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맞을 만해서 맞는 건 줄 알았다

by 먼산
이 글은 써놓은 지 좀 많이 지난 글이네요. 사실 이 글은 살기 위해서 토해냈던 글에 가깝습니다. 이걸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쓰고 나서는 사실 다시 읽는 데까지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게 제 우울의 원천인지, 아직도 상처로 온전히 남아있는지, 아니면 이제는 실상 다른 것들이 더 나의 문제가 되었는데 내가 계속해서 핑계를 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도 제 치유의 과정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너무 오랜만이니까요. 조악한 글일 거예요. 퇴고를 거치기에는 아직 너무 힘든 글이어서요. 미안합니다.


나의 아빠인 사람이 들어오는 문소리가 들리는 순간 안정되어 있던 공기는 급격하게 무거워졌고 내 귓가에는 공기가 얼어붙어 와장창 소리가 들리며 깨어져 내려앉았다. 스스로가 눈치를 보는 줄도 모른 채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사람을 맞으며 인사를 하고 습관처럼 공기를 읽으면서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려 애를 썼다. 그의 첫마디와 표정을 살피면서 이 날 나의 행동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 내가 눈에 띄어도 될지를 가늠하느라 온 에너지를 쏟았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일상이다. 나는 의무교육을 받지 않는 어린 나이였을 때도 늘 이런 일상을 살아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모두가 공기를 읽기 위해 곤두선 신경으로 집에서 견뎌내는 건 줄 알았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욕을 듣고, 내가 맞을 만해서 맞는 줄 알았다.


이 시절의 나는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였나 보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를 무서워했다. 무엇이 그를 건드려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게 만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던 나는 내가 아빠를 무서워하는지도 몰랐다. 주변 어른들이 주문처럼 외던 ‘연우는 아빠랑 친하지.’, ‘연우는 아빠 좋아하잖아.’라는 말에 젖어 나도 내가 아빠를 마냥 좋아하는 아이인 줄 알았다.


이상하게 내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아빠의 등장이 나의 포근함을 모두 깨뜨리더라도. 경험이 그것뿐인 어린 나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게 좋아한다는 감정인지, 불안인지, 두려움인지 그런 걸 분간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내가 언니랑 싸우지만 않으면,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지만 않으면, 고집을 부리지만 않으면,... 내가 ‘-지만 않으면’ 맞지 않을 조건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태생적으로 활발하고 말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던 나는 점점 나를 접어갔다.


맞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맞는 이유가 된 리스트가 하나씩 늘어갔다. 그것이 맞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는 나는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그냥 어떻게든 내가 맞게 되는 요소를 피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내재화시켜 자동적으로 피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나에게 생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를 접고. ‘해야 할 말은 하는 성격’을 접고.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나’를 접고. ‘취향이 확고한 나’를 접어갔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은 수많은 나를 접고 접어 맞지 않을 수 있는 구석에 안전하게 위치해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깊고 깊은 수치심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그게 수치심인 줄도 몰랐다. 두려움 앞에서 자유의지와 타고난 기질을 직접 접어내는 것은 사실상 엄청난 모멸감이었음에도, 나는 너무 어려 그 감정을 언어화하지 못했다. 그냥 잘못한 이가 으레 겪어야 하는 관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과할지도 모른다는 느낌과 약간의 억울함은 있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에.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합리화하는 것 외에는 내 정신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이미 온전치 못했음은 모르고.


그런데 도저히 내가 합리화할 구멍마저 사라지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그날의 기분과 공기, 통증, 지금도 하나하나 생생하다. 20여 년이 흘렀는데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그전에 약간의 균열은 생기고 있긴 했다. 그 어린 자매가 으레 그렇듯이, 언니와 나는 자주 싸우고 죽일 듯이 치고 박기도 했지만 같이 맞은 전우애 때문인지, 함께 그 깨어지는 공기를 느낀 동지애인지, 종종 사이가 좋기도 했다. 근데 어느 날, 어김없이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깨어지는 공기를 느낀 후, 그리고 그날은 운이 나쁘게도 진짜로 밖에서 공기가 깨어지는 말다툼 소리가 나던 날. 언니와 둘이 방에 숨죽여 있으면서 그전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했다.


내가 먼저 물었는지, 언니가 먼저 물었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너무 무섭다고, 아빠가 들어오면, 뭔가 되게 평온하고 즐거웠던 공기가 갑자기 얼어붙고 와장창 깨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그리고 숨쉬기가 힘들어진다고. 그리고 서로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내가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나는 나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그런 기분을 절대 드러내면 안 된다는 본능으로 최선을 다해 티 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근데 언니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걸까. 우리는 결국 같은 전장에서 죽어라고 버티고 있는 동지였다는 것을. 우리는 같은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날 느꼈다.


그리고 언니는 그날, 나에게 중요한 말을 했다. 아빠가 우리에게 하는 건 폭력이라고. 당연하지 않다고. 당연히 무서울 만한 일이고. 그렇게 때리면 안 되는 거라고. 가정폭력이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대놓고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지만, 완전히 동조할 수도 없는 애매한 감정이 되었다. 맞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과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내가 잘못한 무언가가 있기는 했으니까 매번 맞았던 것 아니었나? 언니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마음과 머리가 삐걱거리면서 오류를 일으키는 상태로 얼마간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 날, 초등학교 저학년 언젠가였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랑 잘 놀아주던 사촌언니가 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이날 언니는 나한테 같이 어디 쇼핑몰을 가자고 했고, 워낙에 나가서 노는 걸 좋아했던 나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간 김에 언니가 어디 빵집에 들러서 빵을 샀고, 나한테도 고르라고 해서 조금 골랐다. 그리고 기분 좋게 집으로 들어왔고, 사촌언니를 제외하고 다 같이 목욕탕에 갔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이 늘 가던 목욕탕의 위층에는 서점이 있어서 나와 언니는 늘 목욕을 먼저 끝내고 서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 내가 엄마한테 어떤 만화책을 사달라고 졸랐고, 안된다는 말에도 나는 몇 번 더 조르다가 아빠의 무서운 눈빛에 포기하고는 뾰루퉁한 상태로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넌 집에 들어가서 가만 안 둘 줄 알아. 버릇을 고쳐 놔야 돼.’라고 잇사이로 협박하듯 내뱉는 아빠의 말에, 이미 내 주변의 공기는 깨어진 지 오래였다. 이럴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숨을 죽이고, 최대한 존재감을 죽이고, 방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이에 아빠가 그 분노를 잊고, 내가 눈에 띄지 않는 동안 그 사실을 잊어주기를.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들어가서 쥐 죽은 듯 숨도 크게 쉬지 않으면서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그만 소리에도 마음이 쿵. 쿵. 내려앉았다. 차라리 심장이 없으면 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아빠가 나를 먼저 불렀다. 큰 방에 문을 닫고 들어서니 공포심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진짜로 아빠가 생각한 내 잘못들은 오해라는 확신이 있었고, 해명해 줄 사촌언니도 있었으니까. 그때까지도 나는 아빠가 정말로, 타당한 이유로만 폭력을 교육의 도구로 삼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믿음은 무참히 깨어졌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아빠는 듣지 않았고, 모두 말대답이라고 하면서 한 마디마다 매를 쌓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오해라며 사촌언니가 들어와서 해명을 해도 그것조차도 내가 매를 맞을 횟수가 늘어나는 이유로만 쌓였다. 그럼에도 무슨 용기였을까. 그날만큼은 아빠를 설득하려고 했다. 평소에 그냥 최대한 적게 맞고 끝내려던 것과는 달랐다. 진심으로 억울했다.


그래봤자 결국 나는 폭력 앞에 무력했다. 분노에 찬 아빠는 평소와 다르게 몇 대 맞을지를 묻지도 않았다. 물론 그걸 물었을 때 내가 다시 한번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명을 시도했기에. 아마도 그 사람은 내가 스스로 기회를 날렸다고 했겠지만.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횟수로 손바닥을 맞았다. 있는 힘껏.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손바닥이 파랗고 두껍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나는 방에서 나왔다. 억울함에 울면서 엄마한테 정말 아니라고. 엄마도 알지 않냐고. 사촌언니의 말도 듣지 않았냐고.


그때 엄마가 반쯤은 체념한 듯, 반쯤은 귀찮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너네 아빠가 오늘 병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그래. 누가 엄청 크게 결제할 것처럼 와놓고 안 했나 봐. 그냥 넘어가.


만화책 속 배경 효과처럼, 무언가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믿음이었겠지. 어떤 정의와 도덕일 거라고 생각한 무언가에 대한 믿음.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배신. 물론 너무 공포스러웠고 손은 아팠지만. 그날만큼은 그 배신감이 너무 아파서 다른 것에 대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많은 일들에 무력했고 수긍했다. 내가 맞을 짓을 했다고 하면 나는 한 거고, 맞으라고 하면 내가 어쩔 도리 없이 상대의 자비에 기대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최선을 다해 그 상황이 빠르게 끝나기만을 빌었다. 폭력과 공포로 학습된 무기력은 인생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상흔은 지금도 내 삶에 남아있다.


이미 말했고, 앞으로도 여러 번 말할 거지만. 나는 원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는 줄 알았다. 내가 맞는 것에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맞는 것이 폭력이 아닌 줄 알았다. 아니어야 했다. 나는 맞으면서 크는 아이이고 싶지 않았다. 폭력의 피해자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될 줄 알았다. 물론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