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이었다. 평소대로 나는 주방 테이블에 앉아 책도 읽고 이것저것 하고 있었다. 한참 지나 남편은 부스스한 얼굴로 안방에서 나왔다. 나는 하던 거 하고 있고, 남편은 자신의 루틴대로 물로 입 헹구고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유일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아침 시간은 나에게 꿀처럼 달콤한 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은 남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나에 대한 관심을 철저히 끊는다. 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면 험한 꼴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 남편의 생존법이다.
그날도 분명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왠지 탐탁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이건 권태기 부부의 모습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눈도 안 맞추고 대화도 없고 각자 할 일 하고... 이건 아니지!'
이런 생각에 이르자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는 남편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인사도 안 해?
분명 나의 상상은 이랬다. 애교 있는 아내의 투정, 그리고 다정한 부부가 나누는 달콤한 아침인사. 현실은 나의 의도와는 너무나 먼 험한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그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혼내는 말투였다.
'어... 이게 아닌데...' 나의 흔들리는 표정을 포착한 순간, 남편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해졌다. 이런 상황을 놓칠 그가 아니었다.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꼽 위로 올렸다. 그리고 90도로 몸을 숙였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형님!
푸하하하. 아침부터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까지 찔끔 났다. 그래, 웃었으니까 됐다. 우리는 권태기 부부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누가 시켰다고)
그 후로 종종 아침마다 남편의 문안인사를 받게 된 나.
나 이런 엄청난(?)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