 물성적 특성에 대한 책일 수도 있고, 어떤 특성의 책이 어떤 사회에서 어떤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연구를 다룬 책일 수도 있다. 혹은 책의 유통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책에 얽힌 추억들일 수도 있다. 책꽂이의 한 섹션에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런 책에 대한 책들이 있다.

* 고서점의 문화사, 이중연, 혜안, 2007, 초판 1쇄

책 제목대로 고서점에 대한 굉장히 폭넓은 책인데, 조선 후기 서적 유통에서부터 일제 강점기의 고서점이 형성되는 과정, 유명한 레전드 고서점들에 대한 기록, 고서 수집이라는 특정 분야에 대한 사례와 기록, 그리고, 이정환의 샛강이라는 자전적 소설에 등장하는 조부대부터 3대로 이어진 헌책방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古書이야기 - 壺山房 주인 박대헌의 옛 책 閑談客說, 박대헌, 2013, 초판 2쇄
고서 이야기는 고서점의 문화사를 읽고 좀 더 내부 이야기를 알고 싶어지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책이다. 원래 호산방이라는 고서점을 운영하다 영월에 책박물관을 낸 저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용은 3개의 단원으로 구성되는데 고서와 고서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굴러가는지, 그리고 저자 자신이 이 과정에서 마주치고 잊지 못하는 책들에 대한 소개, 마지막으로 자신의 고서점 운영과 책박물관을 만드는 과정이 이어진다. 영월 책박물관은 그런데 이 책이 나왔을 때 이미 폐관을 하였다. 뒷이야기가 책에도 조금 나와있지만 영월군에 아마 많이도 밉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지 않는 책들을 찾는 이야기가 알차게 담겨있다.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 박진영, 소명출판, 2013, 초판
고서점을 연상하면 떠오르는 한문으로 된 고서들보다 의외로 식민지 시기에 출간된 고서들도 많이 있다. 이 근대적 출판과 유통, 신소설과 번안 서적들에 대한 진기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학술서적이다. 고서점의 문화사에 나오는 일제 강점기 고서점에서 이야기가 확장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베스트셀러 - 조선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 이민희, 프로네시스, 2007, 초판 1쇄

*책쾌 송신용 - 평생을 책과 함께한 마지막 서적 중개상, 이민희, 2011, 초판 1쇄
이 두 권은 조금 더 시간을 앞으로 돌려 고서점 문화사에서 한 챕터로 다룬 조선 후기의 서적 유통에 대한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한 교양서들이다. 조선의 베스트셀러가 보다 개론에 가깝다면, 책쾌 송신용은 구체적인 사례집 같은 느낌이다. 송신용은 식민지 시기에 마지막 책쾌로 활동한 인물인데, 어찌 보면 조선 후기의 도서 세계와 식민지기 도서계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다.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조계영, 장유승, 당윤희, 이유리, 노경희, 소명출판, 2014, 초판

*17.18세기 조선의 외국서적 수용과 독서문화, 홍선표 외, 혜안, 2006, 초판 1쇄
이 참에 좀 더 과거로 가서 조선 후기의 출판, 독서에 대해 다룬 학술서적 두 권이 있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좀 더 활발한 서적 교류들이 동아시아에 있었고 크로스 레퍼런스들이 이루어졌다는 내용들은 상당히 신선하다.
*에도의 독서열 - 스스로 배우는 독자와 서적 유통, 스즈키 도시유키, 노경희 역, 소명출판, 2020, 초판

*일본근세문예의 웃음, 도보여행기물과 충신장물, 강지현, 전남대출판부, 2013
에도의 독서열은 주로 18세기 일본 도서 출판 시장을 다루는 학술 서적이다. 평화가 지속되고 경제가 활발해지는 18세기 독서에 대한 니즈가 사회에 보다 넓게 퍼지고 이를 도서출판에 반영되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일본근세문예의 웃음이라는 책은 이 시기에 일종의 베스트셀러였던 히자쿠리게膝栗毛와 주신쿠라忠臣藏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변용되며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학술도서이다.    

*The Printing Revolution in Early Modern Europe, Elizabeth L. Eisenstein, Cambridge Univ. Press, 2016, 2nd edition 4th printing
18세기와 그 이전의 시기를 근대라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라서 구분해서 근세近世, 영어로는 얼리 모던 early modern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지식의 유통이 활발해졌다. 유럽에서도 이 시기에 인쇄혁명이라는 현상이 생겨나면서 폭발적으로 정보 유통량이 많아지는 일이 있었다. 이 책은 이 시기의 인쇄혁명이 어떤 모습을 띄고 진행이 되었는지를, 특히 이 인쇄혁명이 기독교 독트린을 어떻게 뒤흔들고 종교개혁으로 나아가고, 또한 근대 과학의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러고 보니 너무 딱딱한 내용들 같은데, 실은 이제부터 내가 더 좋아하는 책들이 있다.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이매진, 2015, 3쇄

*探書의 즐거움 - 오래되고 낡았으나 마음을 데우는 책 이야기, 윤성근, 모요사, 2016, 초판 1쇄
윤성근 씨는 현재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다. 한편으로 활발하게 저작도 하고 있는데, 책이 좀 많습니다는 북 콜렉터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탐서의 즐거움은 이런저런 책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약간 당황하게 되는 책이다. 먼저 소개한 고서들보다 좀 더 현대의 책들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벽이 조금 덜 느껴진다. 탐서의 즐거움은 표지 디자인이 추억의 문고본 도서의 모습으로 되어 있어서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다.


*古本道場, 角田光代/岡崎武志, ポプラ社, 2005, 1쇄

고본도장(원 제목으로 읽으면 고혼도죠)은 일본 책인데 두 명의 작가가 일종의 헌책방 탐험 미션을 주고받는 이야기이다. 잘 알려진 진보초의 헌책방 거리라든가 하는 일본의 고서점가와 그곳에서 이들이 찾은 책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엮어져 있다. 윤성근 씨의 한국 고서점에 대한 책들과 같이 읽어보면 상당히 흥미 있는 부분들이 있다. 아주 오래된 서점 (가쿠다 미츠요, 오카자키 다케시, 이지수역, 문학동네, 2017)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있다. 일본 고서점과 도서 문화를 궁금해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으로 가는 문 本へのとびら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송태욱 역, 현암사, 2013, 초판 2쇄
이 책은 위의 탐서의 즐거움처럼 책들을 소개하는 책인데,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이고, 게다가 그가 추천하는 아동도서의 셀렉션을 소개하는 책이다. 내가 어릴 적 유행했던 계몽사 소년소녀 문고에 있던 책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중에 하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적이 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New York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 북원더러 서진의 뉴욕서점 순례기, 서진, 푸른숲, 2010, 초판 1쇄
살고 있는 도시가 원래 서점이 많고 책을 많이 읽는 지역이고, 집 주위에만 자주 가는 단골 서점이 네댓 군데가 될 정도이다. 뉴욕 비밀스런 책의 도시는 이 도시 뉴욕의 서점 기행기를 약간의 소설적 요소를 가미하여 재미있게 쓴 책이다. 책이 나온 지 12년이 된 지금 보면 꽤 여러 서점이 없어지기도 했고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이은혜, 마음산책, 2020, 초판 1쇄

이 책은 현역 출판사 편집자가 쓴 편집자의 삶에 대한 책이다. 전체적으로 편집자의 입장에서 책의 라이프 사이클을 따라가는 구성으로 되어있는 흥미 있는 책이다.

*아무튼, 서재, 김윤관, 도서출판 제철소, 2017, 초판 1쇄
마지막으로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서재편. 저자 김윤관은 가구를 만드는 목수이다. 그런데 가구로서의 책장과 서재에 대한 이야기에 오히려 저자의 책에 대한 마음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조금 격정적인 느낌도 있는데 그게 묘하게 어울린다.

전자책으로 가지고 있는 유사한 분류의 책들은 이번에 넣지 않았다. 전자책은 점점 더 많이 읽고 있는 중인데도 마음 한켠에 왠지 책꽂이에 꽂힌 책과 구분 짓는 버릇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조금 마음이 누그러지면 다시 추가할까. 그리고, 이렇게 연결되는 서재의 구조 시리즈를 계속 해나가보려고. 뭐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서재의 구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