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복숭아가 말한다.
우리는 의식주에 대한 탐욕과 거기서 발생하는 편견 혹은 선입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복숭아는 지브리 만화영화를 좋아한다.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천공의 섬 라퓨타>, <벼랑 위의 포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또 뭐더라, 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러니까 79년생 고갱이와 2010년생 복숭아는, 함께 <빨강머리 앤>을 DVD로 시청했다. <소공녀 세라>도 보고 싶지만 이는 지브리 삽화가 그려진 책으로 이미 읽었다. <붉은 돼지>의 OST"르땅데세리세"(복숭아 열 살 때 발음;) 도 수십 번 반복 재생했다. 충분히 미아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팬이라 자부한다. 토요일인 오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다. 벌써 10번은 족히 본 것 같은 느낌이 다.
복숭아는 다른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비해 특히 이 영화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빨리 감기로 돌리는 특정 장면이 있다. 바로 치히로의 엄마 아빠가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주인이 없는 포장마차에서 식탐을 부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나올 즈음부터 리모컨을 들고 대기하다가 후다닥 돌린다. 너무 무섭고 싫다 한다.
나는 이 장면이 왜 싫냐고 물었다.
"엄마 아빠가 배가 고팠나 봐. 그래서 저렇게 먹는 거겠지. 배고파서 먹는 건데 왜 싫어?"
복숭아가 답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인이 없는 가게에 들어가서 저렇게 먹어버리면 안 되지. 저건 도둑질이고... 나쁜 거잖아."
인간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라고 평가하는 대부분의 죄는 의식주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임과 동시에 본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본으로 충족되어야 할 욕망이 의이고 식이며 주다. 동물들은 이 세 가지만 충족된다면 딱히 빈곤을 느끼지 않는다는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짐승에 비해 탐욕을 부리는 부분이 바로 이 세 가지 영역이기도 하다.
의, 옷을 입고.
식, 밥을 먹고.
주, 잠을 자고.
가장 짐승의 본능에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본능에만 충실하는 짐승과 거리가 가장 먼.
"네가 저 장면이 싫은 이유가 뭔 거 같아?" 내가 물었다.
"그냥 싫은 건데. 싫은 데 이유가 있어야 해?" 사춘기 딸의 대답이다.
지금 여기 치히로의 부모도, 가깝게는 학부모 모임에 명품 백이 없어 고민을 하는 옆집 엄마도, 멀게는 LH 사건도, 결국 동물에 불과한 인간이 본능을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이에나도 아닌데 자신이 사냥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음식을 먹지 않아서,
에코백이라는 나무랄 때 없는 소지품 이동수단이 있는데도,
무엇보다 밤이 되면 자신과 가족이 함께 몸을 뉘일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배고픔을 참을 수 없고
남들의 이목에 자존심이 상할까 봐
남들보다 더 부자가 되고 싶어
그렇게 욕심을 부린 거고, 아직 어리고 순수한 너는 그 욕심이 무서워 이 장면이 싫은 것 같아.
"엄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나를 사랑한다면 굳이 그런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의식주보다 더 소중한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인간으로서의 삶, 그 자체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 함께 사랑하도록 노력하자.
너는 너를, 나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