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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방관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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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Nov 05. 2023

그래도 때론 빛이 보고 싶어서

방관일지 EP.14

    늘 어둠 속에서 사는 것 같아서

    그림자처럼 변한 내가 두려워서

    하지만 그래도 때론 빛이 보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방. 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하게 굳게 닫은 암막커튼. 낡은 책장에 곰팡이처럼 들러붙은 먼지덩어리. 퀴퀴한 냄새가 스며 있는 새하얀 벽. 방에 혼자 있을 땐 불을 잘 켜지 않는다. 낮이든 밤이든 불을 켜고 보내는 경우는 희소하다. 불을 끈 채 생활하면 순간순간 좋은 영감을 떠올릴 때가 많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다 마신 커피잔이 소설 소재로 보이고, 매일 아침 눈 뜨면 가장 먼저 보이던 천장이 스케치북처럼 느껴진다. 방 안에서 빛을 뿜어내는 건 딱 3가지 밖에 없다. 종일 켜두는 노트북과 손에 쥔 스마트폰.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스탠드 하나. 


    커튼을 걷어내고 창문을

    열고, 

    다 마신 커피잔에 새로이 커피를 타곤 한다


    사람은 외롭다는 감정을 생각보다 표출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홀로 남겨져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도대체 혼자 있으면 무얼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무언갈 하곤 한다. 놀고 있는 노트북을 깨워 인터넷을 한 바퀴 돌아보고, 휴대폰을 켜서 영상을 조금씩 보기도 하고, 책상 위에 나뒹굴던 큐브를 들고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돌려도 본다. 그러다가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성격유형테스트의 단골 질문 중 하나인데, 외로울 때 재밌는 걸 보고 텐션을 올리는 선택지와 오히려 더 슬픈 걸 봐서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이 있다. 이 답변에 따라 성격 유형이 결정이 된다는데 나는 항상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곤 했다. 


    생각이 많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땐

    새로 탄 커피를 홀짝이며 

    청소를 하곤 한다


    나는 내가 외롭고 힘들 땐 가장 힘든 순간을 떠올리며 되새기곤 했다. 몇 번을 되새기면 그 힘든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 무뎌지고 만다. 그러면 또 다른 힘든 순간을 찾아 되새긴다. 이 과정은 내게 재밌으면서도 슬픈 과정이었다. 그때로 돌아가 다르게 행동하여 바뀔 수도 있었던 순간을 상상하면 재밌지만, 결론은 현실로 귀결되어 슬픈 순간이 된다. 슬프다는 감정조차 무뎌지게 된 날, 나는 가장 힘든 순간을 떠올리며 웃었다. 슬픈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웃어보기로 했다. 나만의 방식대로 외로움을 이겨나가다 보니, 사람은 외롭다는 감정을 생각보다 표출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부터 나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책상을 깔끔하게 청소하고 서랍을 치우고 쌓아둔 물건들을 정리했다. 커튼을 걷어내고 창문도 열어서 바깥공기를 마셨다. 빛이 보고 싶을 때도 있는 거라며 자조하고는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우리에게도 환기할 순간들이 필요하니깐

    마이너스한 감정을 타고 부유하는 녀석들이어도

    때론 빛을 보고 싶을 수도 있으니깐


    빛을 보고 나면 한결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을 표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방에 불을 켜는 날이 종종 생겨났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가끔은 그래도 빛이 보고 싶었으니깐. 


    사실 방이 유독 어두웠기에 세상의 빛은 더 밝았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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