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기에서 여행으로
원래는 나는 1~2주 정도 제주도에 머물고 친구가 잠깐 놀러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고, 막상 간다고 하니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려 마시고 산책하다가 발견한 카페에서 잠깐 업무를 하는...
좋게 말하면 다소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일주일 간 제주도에 별 다른 목적 없이 머무르기만 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제주는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가 힘든데 나는 면허조차 없고 결정적으로 나는 '그냥' 일주일이나 제주도에 가서 여유를 즐기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제주도 머물기'에서 '제주도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획보다는 짧게 다녀오되, 꽉 채워서 놀다 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나은 것 같았다.
1. 날짜 정하기와 비행기 티켓 예매
나는 프리랜서지만 친구는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휴가 일정을 맞춰봐야 했다.
물론, 메인작가님과 PD님과 제주도에 가려고 하는데 평소처럼 업무는 진행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친구가 쓸 수 있는 휴가는 목, 금.
이 이틀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 수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가서 토요일 오전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기로 했다. 여유롭게 토요일 저녁 비행기로 왔어도 좋았겠지만 오전 비행기의 저렴함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친구 직장과 내 집이 김포공항과 아주 가까워서 수요일 저녁 출발이 가능했다.
2. 숙소 정하기
친구와 나는 둘 다 운전을 못 하기 때문에 최대한 숙소는 한 곳으로 정해서 짐을 두고 다니는 게 베스트였다.
그런데 수요일은 저녁에 도착하니 일단 제주공항 근처 저렴한 호텔에서 하루를 묶고 다음날부터 숙소를 이어서 잡기로 했다.
우리는 엄청난 집순이들이기 때문에 숙소는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숙박비에 조금 많은 돈을 사용하는 것에 큰 위화감은 없었다. 제주도에서 여행을 마치며 가장 좋았던 것들을 같이 꼽아봤을 때 숙소도 빠지지 않았다.
3. 일정 정하기
여기서부터 우리는 평소 같지 않았다.
우리는 계획형 인간, 요즘 소위 말하는 J이다. 원래대로라면 3박 4일간의 코스를 짜서 갔을 테다.
일단 숙소를 친구가 알아봤기 때문에 나는 일정을 정할 때 어느 정도 기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나 보다.
숙소의 위치와 동선을 고려해서 가보고 싶은 곳과 체험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서 막무가내로 쏘아댔다.
많이 찾아놔야 그중 친구도 가고 싶은 몇 곳을 같이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왠지 계획을 짜는 게 설렘보다는 귀찮음과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게 느껴졌다.
내가 와다다다 링크를 보내니 친구도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서 보냈는데,
우리 둘 다 뭔가 시원치 않았다.
일정도 정할 겸, 퇴근길에 만나서 저녁을 먹는데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뭐 할지 찾아보고 정하는 거 너무 귀찮고 힘들지 않아?
딱! 나랑 같은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사업 준비로 바빴던 친구와, 여행 기간동안 할 일을 미리 하던 나는 이미 그걸로도 벅찼다!
우린 원래 제주도에 쉬러 가는 거였으니 뽕 뽑을 생각 말고 그냥 가서 바다 보고, 산책하고, 맛있는 밥 먹고, 좋은 숙소에서 쉬다가 오자는 게 그냥 우리가 그날 정한 계획의 끝이다.
아, 그런데 꼭 하자고 정한 게 있다.
흑돼지와 갈치구이를 먹고 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