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철학 1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지난번에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를 읽으며 저자의 이론이 기존의 현상학 이론과 너무 닮았는데 왜 현상학 이야기가 없지 싶어 서재에 꽂혀 있던 오랜 책을 다시 꺼냈다. 제목은 건조하게도 <현대의 철학 1>이다. 서울대학교 교수님들이 서울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대학 교양 총서 시리즈로 집필한 책인데, 초판이 1980년도에 나왔다. 무려 40년 전 발간된 얇은 책이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모 댁에 신세 지고 있을 때 사촌 형이 갖고 있던 교재가 아닐까 싶은데 어쨌거나 이 책을 다시 읽다 보니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소멸 직전의 동아리가 있었고 전형적인 '아싸의 표본'같던 나답게 그 소멸 직전의 고요함이 마음에 들어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었다. 회원이라고 해봐야 정외과 동기 2명과 나, 이렇게 세명이 주축이었고 동아리의 방향을 어떻게 정하든 상관없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이미 다 쓰러져가는 동아리인데 뭐...'란, 약간은 신나는 심정으로 토론을 활동 콘셉트로 잡아 동아리를 운영했다.
어떤 날은 영화를 보고 토론, 어떤 날은 소설을 보고 토론, 여름방학엔 맑스이론이나 공부해볼까? 라며 여름방학을 맑스경제학을 붙들고 보내기도 했다. 그 사이, '진짜' 동아리 활동을 꿈꿨던 정외과 친구는 학내 제대로 된 동아리나 대학 간 연합동아리에서 여기서는 펼칠 수 없던 왕성한 사교력을 뿜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아리 방에는 근처 대학의 학생 등 전혀 알지 못하는 인사들이 들락거리는, 일종의 살롱이 되어버렸고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법 뻔뻔하게 폼을 잡으며 말도 안 되는 토론을 이어갔다.
그즈음 이 책, <현대의 철학 1>은 20세기 초부터 1980년대까지 철학 흐름이나 공부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합의하에 선택한 책이다. 예전의 교수님이 쓰신 책들이 그러하듯 이 책의 머리말에는 '서술에 있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쓰도록 애썼지만 과연 뜻대로 되었는지...'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에 대해 당시의 우리의 솔직한 심정으론, '교수님은 실패하셨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이 책을 끌어안고 끙끙거리며 다시 매미조차 더워서 울지 않는 지루하고 무더운 여름을 보냈었다.
20세기 초반 이후의 철학을 다룬 책답게 당시 구대륙(유럽)의 주요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실존주의, 현상학, 비판이론을 다룬다.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이나, 라캉, 근대와 현대에 걸친 니체, 언어학과 기호학,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논리철학이라든지 등은 생략되어 있으나 한 세기를 대중적으로 휩쓴 사상으로 저 셋을 꼽은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특히 저들 사상이 펼쳐 보이는 이론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이 겨냥하고 있는, 혹은 이론이 탄생하게 된 당시의 현실적 지평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서구 철학의 큰 흐름은 중세시대의 암흑기를 거쳐, 신 없이 인간으로서 진리에 다가가려 했던 칸트의 작업이 있었고, 뒤이어 헤겔이 나타나 이성에 의지한 변증법적 낙관론을 펼치게 된다. 근대는 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고 해석해야 했던 중세와 달리, 신의 눈치 안 보고 인간의 눈으로 세계를 보게 되었다. 과학적 발견이 뒤를 이었고, 이는 산업혁명으로 이어졌으며, 신이 없어도 인간에겐 이성이 있으므로 모든 진리를 밝히고 답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는 꿈과 낭만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성의 힘을 확신한 계몽주의, 과학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실증주의, 논리를 중시하는 합리주의로 대표되는 이상적 세계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도리어 산업화의 부작용, 비인간화, 인간소외, 계몽을 앞세운 제국주의적 폭력은 1,2차 세계대전이란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왔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고,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과학적 방법론으로 진리에 다가가려 했는데 왜 실패했지?
실존주의와 현상학, 비판이론은 바로 이들 질문에 대한 석학들의 해답이다. 당연히 그들은 계몽주의, 과학실증주의, 합리주의 타파를 위해 이성의 객체화, 객관화에 맞선 주체성의 철학, 인간 존재와 의식을 중심으로 한 휴머니즘, 신체와 의식은 물론 인간의 세계와 관련성을 조명한 관계의 사상을 내세운다.
이들 사상체계의 전반적 흐름을 쉽게 알기 위해서 일단 상상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세계의 정체는 피조물로서의 우리보다 창조주로서의 우리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어느 날, 프로그래머인 나는 심즈나 문명 같은 게임을 하나 만든다. 게임 속에는 당연히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게임이 정교하게 설계된 덕에 그 게임 속 캐릭터들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이 세계는 뭐지?'
상상해보자. 이 게임 속 캐릭터는 3차원인 것처럼 꾸며진, 실제로는 2차원 모니터 평면 속에 산다. 그들은 우리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몇 가지 프로그램 코드로 코딩된 존재라는 걸 알아낼 수 있을까? 혹은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실제론 자기를 구동하는 PC의 마더보드, CPU와 RAM이란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까? 게임 캐릭터는 가상의 3차원을 현재로 살지만 실제론 2차원적 존재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그들을 들여다볼 수 있고 게임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볼 수도, 또 시간 설정을 빨리 돌려서 그들의 미래 역시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들보다 높은 차원에 존재하고, 이것이 과학적 차원 개념에 의해 도출된 원리다. 우리가 2차원 존재의 몸을 가르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그들의 장기기관을 볼 수 있듯, 인간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는 칼 없이 우리를 수술할 수 있다.
철학자들의 가정은 우리를 게임 속 캐릭터와 같다...라는 전제하에 접근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어렵게 느껴지는 형이상학의 전통적 존재론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분명 이 세계는 게임 바깥의 진리(예를 들어, 게임 속 의자에 상응하는 프로그래머의 의자)가 있기에 게임 속(세계)에도 의자(프로그래머의 의자를 모방한 존재)가 있겠지라고 본다. 이때 프로그래머의 의자는 궁극적 실체이므로 '존재'라고 부르고, 게임 속 의자는 '존재자'라고 부른다.
철학에서는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칸트는 게임 세계(현상 세계) 속에 나타난 다양한 의자(존재자)를 보고 의자(존재)에 대해 내가 사고할 수 있으므로 궁극의 의자는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 궁극의 의자(물자체)가 뭔지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실존주의와 현상학은 여기서 '내가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음'에 주목한 철학이다.
인간도 프로그래머가 만들어낸 존재자일까? 게임 속 캐릭터고, 게임 밖 누군가(신 혹은 프로그래머)가 코딩한 존재라면 존재자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존재자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게임 속(현상 세계) 의자, 강아지, 자동차와는 다르게, 인간은 존재자로 있으면서도 스스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에 늘 관심을 갖고 인생을 만들어간다. 실존주의는 이렇게 인간을 모든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그렇다면 세계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세계를 파악하는 것도 인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실존주의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학은 바로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인식하는지에 관한 의식의 문제를 파고든다. 프로그래머가 과연 있는지, 우리를 있게 하는 CPU나 RAM의 존재 여부는 파악하기 어려우니 잠시 괄호를 쳐두자. 그래야 의식 자체에 대해 명증한 사고가 가능하니까.(판단 중지) 그다음 게임 속 세계(현상 세계)를 어떻게 우리가 파악하는지 의식 과정을 살펴본다. 예를 들어 우리 의식은 나무로 된 물체(질료)를 본다. 그 물체를 보며, 앉을 수 있겠는데?라고 의미부여를 한다.(노에시스) 그 결과 의자라고 하는 의미가 발생한다.(노에마) 이런 과정을 현상학자 훗설은 '구성'이라 불렀다. 모든 세계는 주관에 의해 구성된 의미로서만 존재 타당성을 갖는다. 이 과정에 의하면 앞서 괄호 쳐두었던 것들도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의미 있는 존재로 되살아난다. 즉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모든 세계(현상)가 곧 탐구 가능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현상학적 환원)
실존주의와 마찬가지로 현상학이 등장한 배경은 컴퓨터 속 세계일지 모르는 이 세계(현상 세계)의 사물을 대상화해서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그 실체를 확정해버리는 과학실증주의, 이성중심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컴퓨터 속 캐릭터가 맞다면, 의자를 객관적으로 지켜봐 봤자 게임 속 의자는 이러저러한 특성을 지닌 어떤 것이구나로 그칠 뿐, 프로그램된 물리법칙에 따라 기능하는 코드의 집합일 뿐이란 진실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현상학은 <사상, 그 자체에로!>라는 표어처럼 의식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게임 속 의자(현상) 일지 모르는 모든 현상을 제로 세팅 상태에서 바라보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의 진실을 밝히기보단, 여러 선입견을 제거하고 세계 그대로를 출현시켜 사유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실존주의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등 존재로 정의하지 않고, 뭔지 알 수 없는 세계에 던져져(피투 된) 무의 불안증에 허덕이는 존재임을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 달리, 스스로 선택하고 창조해가는 독특한 존재임을 밝혀낸다.
이 책, <현대의 철학>에서 소개된 주요 사상들은 과학과 데이터, 첨단 기술과 거대한 공장의 부품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끝까지 밀어붙여졌을 때 나타날 불행한 세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이론들이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듯 내가 아닌, 다른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는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계약이 끝나면, 퇴직을 하면 그 자리는 쉽게 채워진다. 우리는 새롭게 바꿔낄 수 있는 부품이나 의자가 아니다. 나는 그 어떤 존재로도 대체될 수 없는 독특함과 의식, 사상을 가지고 있다. 세계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체계 속에 나타난 현상이며 그렇게 구성된 세계-내-존재로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세계와 내가 한 덩어리의 유기체처럼 존재한다는 사상은, 과장과 상상을 덧붙이자면 나의 소멸은 곧 이 세계의 소멸이 아닐까란 깨달음을 조용히 떠오르게 한다.
실존철학은 처음부터 주체에 진리가 있다고 내세웠다. 즉 진리는 객관적으로 비인칭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니라 나의 혼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체계적인 진리라면 논리적으로도 증명도 되겠지만 영혼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진리는 영혼의 역사를 묘사함으로써 전달될 수밖에 없다. 즉 실존철학이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명제나 논리적 체계의 확립이 아니라 영혼 스스로의 결단이며 선택이다.
<현대의 철학 1>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