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국경(國境)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
소설 <설국>의 첫 문장에는 경계란 글자가 나온다. 나는 경계란 단어를 좋아한다. 어떤 영역과 다른 세계를 잇는 신비함이 단어에 깃들어있다. 연애가 시작되는 남녀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처럼, 발끝을 조금만 움직여도 전혀 다른 공기와 분위기로 가득한 이질적인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그 두 가지 세계의 물리적 지점으로서의 경계란, 불안정하면서도 모종의 가능성이 응축된 어떤 곳이다. 그리고 인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떤 경계를 산다.
인간이 경계를 산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현재를 산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인 현재의 지평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란 무엇인가? 우리가 현재라고 느끼는 시간은 과거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미래라고 속 편하게 이름 붙여놓은 시간이 브레이크 고장 난 고속열차처럼 다가온다. 과거와 미래의 경계로서의 현재란, 따라서 두 단어 사이의 개념적 표현에 불과하다. 현재는 관념적인 수사이며 비어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늘 현재를 살면서도 물리적 현재가 존재할 수 없다는 패러독스는 인간 존재의 무상함에 대해, 신이 준비한 짓궂은 비유와 같다. 현재가 없다면 현재를 사는 인간도 없는 것 아닐까? 지극히 철학적 사고 같긴 하지만 이 문제로 고심해온 물리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보다 정교하게 현재와 과거, 미래와 같은 시간 개념에 대해 논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은 물리학자가 바라본 과거와 미래의 경계로서의 현재, 즉 시간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상정하고 그 경계로서 현재를 산다. 그러나 이러한 선형적 관념은 우리의 관습적 시간 안에서만 그렇다.
물리학의 기초 법칙은 시간 대칭에 근거한다. 즉 물리적 법칙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이 거꾸로 돈다고 해도 물리학적 계산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달이 찍힌 프리미어 편집기의 영상을 뒤로 감아도 지구와 달을 처음 본 외계인은 물리학적으로 딱히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시간이 상대적 개념이란 점에서 모두에게 평등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우연히 낯선 뮌헨 역에서 재회한 연인을 떠올려보자. 기차에 탄 남자가 떠나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남자 입장에선 그녀가 떠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런 식으로 물리학의 중력과 가속도는 같은 것으로 기술되고(등가 운동), 운동하는 물체에서 시간은 관측자마다 달라진 고유의 시간을 갖는다.
시간에 대한 오해는 책에서 시작되는 것일 수있다. 우리가 과학에서 배우는 시간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절대적 시간개념을 생각한 뉴턴의 시간과 시공간이 얼마든 휘어지고 변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시간이 그것이다. 뉴턴의 시간은 친숙하다. 그는 우리의 직관처럼 시간과 공간을 절대 시공간으로 고정해 버린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시간 대신 빛의 속도를 고정해 버린다. 대략 초당 30만 킬로미터라고 하는 빛의 속도를 고정시켜 버리자(광속도 불변의 원리), 이번엔 시간과 공간이 변화할 도리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주에 절대적인 시간은 물론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아인슈타인 이후 기괴하고 비 직관적이며 비선형적인 세계로 바뀌었다.
사물은 필요에 따라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화하고
그것들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당화된다.
- 아낙시만드로스-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시간의 순서'라는 표현으로 변화하는 세계상을 포착해낸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의 원제는 그래서 <The order of Time>이다.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일어난 사건은 순서를 구성한다. 순서를 구성한 사건은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사건의 순서가 곧 우리가 부르는, 지극히 ‘인간적인’ 시간이 된다.
다시 말해 시간을 포함한 인간사와 세상은 사건의 네트워크이다. 누군가를 묘사할 때, 단백질 몇 %, 칼슘 몇 %로는 묘사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우리는 실체가 아닌 사건의 연속에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한다. 사물도 물질도 일정 시간 존재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남는 것은 시간이 아닌 결국 사건의 연쇄와 순서뿐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차곡히 기록한 기억이 시간이란 감각을 재구성한다.
현상학자 후설은 과거지향이 경험을 형성하는 이러한 원리를 음악으로 설명한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현재의 어떤 음이 그 음계 이전에 지나친 음이 보존하는 과정의 연속으로서 음악을 듣고 구성해낸다. 따라서 현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연속적인 흔적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흔적은 기억에 보존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앞선 시간에 대한 오해들을 뒤엎을 수는 없지만, 엔트로피 변화의 흔적과도 유사한 기억을 통해 현상적인 시간을 인정한다.
시간은 우리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이 책의 제목대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주적인 시간은 늘 상대적이며 대칭적이고 고립적이다. 하여 변화만 존재한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세계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과거의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계단과도 같은 사건들, 그 사건이 기록된 기억의 흔적을 따라 알 수 없는 미래로 흘러간다. 지금, 혹은 현재는 이미 만들어진 기억과 만들어질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시냅스의 번개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은 그 찰나의 순간만을 산다. 그리고 그 좁은 인식의 지평에 존재한다.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