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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정 Oct 20. 2023

Now(현재)가 사라진 <필립 거스턴> 전

테이트 모던 <필립 거스턴> 전

영국 런던 대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에서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테이트 모던, 보스턴 미술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휴스턴 미술관 순회 전시로 테이트 모던에서는 2024년 2월 25일까지 열린다.  


본래 2020년 예정이었던 <필립 거스턴 나우(Philip Guston Now)>가 2024년으로 연기되면서 논란이 있었는데, 많은 이들이 취소를 예견했던 전시가 3년 만에 공개되었다.


전시 연기의 이유는 필립 거스턴이 차용했던 (새삼스러울 것 없는)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백인 우월주의 단체)' 이미지다.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던 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을 계기로 인종차별 문제와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격해진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술관은 방문객들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전시 연기를 결정했다. 시기적으로 백인 작가가 말하는 인종 차별의 문제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미술관의 결정이었다. 다만, 관람객들이 거스턴의 작품과 더욱 연결될 수 있도록 그의 작품을 여러 방면에서 전략적으로 고려하고 이후에 개관하겠다는 미술관의 결정은 논쟁을 피하기 위한 핑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캐나다에서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거스턴의 생애와 1960년대 전쟁과 미국 사회 문제를 경험하며 추상을 버리고 구상으로 돌아온 그의 작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작품 속 KKK 이미지는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 그 복잡성을 드러내고 비판하기 위함임을 이해할 수 있다. 거스턴 작품 속 하얀 망토를 쓴 캐릭터는 담배를 피우거나 거리를 활보하고 대화를 나누는 등 일상적 행위를 반복하는데, 온갖 '악'이 망토 뒤에 숨어 우리 곁을 늘 맴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립 거스턴 전시 연기는 작가를 둘러싼 담론과 전시 연기 자체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질문을 끌어냈다. 2020년 전시 준비 당시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였던 마크 고드프리(Mark Godfrey)는 미술관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테이트 모던을 떠났고, 많은 예술가들이 전시 연기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미술관도 하나의 사업이지만, 미술관의 이러한 결정이 조금은 권위주의적이라고 느껴진다.

미술관은 논쟁을 거부하는 장소의 대척점에 있어야 할 곳이 아닌가? 사람들의 다양한 질문과 해석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비록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품을 수 있는/품어야 하는 다양성의 공간이 아닌가?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 그것이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공개할 의무가 있는 곳이 아닌가?


미술관은 작가의 작업물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바꿔 말하면, 미술관이 작품과 대중 사이에 개입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일을 통해 미술관 또는 전시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립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일깨워 준 것 같다. 우리는 늘 작품을 미술관과 같은 기관의 프레임 속에서 본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3년 전의 기획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힌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전시 연기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눈에 띄게 바뀐 점이라면, 전시 제목이다. <필립 거스턴 나우(Philip Guston Now)> 였던 전시는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으로 바뀌었다. 이전 타이틀에서 필립 거스턴이라는 예술가와 현재 우리 삶과의 관계를 보여주려 했다면, 바뀐 타이틀은 필립 거스턴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건 대규모 회고전, 거기까지라고 선을 그은 듯 느껴졌다.


*도록은 미리 찍어 두었는지 <필립 거스턴 나우>의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작품은 좋다. 전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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