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물과 무생물 사이, 영화 : 라이프(Life), 2017

by 뮤즈노트

당신은 우주인이다. 당신의 임무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영화 라이프(life) 의 심플한 설정이다. 그런데 좀 따지고 들면 이런 의문이 뒤따른다.


외계 생명체를 뭣하러 발견하려는 거지?

무엇을 기준으로 생명인지를 판단하고 보고할까?


첫번째 질문은 왜 우주를 탐구하는가와 비슷한 질문이다. 일찍이 우주개발의 아버지 칼 세이건은, '인간에겐 주체못할 역마살이 끼어있어서!'라고 말했다. (다시 찾아보니 "모험과 방랑을 향한 인간의 욕구"라고 한듯 하네요. 그거나 저거나) 그런데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위대한 우주과학자들도 대개는 '궁금하니까'정도로 일관된 답변을 한다. 충격이다. 그냥 호기심 때문에 우주를 탐구하고 외계 생명체를 찾으려 한다니...


두번째 질문은 보다 구체적이다. 화성에서 채취한 흙에서 생명을 발견하려 한다면 생명의 정의가 필요하다.

분자생물학이 태동하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오래된 떡밥(?)이 여기에서 나온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생물과 무생물 사이>란 책에서는 생명은 자신을 복제하는 시스템이라는 일반적 정의에서 시작한다. 바이러스는 DNA는 없지만, RNA형태로 유전신호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의 발견은 생명의 발견으로 치부될 수 있을까? 만약 유기체의 기본 요소인 아미노산을 발견한다면 그건 생명의 유력한 증거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꽤 그럴듯한 진지한 관심사가 제기되지만 헐리우드의 입장은 역시 심플하다.


그냥 흥미진진한 SF스릴러를 기획한 입장에선, 고색창연한 철학과 생물학의 문제는 제껴두고 싶어한다.

그래서 화성에서 날아온 흙더미 샘플을 똭! 잡았더니 진핵생물. 아다시피 진핵생물은 DNA도 있고, DNA가 있으니 세포분열도 하고 세포막도 있고 핵도 있고... 이런! 생물이다.


생물이니 이름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이 야릇한 생명체에 '캘빈'이라는 이름도 붙인다. 그런데 '캘빈'은 유명 카툰의 개구쟁이 주인공 이름을 따서인지 모르지만, 생김새나 하는 짓이 어린이 같다. 일단 귀엽다. 우주선 안의 과학자들은 구태여 잘 자고 있는 진핵생물을 깨워낸 다음 잘 돌봐서 키우는데, 적절히 인간의 행동에 화답(?)도 하는게 아주 천진난만한 귀염둥이다. 그런데 이 녀석! 금세 반항기가 찾아온다. 우주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영화에서는 이 미지의 생명체가 초등생을 닮은 진핵생물이라는 것 외에 독특한 특징이 있음을 설명한다.


분열된 모든 세포가 독립적으로 기능한다.

다양한 감각기관(시각, 사고 등)도 세포 단위에서 이뤄진다.

다른 생명체의 양분을 흡수하여 몸집을 불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능이 높아진다.

생존을 위해선 필사적이다.


뭔가 기묘한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이 기괴한 생명체는 인간과 닮아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기체로서의 인간문명과 닮아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에서, 개미라는 하나의 개체보단 개미집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개미집은 유기체처럼 행동하고 그 속의 개미들은 개체인 동시에 유기체의 부속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인간문명도 그 문명사회에 존재하는 개인들은 모두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인 동시에 거시적으로는 하나의 생명으로 표현될 수 있다. 지구를 휘감는 네트워크의 불빛은 끈적하게 모든걸 감싸는 '캘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 문명은 캘빈의 지능을... 다른 문명이나 자원을 소모하며 '문명화'되는 인간사회는 쥐와 인간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리는 기괴한 생명체의 메타포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따지고보면 인간문명사가 '캘빈'처럼 외부환경에 적대적이며 이기적이고 파괴적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아니던가?


이제 다시 생명(LIFE)이란 근원적 관점으로 시선을 돌릴 때이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관찰해온 생명은 기본적으로 종의 생존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뼛속까지 '생명'인 이 기괴한 생명체 '캘빈'이 닥치는대로 우주인을 위협하는 상황은 이해가 된다. 그게 생명의 속성이란 것이다.


누군가는 '캘빈'과 달리 우주정거장에 있는 6명의 우주인은 '희생'이란 개념을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무조건 생존만을 위해 질주하는 '캘빈'과는 격이 다른것 아니냐!라고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론은 앞에서 반박되었다.


즉 우주인들은 주체인 동시에 인류종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윤리나 정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자기희생이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부속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주선 안으로 혹은 지구로 절대 '캘빈'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줄줄이 희생하는 우주인들은 '종의 생존'을 위한 인간문명이라는 유기체의 사고방식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아마 캘빈도 위협받는 상황에선 자기 신체 일부분을 과감히 떼어내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캘빈을 괴물로 보는 우주인들과 달리, 다리에 장애를 지니고 있으며 '캘빈'을 깨워낸 자이자, '캘빈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흑인 생물학자 '휴 데리'(앨리욘 버케어)만이 다른 시각을 유지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사고방식이다. 다시말해 '휴 데리'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아름다운 생명체...'어쩌구 하면서 '캘빈'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서 영화속 우주인은 물론 관객의 공분을 사는데, '생명'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그 정수를 깨달은 자 입장에선 '캘빈'의 강인한 생명력이야 말로 '생명'의 본질로 느껴졌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즈음 다시 재차 질문을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대체 생명이란 무엇일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에어빈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일까>란 책에서 생명이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을 거스르는 負(마이너스)의 엔트로피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물질은 무질서를 향해 나아가 결국 열역학적 평형상태, 즉 최대 엔트로피 상태가 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생명체는 자꾸만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포나 우리 몸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면 될까? 아니다.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방법은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그 흐름은 대사 작용이라고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영양분을 섭취하고 세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세포는 만들어지면서 즉각 엔트로피의 영향을 받는다. 생명체는 시스템의 엔트로피가 높아지지 않도록 폐열에 해당하는 엔트로피를 배출, 배설하고 다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냄으로써 질서를 구축한다. 즉 생명이란 대사작용이란 흐름을 통해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는 위대한 천재 생물학자 쇤하이머의 발견을 언급하여 다음과 같이 재정의한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생명 그 자체에 충실한 캘빈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움으로써 동적 평형을 유지한다. 휴 데리의 생명관은 영화에선 틀렸는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옳다. 생명이란 모두 엔트로피에 저항하며 복제를 하는 고도의 시스템이자 흐름이다. 강하고 효율적인 엔트로피 저항 시스템을 갖춘 생명이 아름다워 보이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보다 더 강한 생명, '캘빈'에 대해 공포를 갖는다. 따지고보면 그것은 외계로부터 오는 미지의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나보다 더 강한 시스템, 다른 생명체를 대할 때 찾아오는 인간의 내적공포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으론 종 보전실패가 이토록 두려운 인간이라니, 문득 코끼리부터 아주 작은 바이러스조차 그런 내적 두려움에 시달리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항생제나 백신을 맞기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위한 레퀴엠 같은게 필요한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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