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
얼마 전 지인을 만났는데 요즘 주식투자를 뭘 하는지 물어왔다. 별생각 없이 몇몇 종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 커피 쿠폰이 톡으로 날아왔다. 대화를 해보니 내가 말한 종목을 샀는데 '약간' 벌었다며 선물 쿠폰을 보낸 것이다. 그분은 지금껏 주식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주식 성공담이 이어지자 투자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이야기한 종목에 투자를 했고 수익을 거뒀다는 것이다. 화들짝 놀라서 팔았냐고 되물었고 다행히(?) 전부 팔았다고 한다. '공부 안 하고 사면 안돼요~ 그런 식으로 투자하면 잃게 돼 있어요.'라고 잔소리를 한참 해댔다.
주식 투자 경력이 7년여 됐지만 나는 손실을 거의 보지 않은 투자자다. 그동안 시장은 오르락내리락 많은 변동을 겪었지만 나름의 분석과 예측이 운 좋게 잘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훈수 둘만한 처지는 아니란 걸 안다. 상식적으로 경기 변동, 더 나아가 주가 예측은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현상에서 일정한 법칙을 찾고 싶어 한다. 패턴을 알면 대비를 할 수 있고 생존확률이 늘어날 수 있다. 매번 다시 오는 절기에 이름을 붙여 기억하면, 사는 데 도움이 된다. 계절의 순환을 기억하면 쌀과 식량, 옷과 주거지를 마련해 혹독한 겨울을 지내기 수월해진다. 사람이 앞날을 걱정하며 예측한다는 측면은 유일하게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아가는 인간종 고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경기를 예측하고 주가 흐름을 예견하려 한다. 유명 팟캐스트나 유튜브에도 수많은 애널리스트가 나와서 자기 나름의 상승장, 하락장의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비판적 사고 없이 이런 설명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진짜 그런가?... 라며 믿게 돼 버린다.
미국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 하워드 막스가 쓴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이란 책에 이런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의 심리가 긍정적일 때에는 뉴스를 해석하고 투자하는 심리 역시 편향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투자 심리가 긍정적일 때>
은행이 40억 달러를 벌었다 : 사업 여건이 우호적임 - 주가는 반등
은행이 40억 달러를 잃었다 : 나쁜 뉴스가 제거됨 - 주가는 반등
<투자 심리가 부정적일 때>
은행이 40억 달러를 벌었다 : 호재가 이미 반영됨 - 주가는 하락
은행이 40억 달러를 잃었다 : 사업 여건이 나빠짐 - 주가는 하락
주식 게시판에 가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와글와글 예측을 한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월요일 장이 열리면 폭등을 할 거라며 가슴 설레는 사람이 있고, 폭락할 거라며 조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닝 서프라이즈나 엄청난 호재가 터져도 하락하는 종목이 있고, 회사가 아무런 실적도 없는데 상한가를 치기도 한다. 결국 모두의 말은 틀렸거나 모두의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집을 사 본 사람이라면 아주 절묘한 균형점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있음을 안다. 주변 시세를 살펴보고 몇몇 후보 중에 하나를 산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가격이 나왔는지를 역으로 분석하는 건 어렵다. 지하철역에서 멀다. 하지만 학군이 좋다.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다. 하지만 한 동 짜리 아파트다. 구조가 나쁘다. 하지만 신축이다.
만약 어떤 아파트의 가격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각각의 변인을 어디까지 수집할 것이며 가중치를 어떻게 배분해서 예측해야 정확할까? 무엇보다 그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의 주머니 사정과 심리, 가족사는 늘 변화무쌍한데 말이다.
하워드 막스는 패턴 예측의 어려움을 경제 사이클, 정부 개입, 이익 사이클, 투자자 심리, 위험에 대한 태도, 신용 사이클, 부실채권 사이클, 부동산 사이클 등 비교적 굵직한 변인들을 다루며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변인들에 대한 결과론은 그래서 도저히 알 수 없다로 끝맺음되지만 그렇다고 맥 빠진 불가지론에 그치진 않는다.
저자는 주가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어떤 것이라고 확언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예상할 수 없었듯 주가나 시장 역시 그러한 것이다. 다만 우리는 큰 흐름 속에서 주가가 오르내리는 사이클이 있음을 안다. 물론 비주기적이지만 이 사이클의 밑에서 사서 위에서 팔면 수익을 낼 수 있다. 단순하다. 그렇다면 사이클은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
저자가 바라본 주식 사이클은 대개는 이러한 패턴을 갖는다.
경제와 기업 관련 좋은 일들이 생긴다 - 좋은 일은 투자 심리를 안심시킨다 - 위험과 예상수익률에 둔감해진다 - 자산 가격이 이로 인해 상승한다 - 그러나 기대가 비현실적이 되어버려 시장이 부응하지 못한다 - 영원한 긍정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 자산 가격은 너무 떨어져 회복 시까지 계속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한번 오르기 시작한 자산은 심리를 강화시키고, 투자자로 하여금 더 부유하고 낙관적인 확정 편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여기서 실제 실적이나 펀더멘털보다 주식 그래프는 더 크게 흔들린다. 게다가 문제는 투자자는 심리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요즘 같은 강세장에서 흔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저자가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서 강세장에 뛰어드는 사람은 군중행동과 자신은 하지 않은 일로 남들이 돈을 버는 극도의 불편함 때문에 결국 비정상적인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매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결국 인간 심리의 강력한 요소가 어우러진 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세상은 지금과 꽤나 닮아 있어 흥미롭다. 당장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비주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사이클에는 어떻게 올라타야 할까?
"현명한 사람이 처음에 하는 일을 바보는 마지막에 한다"
저자는 이 말이 최고의 투자 격언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위에 적은 바와 같이 지나친 상승과 지나친 하강을 반복한다. 현명한 사람은 미친 것처럼 과도한 행동이 시장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도취감에 취해 '이 종목은 절대 떨어지지 않아', 라거나 '전과는 완전히 다른 주식 종목이라 그 전의 기술주 폭락과는 달라'따위의 말을 되뇌는 시점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런 말은 폭락 전에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혼돈과 질서 하면 떠오르는 이론이 있다. 카오스와 프랙털. 프랙털 이론은 카오스 이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카오스 이론이 파악 불가능한 변수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현상에 관심이 있다면, 프랙털은 현상적으로 관측되는 구조화된 변수의 구조를 역으로 체계화한다. 귀납적이든 연역적이든 둘은 똑같이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을 파악하는 구조화된 이론을 목표로 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카오스에서는 날씨가 왜 예측 불가능한가를 말하는 반면, 프랙털 이론에서는 땅에 내리 꽂히는 번개, 나뭇잎의 발현, 신체 혈관의 구조, 강이 바꿔놓은 하류 지형 등이 자기 닮음꼴의 구조를 갖고 있음에 주목한다.
인간 개인의 심리는 복잡한 카오스인 동시에 돌이켜보면 일정한 패턴을 갖는다는 점에서 프랙털적이다. 다시 말해 그런 인간이 모여서 만들어낸 경제나 주식의 물결은 해석 불가능한 카오스인 동시에 다만 비주기적 사이클이란 내재화된 프랙털 현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이 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세계는 카오스다. 인정해라.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알 수 있다고 장담하는 심리를 경계하라
세계는 내적 질서가 있는 프랙털이다. 비주기적 사이클은 존재한다. 시계추가 가장 낮은 저점에서 올라타라
결국 이는 가치투자가 내세우는 요점이라 할 수 있다. 긴 주기의 사이클 속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의 경향성에 휘둘리지 말고 안전마진을 구해 최저점 근처(하락장)에서 매집하다 보면 언젠가는 오른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강조하고 있는 점은 물론, 영원히 오르는 주식이나 종목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모두가 만족하고 있는 시점에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사람은 미래 예측에 본능적 관심을 지니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돈으로 굴러가기에 심리는 돈의 움직임에 예민하도록 학습되어 있다. 그러한 본능과 경향성과 반대로 살아가는 방식은 언뜻 칸트의 의무주의 도덕론과 잇닿은 듯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주식은 어쩌면 도덕론이 지향하는 인간상과 통하는 분야가 아닐까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분노, 질투, 군중심리, 두려움이라고 하는 칸트가 말한 본능적 경향성에 저항하는 것. 물론 칸트는 의무적 도덕론이 행복과 관계없다고 말했지만 주식시장은 돈으로 보상을 줄지도 모른다. 돈도 벌고 인격도 가꾸고 꽤 좋은 훈련장 정도로 보면 어떨까? 물론 누구도 훈련장 레슨비에 인생과 전재산을 걸진 않는다는 매우 합리적인 가정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