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매점이모와 하원 돌보미로 내가 투잡을 하고 있을 무렵 딸아이는 아나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하는 기간에는 돈을 벌 수 없기에 비용을 대주기로 하였다.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길 바랐다.
면접을 보고 온 딸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이의 꿈은 아나운서였다. 당시 학원에서 연습벌레로 소문날 만큼 뉴스 읽기와 발성 연습에 몰입했다. 전국의 크고 작은 방송국에 입사 지원서를 내며 꿈을 향해 달려가던 중이었다.
면접이 있던 그날은 지난 밤 꿈이 좋았다면서 기대감에 들떠서 나갔던 참이었다. 그랬던 딸이 집에 돌아와서 나를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 미안해. 나 아나운서 포기하려고. 이제 그만하고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불안감이 스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봤더니 면접에서 부모의 직업을 물어봤단다. 영화에서만 봤던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가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취업 면접에서!
그것도 모자라 그런 옷차림으로 아나운서를 할 수 있겠냐며 일어나서 돌아보라고 한 면접관의 말에 무너졌다.아이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을까? 그날 흘린 딸아이의 눈물은 어미인 나에게는 피눈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딸아이의 신우신염이 재발했다. 스트레스가 생길 때마다 한 번씩 크게 아프던 아이였다. 고열로 입원한 딸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취업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또 다른 직업이 아이의 취업에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여전히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스펙이 되는 세상이었다. 억울했지만, 현실이었다.
늦은 밤 입원실에서 딸 아이의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심장이 미어지는 거 같았다. 딸의 흐느낌을 들으며 무능한 어미인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니 세상을 향해 독기를 품었다. 모든 어미는 강하다고 했던가.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는 부모라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현실에 안주하며 벌면 쓰기 바빴다. 그동안 맞벌이를 해왔지만 돈을 모으지 않았다. 부자가 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 딱히 공부하거나 행동에 옮긴 것은 없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했다.
무능한 부모라서 미안한 마음에 나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 흐르며 마음이 무너졌다. 역시 개천에서는 용이 안 나오는구나! 딸은 이날을 마지막으로 아나운서의 꿈을 포기했다.
2년이란 시간동안 아나운서라는 꿈에만 매달려왔기에 포기한 후 한동안 멍하니 지내는 듯 보였다. 딸의 방황이 끝나기를 나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딸아이는 예전의 내 딸로 돌아와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긴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에 매달려 봤기에 후회는 없다고 하니 엄마로서 대견하기까지 했다.
“딸아!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건 풀면 된단다. 풀고 다시 시작해 보자!”
딸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날 이후로 딸과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다.
“딸아, 넌 잘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