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보다 Dec 19. 2023

ADHD라는 프레임

6. 나를 괴롭힌 그 한마디

중학생 학부모로 산다는 게 이런 불안한 매일을 의미하는 것일 줄이야. 그날 오전에 들은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저희 애가 ADHD진단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의 가해자 엄마 전화였다. 나는 그 사건의 피해자 엄마다. 올해 2학기부터 그 아이는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을 내 딸에게 행했고, 문제의 그날은 성폭력에 해당하는 발언까지 더했다. (구체적인 표현은 너무 끔찍해서 하지 않겠다) 그것도 수업시간에 큰 목소리로.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최근에 아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유난히 피곤해하는 것을 사춘기 탓으로 돌렸다. 사춘기를 핑계로 공부에 소홀할까 봐 더 엄격하게 대했다.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라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전하던 선생님의 손이 떨렸고 목소리는 울먹거렸다. 


내 딸은 몇 달 동안 그 가해자무리들에게 시달리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루 6~7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언어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참고 외면하며 버텼던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버티는 내 딸이 그들에게는 더욱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학교 측의 발 빠른 대처로 증거는 충분했고 가해자들은 인정했다. 이제 어떤 절차를 밟을 것이냐는 우리 쪽에서 정해야 했다.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학교 자체해결' 방법으로 가해자 측에서 사과하고 원만하게 화해하는 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교육청 심의'방법으로 소위 말하는 학폭위절차였다. 우리는 교육청 심의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심의가 열리기 전에는 얼마든지 절차를 중지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의 반성과 변화가 보인다면 중지할 마음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매일매일 물어봤다. 

"오늘은 어땠어? 좀 달라졌어?"

"뭐, 똑같던대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대화의 반복이었다. 역시 합당한 징계는 반드시 필요하구나 하고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가해학생들과 달리 가해자 중 한 명의 엄마는 나에게 여러 번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절절히 사과를 했다. 나는 그에 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런 연락 원치 않는다고 학교 측에 간접적으로 전했다. 하지만 그쪽은 개의치 않는 듯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교육청 심의를 통한 징계는 받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은 교육청 심의라고 해도 퇴학 등의 강한 처벌은 내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또한 징계를 받더라도 2년 뒤에 삭제되기 때문에 입시 등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계속 나에게 오는 그 엄마의 연락에 내가 혹시 잘 못 알고 있나 싶어서 학교 측에 다시 확인도 했다. 내가 가해자의 장래를 걱정해줘야 하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리니까...'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엄마는 말로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결국 자기 아이에게는 조금의 흠집도 내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이 보였다. '그럼 내 아이는. 내 딸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데. 징계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흠집일 수 있지만, 내 아이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아. 그래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고.' 이렇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래도 나는 그에 대응하지 않았다. 


교육청 심의를 4일 앞둔 날, 결국 그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만큼은 하지 않길 바랬는데 내 의사는 무시당했다. 용건은 메시지와 같았다. 그녀의 말투는 간절했지만 내 마음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리고 결국 꺼낸 말이 그것이었다. 내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았다고.

그 말 한마디는 나에게 타격을 주었다. 


나는 ADHD에 대해서 잘 모른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문자적인 뜻 정도만 알고 있다. 같은 엄마의 입장으로 아이가 아프다고 그래서 약을 먹고 있다는 말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머리가 아팠다. 이런 결정을 바꾸지 않는 내가 나쁜 건가. 


딸에게 그 아이가 ADHD라고 말해줬다. 딸의 대답은 이랬다.

"그럴 리가요. 걔는 ADHD인 다른 아이들을 놀리고 괴롭히는대요."

딸의 말을 들으니 나는 이제 진위여부를 따지고 있었다. 내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사실을. 

브런치의 글을 보면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그들의 어려움과 상처에 모두들 공감하고 눈물 흘린다. 순간 내가 오히려 가해자가 된 느낌이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까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 됐어.' 생각을 붙잡았다. 그 엄마가 던진 프레임에 갇히면 안 돼.


그리고 나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그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은 것이 맞을 것이다. 나도 엄마의 입장이니 그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이번 사건의 원인도 아니며 핑계가 될 수도 없다. 그 학생은 분명 잘못을 했고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건 사적인 보복이 아니다. 분명 공익의 목적이 있는 결정이다. 


이제 교육청 심의는 결론이 났다. 이번 사건을 학교폭력으로 판단하였고, 가해자 학생들에게는 조치사항이 통보되었다. 


교육청의 결론은 났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다. 내 딸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보듬어줘야 한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일깨워주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내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내가 먼저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더 크고 깊은 사랑으로 딸을 안아줄 것이다. 




(사진출처: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