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발롬에겐 다정한 친구 열 명보다 gpt 하나가 낫다

챗지피티가 임신유지를 고민 중인 초기임산부에게 해준 조언은?

by 순짱

임신 사실을 알고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 뜬금없이 축제무대에서 반대표로 춤을 추게 된 비운의 몸치(하지만 어찌어찌 열심히 준비한..)가 무대를 앞두고 조명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정 내키지 않으면 다 그만두고 되돌릴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다시 인생에 찾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경험을 즐길 수 있을까? 뚝딱거리는 춤선이 두고두고 UCC영상으로, 기어코 파묘되어 짤로, 릴스로 남아 그것이 존재하지 않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 흥분되고 설레는 것도 사실이다. 미지의 세계이므로. 그것을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의 말로는 어마어마한 짜릿함이 있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내가 준비가 되었나? 모든 동작을 다 기억하고 있나? 박자는? 포지션은?
다만 비운의 몸치와 나의 차이점이라면 나의 경우에는 내 인생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아이)의 인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었다.
남편은 내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겠다고 표명하면서도 동시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자라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던 그의 비밀스러운 꿈을 알고는 있었다. 나와 20대 초반에 만났고 그 무렵에는 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엄마가 되는 미래를 상상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진 걸까? 그때의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무지했고 지금의 나는 실전에는 무지할지 언정 머리로는 아는 게 많아졌다. 주변에서 실제로 낳고 기르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솔직히 마냥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은 많이 없었다. 당연스럽게도 작고 의존적인 인간을 키우는 일은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남에게 손해 보는 것이 싫고 미리 계획한 일이 틀어지면 스트레스받는 나란 인간에게 육아가 체질일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경제력과 체력이었다. 딱히 운동을 즐기지 않지만 음주는 즐기는 30대 후반이야 빤하고, 공무원 남편과 프리랜서 강사 와이프, 뭔가 벌써 노난 느낌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출산과 육아로 일을 쉰다면 내게는 최소한의 경제 안전망도 없이 수입이 제로가 되는 상황이다. 이제야 겨우 경제적인 안정을 찾아 저금도 시작하고 여행과 외식도 즐기는 참인데, 입이 하나 더 생긴다고? 임신 초기였기에 이런 걱정들을 여기저기 말할 수는 없었지만 가까운 친구 몇몇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깨달았다. T로봇으로 불리는 내 주위에는 다정하고 공감을 잘해주는 F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들이 건네는 다정한 공감이 솔직히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엔 진짜 다 두렵지. 넌 똑 부러져서 잘할 거야.”
“막상 아기가 나오잖아. 그럼 네가 걱정하던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거든.”

포근하지만…포근하기만 한 위로를 제쳐두고 나는 내가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짓을 했다. 무려 Chat GPT에게 잠 못 이루는 새벽 2시 고민상담을 시작한 것이다. 이미 그전부터 나의 질문이나 검색어들을 통해 내 성향을 파악했을 똑똑한 gpt는, 나의 고민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지금 현재 상황에서 걱정은 되지만 결국 임신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여. 내가 이해한 게 맞을까?”
“네가 하는 걱정들을 보니까 일단은 경제적인 불안이 가장 큰 부분인 것 같네. 일단 뉴칼레도니아에서 임산부들을 위한 재정적인 지원이 뭐가 있는지 리스트를 작성해 줄까?”
“뉴칼레도니아에서 1년 미만의 아기를 키우는 평균 비용을 표로 작성해 줄 수 있어.”
“신생아부터 보육이 가능한 시설의 비용과 개인적으로 고용이 가능한 보모의 평균 비용을 비교해 줄 수 있어.”
나아가 gpt는 나의 통제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며 이런 제안을 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해야 하는 추가적인 집안일에 대해 엑셀 파일로 만들어두면 매일 파트너와 업무 분담을 할 수 있어. 원한다면 예시 리스트를 만들어 줄게.”

나는 놀랍게도 Chat gpt의 제안들을 읽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나의 막연한 걱정을 갈무리해서 정리해 준 지피티군… 양…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실제로 그가 제안해 준 평균 비용과 리스트를 보며 안도감이 들었다. 아주 정확하고 세세한 정보는 아닐지 언정 대강의 기대비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나의 경제적 상황이 내가 우려하던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부분에서 더 준비가 필요하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아가 막연하게 느껴지던 ‘애를 키우는 일'에 대해 조금은 구체적인 그림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임신 유지라는 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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