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현 Jul 24. 2021

신세 좀 지겠습니다.

나는 혼자 잘 살지 못한다.

나는 신세 지는걸 영 못 견딘다.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든 돌려줘야 다음에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성격. 그래서 가끔은 태도가 딱딱해 보일 때도 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대부분 누군가가 시간을 내서 도와주려 하면 극구 거절하거나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이런 나도 마음껏 신세 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신세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편하게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남에 집에 눌러앉아서 밥을 해달라 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를 하고 맛있는 걸 사준다 해도 넙죽 받아먹을 수 있는.



그 사람들이 만만해서가 아니라 나도 기꺼이 똑같이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도 나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허락한다고 할 수 있다.

도움을 허락한다는 게 어찌 보면 시건방져 보일 테지만, 나로서는 반대로 그들도 똑같이 나에게 폐를 끼쳐도 된다는 뜻이다. 



청소년기에는  그다지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것 같다. 매년 반이 바뀌면 새로운 관계과 분위기에 적응해야 했고, 무엇보다 자존감과 가치관이 단단하게 자리 잡기 전의 나의 행동들은 실수투성이였다.

어쩌면 나에 대한 실망과 계속되는 단편적인 인간관계에 지치고 체념할 수도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실패를 토대로 딛고 일어날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다. 그게 인간관계이던, 직장에서의 기회이든 간에 나는 소위 '물 들어오는 시기'가 있다는 걸 조금은 믿는다.

나에게는 그 시기가 20살부터 운 좋게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고등학교 친구가 찐우정이라며 대학에서 사귀는 친구들은 계산적이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할 때, 나는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시기에 나는 비로소 내가 도움이 되거나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몸이 떨어져 있는 시기가 있고 내가 실수를 해도 나와의 관계를 놓지 않아 주는 사람들을 보며 어쩌면 내가 평생을 같이 갈 사람들을 빨리 만난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만 잘 살면 되지 다른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라는 말은 무시한 지 오래이다. 

적어도 나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 주변에서 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더 열심히 살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거고, 그 도움 없이는 지금의 내 모습이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러 사람이 다듬어 준 내 모습에 꽤 만족한다. 

내가 또 어떤 좋은 인연을 만나서 더 둥글게 깎일지는 모르지만, 설령 더 이상의 인연이 없다 해도 나는 행복할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좀 더 맞춰주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