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사자의 서
전에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적이 있다.
한 수강생이 그를 찾아와 시한부 인생임을 밝히고 자신의 강의를 들었단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책을 읽는 내내 그 수강생이 연상되어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먼저 저 강의는 논리학에 기초하여 사후세계가 없음을 증명하는 내용이 책의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다. 꽤나 복잡한 과학적 사고체계를 통해 죽음을 '논증'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그러한 논증이 도움이 됐을까?
또 한 가지는 교수는 죽음에 대해 강의하지만, 그에게조차도 죽음이란 개념은 -적어도 그가 직접 죽기 직전까지는 -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죽는 이는 모두 타인'일뿐이다. 마지막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죽음은 여전히 반증 불가능의 애매한 영역에 머문다는 점에서 그의 강의는 학문적인 어떤 이론일 뿐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모두들 비통에 빠지지도, 매일 죽음을 인식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고 있다. 죽음의 시점 역시 가리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흔을 넘어가면서 죽음은 유한한 시간의 형태로 절실히 느껴질 때가 많아진다. 젊은 시절에 떠올리는 죽음이래 봐야 수억 광년 떨어진 초신성 폭발처럼 보일 뿐이다. 극적인 폭발이 느껴지지도 않고 멈춰진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삶에는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을 어떤 우주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와 반대로 중년 이후에 느껴지는 우울함이나 허무함, 직장에서의 예민함의 이면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유한한 시간을 갖게 된 실존적 체감이 자리한다.
존재의 남은 시간을 이 정도의 일을 하고 돈을 벌며, 무익한 감정싸움을 하며 지내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에 대한 깨달음이고, 또 한편으론 자신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때엔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티베트 불교의 성인으로 일컫는 파드마 삼바바가 남긴 문헌 중 일부이다. 주로 기도문과 기도문을 읽는 방법과 관련된 설명으로 되어있다. 내세와 윤회를 강조하는 불교에서는 죽은 자가 육도라고 하는 6가지 세계의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죽음에 이른 존재는 자신의 죽음에 당황하고 황망하여 어떤 길(빛)을 따라가야 할지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그때 망자의 곁에서 기도문을 읽어주는 행위는 그를 더 좋은 곳으로 이르게 해주는 안내문 역할을 해준다.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이 삶의 끝은 진정한 끝이 아니고 다만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믿음은 위로를 준다. 담담히 죽음 이후의 세계를 세세히 설명하는 이 경전을 읽다 보면 그래서인지 마음이 평온해진다. 극단적인 첨단(尖端)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이음매로 존재하는 죽음이란 세계관은 어쩌지 못할 우리 삶의 아쉬움들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느끼게 될 상실감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단순히 좋은 곳으로 갔다... 정도의 위로가 아니다. 더 깊고 큰 위로의 본질은 이 기도문을 망자 곁에서 읽어주는 행위에 있다. 죽음이 사랑하는 이를 덮었을 때, 그를 더 사랑해주고,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과 한탄이 슬픔과 상처로 다가온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실존적 개체의 상실인 동시에 다시는 그를 사랑해줄 수 없다는 현실적 방법론의 상실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그의 또 다른 삶을 위해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는 믿음은 상실한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 빛을 따라가... 무서운 신들의 모습은 사실은 자애로운 신이야... 이런 이미지가 보인다면 조심해..."와 같은 기도문을 읽는 과정에서, 죽은 자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 역시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영어로 옮기고 엮어낸 서먼 교수는 서구가 외재적 현대화에 몰입해왔다면, 티베트인들은 내재적 현대화를 해왔다고 단언한다.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현실과 과학의 차원에서 극복하려 했던 서구인들과 달리, 티베트인들은 <티베트 사자의 서>와 같은 경전을 통해 죽음을 내재적으로 극복하는 동시에 죽은 자와 산자, 죽음과 삶이란 이항대립적 개념을 긴 무명실로 직조해내는, 심리적 차원의 공감에 기반한 사상적 체계를 만들어 냈다.
또 하나, <티베트 사자의 서>의 원 제목은 <바르도 퇴 돌( Bardo thos grol)>이다. 바르도란 중간계란 뜻이다. 티베트인들은 중간계를 6가지로 구분한다. 탄생과 죽음, 잠과 깸, 깸과 초월, 죽음과 죽음 직후, 죽음과 탄생, 태어나기 직전과 태어난 직후. '퇴 돌'이 깨달음이란 의미임을 생각해보면, 이 경전은 중간에 걸친 모든 존재들을 위한 깨달음의 책이란 뜻이 된다. 태어나서 마흔 줄이 되어 인생 시간표의 중간을 건너는 중년에게도, 죽음과 삶, 기쁨과 슬픔, 목표와 허무 사이 중간계를 배회하는 인생은 모두 그저 중간계에 속한 중간의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중간에 끼인 사이 존재(人間)라는 깨달음만으로도 목표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가 아니며, 지금의 괴로움은 영원한 괴로움도, 지금의 기쁨이 영원한 기쁨도 아니란 깨달음에 숙연해진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OOO여!
그대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이 소위 '죽음'이라는 것이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의 영적인 인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시오.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갖도록 하시오.
아! 이제 죽는구나. 이 죽음을 기회로 삼아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깨달은 존재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우주를 가득 메운 중생들을 위해 완전한 불성을 성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