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인 줄 알았습니다.

월요일의 날벼락

by 순짱

그날의 일요일은 참 좋았더란다. 주중에 달고 살던 몸살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져 역시 인간은 일하지 않으면 아픔이 낫는다는 진리를 경험했다. 오후에 바에서 한국인 친구를 만났다. 한과 설움의 민족답게 소원해졌던 사이에 대한 회포를 풀으며 울고 웃었더니 맥주가 주문하는 족족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저녁 무렵에 남편이 데리러 왔을 때는 남편에게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외치며 차에 탔다. 술꾼에겐 더할 나위 없는 주말 마무리였다.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다시 찾아온 듯한 몸살 기운, 아니, 몸살이라기보다 조금 개운치 않은 머리와 뱃속을 느끼며 일어났다. 세상에, 그깟 맥주 좀 들이부었기로니 숙취라니! 나도 이제 정말 나이를 들어가나 봐, 혹시 월요병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별수 없이 출근을 했다. 오후에 집에 와서도 몸이 여전히 회복이 안된 듯해서 일찌감치 잠이 쏟아지게 하는 감기약을 먹고 일찍 잘 요량이었다. 가루 형태의 감기약을 물에 타면서 감기약 겉면의 활자를 습관처럼 읽고 있던 중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다.



그 작은 그림을 보는 짧은 찰나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지난번 생리가 언제였지? 요즘 좀 소홀하지 않았었나? 자궁근종 때문에 경구피임약도 잠깐 끊었는데, 근데 에이 설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하늘 한번 홀겼다고 별이 떨어지기야 하겠나, 그래서 지난번 생리가 언제였는데, 지금 일주일이 늦네, 일주일 정도야 이래저래 늦게도 빨리도 하지 않나, 그럼 이 몸살인 듯 몸살 아닌 몸살 같은 희한한 몸살기는 뭔데, 이럴게 아니다, 이럴게 아니야.’

나는 그 길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길에 테스트기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의 목소리에도 어렴풋이 놀람이 묻어났다. 남편은 두 개의 테스트기를 들고 돌아왔다. 나는 테스트기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괜히 뭐 기대하진 말고. 혹시나 해서 하는 거니까.”

말과는 다르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나도 쫄렸다. 나는 딩크족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아기를 낳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었지만(나 왈: 그… 한동안 귀엽지 않나?), 낳지 말아야 할 논리적인 이유는 대충 마흔육십백 가지 정도 댈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와 범지구적인 이유를 아우르는 논리들이었다. 동시에 딩크족인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불안 또한 안고 있었다. 세상은 자꾸 내게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종용했으므로. 주변의 기혼자 중 아이가 없는 선배 커플들의 예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으므로. 인터넷에서는 출산율이 낮고 딩크가 흔하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내가 느끼기엔 개척자가 된 것 같았다.

[쉬이이…..]

정말 임신이라면 나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 설렘? 걱정? 혼란? 임신이 아니라면..? 나는 실망할까, 안도할까? 혹은 실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될까? 소변이 졸졸 흘러 테스트기를 적셨고, 20초도 지나지 않아 선명한 붉은 줄이 두줄 생겼다.

숙취인 줄 알았는데, 임신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