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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Dec 10. 2019

내가 겪은 이상한 일들

I want to believe

오컬트 영화 관람을 제외하고 주변에도 가끔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화장실에서 유령을 봤다거나 UFO가 헛간 위를 난다든지 작은 외계인을 병 속에 담아 놀았다는 이야기는 제법 돌지만 대놓고 직접 겪은 일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가 겪은 이야기란 식으로 전해지곤 한다.


내 입장에서 말한다면, 나는 딱히 그 분야에 관심도 없거니와 그러다 보니 눈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런가 보다...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페트병을 닮은 비행접시를 타고 수억 광년을 건너온 젤리 모양의 외계인들로선 제법 섭섭한 이야기다.


물론 삶에 대한 회의가 바닥을 쳐서, 눈 앞에 돌멩이가 움직여도 '저기 돌멩이가 스스로 지나가는군.'이라고 담백하게 생각했던 다자이 오사무 정도의 회의론자라는 말은 아니다. 관심이 없으니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정도에서 타협하면 될듯하다.


그나저나 내가 변한 건 아닌데(아니라고 믿고 싶다) 최근 본 이상한 현상을 두어 가지 이야기해 볼까 한다. 일단 얼마 전 밤에 방에 누워 창밖을 보고 있었다. 단지 내 가로등을 LED로 교체하면서 강렬한 빛을 창가에 쏘아붙이는 바람에 블라인드를 친 상태였다. 그러니까 일종의 광원이 있고 스크린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 사이를 무언가가 스쳐간다면 영화 스크린처럼 상(像)이 잡히는 건 당연하다.


별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데 훨훨 날아가는 나비의 날갯짓이 선명하게 비춰왔다. 서너 마리 정도가 창가 아래에서 위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고 있었다. 잠깐 생각해봤다. 지금은 12월이고 엊그제는 영하 8도까지 떨어졌었다. 지금까지 날아다니는 나비가 있을까? 나비가 아닌 낙엽 따위의 존재는 전혀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생생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생각은 이어졌다.


아랫집 혹은 윗집, 아니면 이웃 중에 누군가가 나비사육을 취미로 하다가 열어놓은 문으로 나비들이 탈출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뒤늦게 번데기에서 나오고 보니 겨울이 되었을 수도 있다. 확률적으로 생체시계 오류란 있을법한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이 끝나고 나서야 이게 모종의 슈퍼 내추럴한 현상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한 겨울 나비는 어떤 징조의 현현일까? 아마도 나는 복권을 살 듯한데...


어쨌거나 이런 류의 일은 아주 작은 확률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별 기억이 없는데 맞다! 약간은 쌀쌀했던 봄의 초입 즈음에도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편의점을 들렀다가 나오는 데 '딸랑' 문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따라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집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검은 밤하늘을 보며 멈춰 섰다. 그런데 상대도 내 바로 뒤에서 멈추는 듯했다. 뒤를 돌아보자 하늘하늘 경쾌한 느낌의 원피스를 입은 '멀쩡한' 여성이 서 있었다. 마침 그곳은 흡연구역이었기에 담배를 피우려나보다 하고 다시 뒤돌았다. 그런데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머니를 뒤진다거나 담배를 꺼낸다거나 하는 그런 소리 말이다. 사람의 그림자만 길게 내쪽으로 향해 있었다.


다시 뒤돌아봤다. 그 사람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시선을 내 눈에 맞춘 채로.

멀쩡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럴리는 없으니 '라이터나 담배를 빌리려 하느냐'라고 물었다. 당연히 답이 없다. 여전히 그대로 '빤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그 순간 스치는 생각은 하나였다.


'흠. 일종의 유령 같은 건가?'


이 타이밍에서 개인적으론 두 가지 사실에 당황했다. 먼저 유령이나 혼령 같은 게 실제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광경은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다음으로 당황한 건, 내가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일지 모르는) 사건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는 점에서였다. (물론 깊은 밤, 주택가에서 쉬폰 재질의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과 흡연구역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이 공포스러워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좀 놀라야 하는 상황 아닌가...라는 점에서 그렇다.


어쨌거나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길래 외부 현관문 쪽으로 발을 옮기자 따라왔다. 현관문 앞에서 생각했다. 어쨌든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게 해선 안 되겠다. 그래서 젠틀하게 말했다. 여기는 거주민만 출입하는 곳이고 밤이 늦었으니 돌아가시는 게 좋겠다... 는 내용이었다. 상대는 나를 보면서 0.5도 정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슬로우 효과를 건 것처럼 뒤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상한 이야기다. 그리고 오컬트적이거나 공포스러운 풍경에는 슬픔이 묻어있다. 한 발짝만 떨어져 봐도 왠지 모르게 처연하다. 그 슬픔이 어디에서 연유한 건지는 모르겠다.


한겨울 나비나 초봄에 말없이 누군가를 따라다니는 존재가 확실히 슬퍼 보인다는 건 사실이니 스스로 더 캐묻진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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