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정 Mar 28. 2022

경험에서 건져 올려진 진실된 교훈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고전을 읽을 때면 과거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1914년에 쓰인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도 그랬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100년 전 사람들의 삶에 묘한 위로를 받는다. 인간이 느끼는 고유한 감정이란 것을 믿게 된다.  

특히 마지막  <선생님의 유서> 읽어 내려가는 동안 소설인지 수필인지 일기인지 헷갈릴 정도로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그러나 기교 없이 적어낸 이야기에 빠져들어 마지막까지 페이지끊임없이 넘겨댔다.

 

*

소설 속 선생님의 유서는 주인공을 위해 남겨졌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독자를 위해 이 세상에 남겨졌다.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남긴 이야기가 나쓰메 소세키가 우리(독자)에게 남기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몇천만 명이나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네한테만 내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네. 자넨 진실한 사람이니까. 자넨 진정 인생 그 자체에서 생겨난 교훈을 얻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니까.”

소설의 시작부터 주인공과 함께 걸어온 나라는 독자는 주인공만큼이나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를 순수한 마음으로 궁금해하고 있었고, 이쯤 왔을 땐 나 또한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경험에서 건져 올려진 진실된 교훈(교훈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을 받아 낼 생각으로 가슴이 뛰었다.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이 낳은 그림자를 숨김없이 자네의 머리 위로 쏟아내겠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어둠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붙잡게.”

이렇게 시작하는 선생님의 글에 완전히 몰입되어 내가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를 읽는, 그의 일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 세상에 남겨진 유일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이 전해준 깨달음은 체험을 통한 것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작위와 위선이 없었다. "냉철한 두뇌로 새로운 발견을 입에 담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원리를 이야기하는 편"을 택한 그의 이야기는 머리로 이해하는 이론과 원리보다 가슴에 파고드는 삶의 본모습이었다.  


*

“그 자리에 있는 사람 가운데 나만이 모든 걸 알고 있었지.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거라고.”

이 문장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외롭고 비밀의 경중에 따라 외로움의 크기와 깊이도 달라진다. 이처럼 ⟪마음⟫을 읽으며 나에게 가장 크게 전달되었던 감정은 ‘외로움'이었는데, '외롭', '외로운', '외로움', '외로워' 등의 단어가 14번 정도 등장하는 걸로 보아 외로움은 이 책의 중요한 정서가 맞는 것 같다. 비밀이라는 것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외로움이 아닐지.


*

순수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선생님을 따랐던 주인공.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 이 세상 유일하게 그에게는 비밀을 터놓았다.

“나를 만든 나의 과거는 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모든 걸 숨김없이 토해내기 위해 들인 나의 노력은 한 인간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네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헛수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이 부분도 참 좋았다.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편지를 남긴 이유와 가치,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가 우리에게 이 소설을 남긴 이유와 가치를 생각해본다. 솔직함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 내가 떠나도 계속 살아갈 한 사람에게 이렇게 남김없이 토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행했던 선과 잘못, 순수한 의도와 추악한 행동, 그런 것들을. 주인공처럼 누군가 나의 인생을 궁금해하고 내 이야기로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말이다.


*

'마음'이라는 제목을 다시 본다. "마음에 들지 않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대로 해", "속마음"...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라 별 감흥이 없었는데 책을 다 읽고 제목을 보니 마음이라는 단어가 정갈하고 천연하고, 왠지모르게 울컥하게 만든다.  


친구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우정이라는 마음, 나답지 않고 너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마음, 동경하는 마음, 인간의 미묘하고 모순된 마음들을 꾸밈없이 풀어내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여운이 많이 남는 독서였다.



커버이미지: <마음>과 어울리는 예술작품

J.M.W Turner,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작가의 이전글 조선의 승려 장인, 예술의 경지를 이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