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텃밭에 대한 로망이 있다. 집 뒷마당에 작은 텃밭을 두고 호박이나 상추, 깻잎 같은 채소를 길러 먹는 로망이다. 특히 요즘처럼 모든 물가가 치솟을 때면, 그리고 지난번 팬데믹 때처럼 고립을 겪게 되면 더 간절해진다. 따로 반찬값이 들지 않고 안정적으로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당장 돈을 주고 완성품을 사 오는 대신 기르고 만들고 기다리는 생활을 하는 데 자신의 노력과 시간, 재화를 기꺼이 들인다. 몇 년 전 히트 친 일본 만화 리틀 포레스트가 좋은 예다. 도시 생활에 시달린 사람들이 시골살이하는 처녀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받고 거기 열광했다. 나중에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작 느낌에 충실한 일본판과 한국 정서에 맞게 만들어진 한국판 모두 나름의 맛이 있었다.
그 뒤로 홀로 숲 속에 있는 작은 집에서 지내며 생활 미션을 수행해 나가는 ‘숲 속의 작은 집’이라는 예능이 나왔는데, 누구나 꾸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꿈을 대신 현실로 옮겨주었다. 언뜻 심심한 듯하지만 소소하면서 잔잔한 관찰 예능은 마치 시청자가 함께하는 느낌을 갖게 하면서도 숲에서 지내는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런 콘텐츠들이 성공하는 걸 보면 누구나 혹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현실 한쪽 귀퉁이에 내가 그런 꿈을 갖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20세기 초, 어쩌면 19세기말에 지었을지도 모를 그런 오래된 한옥이었다. 화초를 좋아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덕에 뒷마당은 온통 꽃밭이었다. 맨 오른쪽부터 장독대, 앵두나무, 장미, 그리고 여러 가지 꽃이 그득했다. 하지만 기력이 떨어진 할머니 대신 마당을 관리하게 된 건 우리 엄마. 엄마도 이쁜 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더 좋아했던 까닭에 뒷마당 일부는 텃밭이 되고야 말았다.
뒷마당 초입 담장을 따라 호박넝쿨을 올리고 마당 깊숙한 한쪽엔 옥수수가 우거졌다. 앞쪽으론 키 큰 순서대로 고추, 상추, 케일 같은 푸른 채소들이, 장독대를 따라선 부추가 줄을 지었다. 작은 텃밭은 사시사철 우리 식구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 특히 초여름부터 겨울로 들어설 때까지는 먹을 게 지천이었다. 여름에 바가지를 들고 뒷마당에 가 앵두를 따 오면 엄마는 거기에 흰 설탕을 뿌려 버무렸다. 새빨간 앵두에 눈처럼 하얗게 내려앉은 설탕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 시절, 부추나 상추는 뽑는 게 아니라 뜯는 거라는 걸 배웠다. 상추는 잎만 똑똑 뜯고, 부추는 뿌리까지 뽑힐세라 조심조심 끊어야 한다. 너무 힘을 줘서 잡아당기면 뿌리까지 쑥 뽑히니까. 고추도 그렇다. 요령껏 잡아채지 않으면 줄기가 상한다. 그렇게 아무런 약도 치지 않고 자란 푸성귀들은 우물물 한 바가지 부어 붙어있는 흙이나 먼지만 씻어내고 먹었다. 그야말로 청정 유기농 작물이었다.
뒷마당 텃밭에서 키우는 것들은 모두 연하고 야들야들했다. 그런데 유독 어떤 것 하나는 억세고 시퍼런 것이 가시처럼 뻣뻣한 흰 털이 온몸에 가득했다. 잘못 잡으면 손이 따가울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컴프리(그땐 캄프리 또는 캄푸리라고 불렀다)’라는 이름을 가진 채소였다. 컴프리는 캅카스가 원산인 작물로 196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와 차, 녹즙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비타민 B12가 풍부한 채소류인 컴프리는 빈혈, 소화, 위장질환, 피부염, 화상, 타박상, 관절염, 근육염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던 이것에서 2001년 간암을 일으키는 피롤리지딘 알칼로이드(pyrrolizidine alkaloid)라는 성분이 발견되면서 컴프리가 들어간 식품의 수입과 사용이 모두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재배조차 금지되었다니, 몸에 좋다고 며느리가 해드린 녹즙을 감사히 받아마셨던 우리 할머니는… 그 뒤로도 간에는 아무 이상 없이 잘 사시다 돌아가셨고, 텃밭에서 컴프리를 키워 정성껏 녹즙을 해드렸던 며느리도 이제 고인이 되셨다. 하지만 그걸 잡숫고 영문도 모른 채 간이 나빠졌던 분도 어딘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몸에 좋다는 거 너무 찾을 것도 못되구나 싶기도 하다.
여름이 한창일 때면 어린 내가 보기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옥수수 대에서 거둔 옥수수를 삶아 먹는 재미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 부엌 한쪽에 걸린 솥에선 뭉게뭉게 김이 소나기구름처럼 올라가면서 들큼한 냄새를 풍겼다. 옥수수를 삶을 땐 소금과 함께 뉴슈가나 사카린을 아주 조금 넣어야 한다. 설탕은 절대 쓰면 안 된다. 설탕으로는 그런 단 맛을 낼 수 없고, 그 정도 단 맛을 내려면 끈적거리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찐 옥수수의 단 맛은 옥수수 맛이 아니라 사카린 맛이다. 옥수수가 그렇게 달았다면 옥수수라는 이름 대신 아마 사탕수수라는 이름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길가에 있는 옥수수 솥에서 나는 들큼한 냄새는 옥수수 냄새가 아니라 옥수수와 사카린의 합작인 것이다.
고추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매운맛을 즐기기엔 너무 어렸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 살은 고추를 따기만 해도 아리고 아파 가까이하기 어려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꽃이 피고 고추가 열리기 시작할 때쯤 거둔 고춧잎으로 만든 나물은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나중에 커서 시장에서 보고 몇 번 고춧잎을 사다 삶아 무쳐봤는데, 그때처럼 야들야들하지 않고 억세기만 하고 향도 맛도 영 그만 못해 실망한 다음부턴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있다. 나물을 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더 실한 열매를 얻기 위해 솎아낸다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거둔 거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옥수수나 고추, 상추, 부추보다 더 많이 더 오래 충성을 다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호박이다. 봄이 되면 담장 아래 구덩이를 파고 지난 늦가을 거둬 말려 뒀던 호박씨를 심는다. 구덩이라고 해서 너무 깊으면 안 되고 너무 한꺼번에 몰빵 하듯 집어넣어도 안 된다. 몇 개씩 드문드문 넣고 흙을 덮는다. 싹이 나고 덩굴이 자라나기 시작하면 담장을 잘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끈이나 철사를 매어 둔다. 신기하게도 거기 뭐가 있다는 걸 아는 듯 타고 올라가며 쑥쑥 자란다. 그러고는 샛노랗다 못해 주황색에 가까운 꽃을 피운다.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했던가. 나팔처럼 생겼으면서도 살짝 굴곡진 그 생김새는 나리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때쯤 따는 어린 호박잎은 연하다. 거칠지도 질기지도 않고 야들야들한 데다 크기도 너무 크지 않고 적당해 쪄서 쌈 싸 먹기 딱 좋다.
그러다 보면 통통한 벌들이 붕붕 대고 달려들기 시작하고 곧이어 호박이 달리기 시작한다. 샛노란 꽃 아래 연두 빛 구슬 같은 호박이 맺히고, 그것이 점점 자라나는 모습은 경이롭다. 여름 내 파란 호박으로 충성을 다 하다 가을이 되면 누렇게 묵은 호박이 된다. 상추도 고추도 그리고 옥수수마저 다 스러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뒷마당 한쪽에서 홀로 남아 마지막까지 그렇게 충성을 다한다. 그렇게 남은 호박으로 죽을 쑤면 호박죽이 되고 말리면 호박고지가 되어 떡에 들어가 꿀맛을 내고, 정월 보름이면 묵은 나물이 되어 겨우내 김장김치로 버티던 입맛을 살려준다. 그뿐인가. 다음 해 봄이 되어 심은 씨앗은 다시 호박으로 부활하듯 살아나니 그 섭리가 묘하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비단 열매와 잎뿐 아니다. 심지어 호박은 꽃도 먹는다. 튀겨 먹고 구워 먹고 지져 먹고 또 데쳐서도 먹는다. 하나 버릴 데 없기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생을 노동을 제공하다 죽어서까지 남김없이 주고 가는 소와도 닮았다.
그렇게 호박이 생명을 다 하고 떠난 그 자리에 김장독을 파묻고 백 포기 이백 포기 되는 김장을 해 담았다. 그 시절 김장은 그렇게 많이 해도 비단 배추김치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 백김치, 동치미…. 무슨 김치 종류가 그리도 많은지. 밤, 잣, 문어, 실고추 등 여러 가지 고명을 넣어 화려한 보쌈김치, 간장으로 담아 매운 걸 싫어하는 나도 즐겨 먹었던 장김치,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짠지.
보쌈김치는 요즘 보쌈을 주문하면 딸려 나오는 보쌈김치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그렇게 고춧가루 범벅도 아니고 무채가 잔뜩 들어있지도 않다. 오히려 보통 배추김치보다 고춧가루 양념이 덜 들어가고 부재료가 가득 들어있다. 그래서 보쌈김치일까. 대신 빨리 익기 때문에 저장성은 떨어지니 빨리 먹어야 한다. 비록 보쌈김치가 아닌 그냥 배추김치에도 속을 넣을 때 배추 사이사이에 조기 살을 넣어 나중에 먹을 때면 보물찾기 하듯 찾아 먹는 재미가 있었다. 김치가 익으면 나오는 산 때문에 조기 살은 신기하게도 물컹거리는 맛없이 적당히 꾸덕하고 단단해져서 먹기 좋고 맛도 있었다.
물론 김치에 들어있는 조기살이 아이들 차지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요즘이야 아이들 우선이라 하지만, 옛날엔 층층시하 장유유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고 그다음엔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 아이들은 맨 나중에야 뭐든 그 차례가 되었다. 물론 어른들이 당신들 입으로 죄다 곧장 넣는 법은 없다.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주를 먼저 챙기는 것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먼저 챙겨야 한다 가르치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먼저, 어머니는 아버지가 먼저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존중받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먼저 챙긴다. 아이들은 어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어른은 또 아이들을 보살피는 상생의 도리를 배우고 살아갔다. 대가족이 모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좋은 점도 있었다.
그때 그 시절 뭐든 느긋한 템포로 살아가던 시절이 그립다. 언제 될지 모르지만 꿈꾸는 그곳에선 텃밭도 일구고 개와 고양이도 키운다. 하지만 4년간 시댁에서 경험한 단독주택 생활은 그런 생활을 새삼 다시 시작하기 겁나게 한다. 아무래도 좋은 추억만 있던 어린 시절과 살림하고 관리해야 하는 어른의 생활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단독주택에서 사노라면 시간과 노력은 물론이고 관리 유지비가 정말 많이 든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오래된 단독주택은 추위와 더위에 취약하다. 또 배관이나 전기 배선, 누수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야말로 큰 일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사람을 불러오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다. 텃밭에 대한 로망을 이루려다 자칫 열정과 금전 소모가 지나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시의 작은 아파트에서 랜선 집사 생활을 하며 지낸다. 텃밭에 대한 로망은 그저 꿈으로만 남긴 채 말이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말고 그저 첫사랑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름답다는데. 어쩌면 텃밭에 대한 로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