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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Jun 22. 2024

휴직을 해야 하는 이유

쉼이 채워주는 힘을 알게 한 일

 이하 코파일럿 그림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회사에는 방학이 없다!  


방학이 없으니 쉬면서 충전을 하거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인사이트를 얻기도 힘들다. 일 년 내내 출근을 하다 보면 누구나 관성적이 된다. 루틴이 생기고 그에 따라 사고 역시 고정되고 만다. 시나브로 회사가 내 우주의 모든 것이 된다. 언젠가 그만 다닐 수밖에 없는 직장인데 회사형 인간으로 변한다. 위험하다. 쉬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회사마다 육아휴직, 질병휴직, 유학이나 배우자 동반 휴직, 가사 휴직, 안식년 등 다양한 휴직 제도가 있다. 그런데 휴직을 결정하긴 쉽지 않다. 내가 빠지면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하기에 눈치가 보이이기도 하고 개인 사정에 의한 청원 휴직의 경우엔 윗사람 등 다른 사람이 압박을 넣는 경우도 많다. 수입이 줄게 되니 금전적인 문제도 걸림돌이다.


따라서 휴직을 할 때는 사전 준비와 시뮬레이션을 해놓는 편이 좋다. 경제적 문제도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휴직 시점 역시 회사나 동료들에게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회사 내 변화의 타이밍, 예를 들면 조직개편이나 인사이동 등 시기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용기를 내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권하고 싶다.


열심히 일하다가 막상 쉬어보면 나의 우주가 좁았음을 인정하게 된다. 내가 없어도 회사와 세상은 놀라울 만큼 평온하게 잘 돌아간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던 업무나 인간관계가 한 걸음 떨어져 보니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모두가 바쁘게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했지만 평일 유원지나 쇼핑가엔 여유로운 사람들로 가득 하단 놀라운 사실도 발견한다.


나만 열심히 살았던 걸까?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휴직을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가끔 부모참관 수업이라든지 하굣길이라든지 학교 갈 일이 있으면 당연히 내가 갔다. 편한 차림으로 손을 찔러 넣은 채 어슬렁어슬렁 집 주변을 돌며 장을 보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아빠, 친구들이 물어봐."


"뭘?"


"아빠 일 안 하냐고. 다른 아빠들은 다 일하고, 학교 올 때도 엄마들이 오는데 나만 아빠가 오니까."


그러고 보니 아내도 주변 학부모들에게 넌지시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는 다니는데 휴직 중이라고 하지 그랬어.'라고 했더니 '뭘 시시콜콜하게 말해. 그냥 쉰다고 하고 말았지.'라고 답했다.


아들의 초등학생다운 투정과 아내의 무심한 대응을 보며 뜻밖에도 자긍심 같은 게 차올랐다. 그렇다. 나는 노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잠깐이긴 하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건 맞으니 자부심이 느껴졌다. 아, 이건 좀 아닌가?


어쨌거나 휴직을 한다는 건 내가 딱히 무언가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참 많은 깨달음과 소중한 순간들을 남겨 주었다. 비어 있는 공간은 또 그대로 무언가 더 가치 있는 것이 들어와 자리를 메꾼다.  


아이가 몇 단어로 의사표현을 하고 제법 잘 걸어 다닐 무렵에 육아휴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야채를 썰고 간 쇠고기를 익혀 이유식을 만든다. 막 일어난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고 집안 정리가 끝나면 차를 타고 근처 한산한 대형마트로 향했다. 늘 비슷한 실내 온도를 유지해 주고 동물코너도 있으며 장도 볼 수 있는 좋은 놀이터였다. 당시엔 근처에 세 개 정도 대형 마트가 있어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방문했지만, 이내 마트에서 일하시는 이모님들이 오픈과 동시에 입장하는 우리를 기억하시곤 '아빠랑 또 왔네!'라며 반겨주시곤 했다.


어린 아들과 온전히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건 마음이 솜사탕처럼 깨끗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퇴근 후 피곤에 지친 얼굴이 아닌, 밝고 자상한 아빠의 모습으로 소파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 새로 배운 '물, 까까, 맘마' 같은 단어들을 함께 되뇌곤 했다. 낮잠 시간이 되면 내 귓불을 만지작거리다 잠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복직해서 바빠진 아내보다 내 곁에 있는 걸 좋아했다.


아이의 생각이 커가는 놀라운 순간들은 억만금을 들여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온전히 나를 사랑하고 의탁하는 존재가 있다는 깨달음은, 중학생이 된 아들이 여전히 굿 나이트 뽀뽀를 하러 올 때마다 맑은 햇빛을 받은 물가의 조약돌처럼 반짝이곤 한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빛나는 조약돌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건 행복이겠지


휴직을 하고 쉬는 동안엔 철저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 스스로 다음날의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소파에 앉아있다가 문득 '아! 행복해!'라고 소리를 쳐서 아내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또 은퇴 후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집에서 요리를 하면 식비가 얼마나 들지, 그에 따른 생활비의 자금 흐름은 어떻게 짜면 좋을지 고민했다. 은퇴를 하게 되면 지루해서 공원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일까?를 테스트했다.


휴직 기간을 통해 생활비 규모의 적정량을 산출할 수 있었고 집안일도 꽤 좋아한다는 건 알았다. 또 나는 지루함에 강한 면역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혼자 텅 빈 영화관에 앉아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고 파주에 있는 카페로 가서 글이나 소설을 쓰는 것도 즐거웠다. 계절이 바뀌면 카메라와 망원경을 들고 새를 보러 다녔다. 집에서는 집안일을 함께하는 로봇청소기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걸기도 했다. 디지털 피아노에 악보를 놓고 손가락을 외우며 연주를 독학하기도 했다.


휴직기간을 통해 노는 데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됐다. 다행이었다.


새 보는 걸 좋아합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안네 소피무터는 그녀의 전성기 인터뷰에서 음악은 나의 직업일 뿐 내 일상이 더 소중하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반면에 모두가 우러러보는 세계 챔피언이 된 한국 선수는 '나는 쉬는 방법을 모른다.'라고 한탄한 인터뷰를 했다.


우리 윗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바빠서, 경쟁에 치여서 감히 쉴 수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짜 좋아하는 건 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분들에겐 돈을 버는 행위가 취미이자 취향이 돼버렸다. 삶이 곧 노동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직업세계를 벗어난 순간, 우주 정거장에서 떨어 나온 볼트와 너트처럼 우주미아가 돼버린다. 우리나라를 일으킨 존경스러운 분들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의 저자이자 인문학자인 고쿠분 고이치로는 그래서,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장미도 바라자고 외친다. 빵이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과 노동이라면 장미는 그 이외의 삶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가는 능력이다. 쇼펜하우어도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낮은 층위의 행복만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행복은 음악, 탐구, 탐미적 사고 등 개인이 개발한 향유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 모두는 쉼과 여유 없이 이뤄질 수 없다.


빵 대신 잠깐 쉬면서 장미향을 맡아보시지요


회사를 다니고, 노동하는 우리는 쉴 틈이 없다. 하지만 매일 먹는 빵 대신 장미를 바랄 기회를 틈틈이 노려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눈치껏 용기 있게 쉬어보자. 쉼의 깨달음이 무엇이든, 문득 바람결에 장미 향기가 은은히 코끝을 간지럽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문득 그 향기에 뒤돌아 봤을 때 진정한 내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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