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독서] 멈추기 위한 독서

독서

by 오 영택

1-4. 멈추기 위한 독서


마음은 올바른 목표를 잃으면 잘못된 목표로 향하게 된다.

_ 미셸 몽테뉴


독서는 '생각 얻기'라고 얘기했습니다. '수불석권(手不釋卷)'하며 책을 읽어나가면 마주하는 표현들과 질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 문장일 수도 있고, 되뇌이게 만드는 표현이나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일까요? 아는 것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활동에 불과할까요?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지식의 양만 늘리는 게 목적이라면, 독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입니다. AI가 보급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질문 하나만으로 답이나 정보들을 곧바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독서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과 생각이 굳어져 간다는 것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우리 안의 바다가 얼어가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화보다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항상성(恒常性)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입니다.


실제로,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불편해합니다.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니까요. 기존의 관습대로, 살아온 습관대로 살아가면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한 생각에 갇히고, 기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번거롭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죠.


또한 우리 모두는 '시대의 자녀들'입니다.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시대의 언어로 생각하고 가치판단을 합니다. 많은 가치관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경과 경험에 의해 생각은 더 세분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가치들을 접하면서 생각을 형성해나갑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가치관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시대와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자 생각의 주체입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정말 이게 내 생각이 맞는지”,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문을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말하는데, 이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의견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나곤 합니다.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얼어붙은 바다'에 빗댈 수 있습니다. 정치, 종교, 가치관으로 인해 많은 분쟁과 분열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를 깨줄 '도끼'가 필요합니다. 여러 도끼 중 하나가 바로 '독서'입니다. 물론, 모든 바다를 깰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표면적은 넓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니까요.


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생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의 관점, 그리고 다른 가치관들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자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자료가 되기 때문이죠. 자신의 성향이나 기준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수용할 수 있는 가치관은 무엇인지, 어떤 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계선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싫어”라고 부정하기보다는 어떤 이유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설명할 수 있을 때, 혐오의 모습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 자체가 '멈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모습의 멈춤들이 있습니다. '사색에 잠기는 잠깐의 시간', '감탄하는 찰나의 시간', '읊조려보기도 하고 되뇌는 시간', '노트에 옮겨 쓰는 시간', 그리고 '책을 덮고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처럼 말이죠. 마치 음식 맛을 음미하고 소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죠.


책을 읽으면 마음에 닿는 문장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위로가 되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은 표현을 만나기도 합니다. 당시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를 접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회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을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성격의 질문들도 마주하게 됩니다. 참 불편한 질문들입니다. 한 번쯤은 시간을 내어 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앎에도 말이죠.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고, '해답'만 존재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질문들에 직면하기보다는 읽어나가는 데 집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책을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몇 번의 멈춤이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촉구하는 질문들을 직면하는 게 독서의 필요이자 목적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중심 잡기의 연속이니까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읽기'입니다. 읽기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보는 법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연결을 발견하는 능력입니다. 지난 경험들이 각각 하나의 점이었고, 그 점들이 어떻게 이어져 지금의 상황과 나를 형성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발견하는 과정이죠. 다시 말해 '읽기'란, 단순한 바라봄이 아니라 관찰의 영역인 것이죠. 여기에서 관찰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발견한 패턴이나 관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관찰과 성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바는 분명합니다. 바로 '성장'입니다. 우리는 아픔이 깊고 짙은 만큼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성장통'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겠지요. “물이 구덩이를 채운 후 나아간다”는 '영과후진(盈科後進)'처럼 인생은 아픔이나 고뇌의 순간을 거치면서 한층 깊어지면서 나아갑니다. 구덩이를 채우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채워져가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저수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빈 구덩이였던 곳이 생명의 터전이 되는 것이죠. 이 내면의 저수지는 인생의 어려운 순간, 방황하는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를 지지해줄 것입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갈 것입니다. 경험과 깨달음, 그리고 성찰을 통한 성숙함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영감을 제공함으로써 말이죠.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_ 존 러스킨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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