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덫>을 보다가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 <청춘의 덫>이 자꾸 걸린다. 내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탓이다. 어제도 알고리즘의 인도를 따라 별생각 없이 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수없이 봤던 내용. 다음에 어떤 장면, 어떤 대사가 나올지도 다 알고 있으니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극 중에서 영국은 집안의 사고뭉치다. 수없이 여자문제로 사고를 쳤고, 시끌벅적한 이혼 경력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회사를 경영하던 작은 아버지는 이제 은퇴를 준비하겠다고 하니 꼼짝없이 영국이 회사를 맡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 계시다. 낳아준 어머니와 호적상 어머니. 낳아준 어머니는 아들이 회사를 맡게 되는 것에 불안해하고 몹시 못마땅해한다. 그녀는 아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영국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은 그럴만하다. 그걸 잘 알고 있지만 영국은 생모의 가시 돋친 말에 상처를 받는다.
영국은 생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성북동 어머니께 가서 위로받는다. 영국에게 호적상 어머니는 생모보다 더 어머니 같은, 그 누구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존재.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영국: 어머니... 어머니는 저 회사 나가는 거 불안하지 않으세요?
어머니: 불안할 일이 뭐가 있어?
영국: 절... 믿으세요?
어머니: 자식을 안 믿으면 누굴 믿어. 내 걱정은 그저 네가 내가 널 믿는 만큼 너 자신을 안 믿을까 봐, 그것뿐이야. 자신을 믿어야 해... 불안하게 생각할 거 없어. 너 잘할 거야.
그리고 말없이 어머니를 바라보는 영국의 표정.
나는 새삼스레 이 장면에서 뭉클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어떤 신뢰를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한 교본 같은 대사. '사랑한다'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말. 이분은 어머니라는 존재의 이상향과도 같은 분이구나.
나도 이런 뜨뜻한 사랑을 받고 싶었다. 내가 잘했든 잘못했든 상관없이 무조건 믿어주는 마음이 필요했다. "네가 잘못된 길로 갈까 봐 걱정돼"라는 말이 아니라 "너는 잘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도 돼."라는 말이 고팠다. 그래서일까. 나는 솔직히 영국의 생모에 가까운 편이다. 자식이 내게 보여준 모습만큼만 신뢰하는 부족한 어미.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
사랑은 조건 없는 신뢰를 주는 마음이다.
나의 불완전한 신뢰가 스스로에게 혹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긴 상처를 돌아보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