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독서] 쓰기 위한 독서

독서

by 오 영택

1-5. 쓰기 위한 독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법론을 담은 책은 많지만, 내게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내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의 내용을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 길을 가려고 하는가?

내면으로부터의 이런 물음에 분명한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에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_ 《곁에 두고 읽는 니체》中


독서를 하는 이유는 결국,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쓰기 위함이라는 것은 결국 단순히 재고처럼 쌓아두기 위함이 아닙니다.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는 사용(use)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쓰는(write) 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얻은 생각과 깨달음, 그리고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자신과 주변을 향해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에게는 성찰과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도구로써, 주변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도구로써 말이죠. 관점의 변화도 이에 해당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관점이 변함으로써 감정과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만두어야 할 때와 한 번 더 해볼 것인지 판단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뜻한 말은 잘 건네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죠. 이런 괴리가 나타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저 사람도 힘들었겠지”, “여건이 안 좋았나 보네”라고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는 '능력' 부족으로 바라봅니다. “내가 무능해서”, “내가 부족해서”라고 자책하는 것이죠.


이것을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 Error)'라고 합니다. 남의 행동은 상황을 고려해 설명하지만, 자신의 행동은 성격이나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죠. 또한 자신을 주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대상으로 바라보기에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평가받아야 할 존재', '완벽해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죠. 반면에 다른 사람은 '불완전해도 괜찮은 존재', '실수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관대해도 괜찮습니다. 인생은 결국 자신과 대화하며 걸어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살피며 결정해야 하는 연속이기까요. 친한 친구들이나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을지라도 말이죠. 인생의 주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독서를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으로 묘사하곤 합니다. 맞는 표현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마음의 양식(糧食)이 쌓이면 자신에게도 관대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집니다. 포용력이 생기는 것이죠.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해지기에 가능한 모습일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만의' 라는 부분입니다. 기준 없이 관대하면, 흔들립니다. 소위 '호구'라 불리거나 '착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또한 남의 말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말이죠. 반대로, 기준만 있고 관대함이 없으면 경직되기 마련입니다. “내 방식이 옳고, 다른 방식은 틀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생이 기승전'중용'인 것처럼, 역시나 필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확고하되 유연함을 갖추는 것이죠. 참으로 이상적인 얘기지요? 하지만 이상으로만 치부하는 것 역시 이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일지라도, 지향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능력은 '지적 자살'을 막아줍니다. 또한 '앵무새'가 되지 않도록 해줍니다.


'지적 자살'이란 전문가들의 말이 옳다고 여겨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을 말합니다. 전문가도 틀릴 수 있고, 왜곡할 수 있음에도 “전문가니까 당연히 나보다 낫지”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것이죠. “의사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런가 보다”, “저명한 유튜버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맞겠지”라며 생각을 멈추고 그들의 판단에 따르는 것입니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항상 의심하고 모든 것에 반박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책을 읽거나 누군가의 의견을 들을 때, “이건 내 생각과 다른데?”라고 의문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저 전문가도 사람이기에 틀릴 수 있고, 편향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정에 따른 책임의 몫은 자신에게 있기에 생각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앵무새가 되지 않는 것'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던데?”, “어느 유튜버가 말한 건데, 그게 사실이래”와 같이 단순히 듣고 동의하는 것이죠. 가짜뉴스가 확산되고, 재생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접 알아보기에는 번거롭고 큰 관심은 없지만, 누군가 말했기 때문에 전달하는 것이죠. 단지, 들음으로써 믿고 살아가는 모습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 위에 자신의 견해를 쌓아가면서 말이죠.


사실, '지적 자살'과 '앵무새'가 된 모습은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필요합니다. 정치부터 경제, 역사 등 모든 것을 직접 다 알아갈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시간도 없을 뿐더러,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전문가 뿐만 아니라 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경계할 필요는 있습니다. '앵무새'처럼 말을 복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적 자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 강조하듯이, 삶의 주체이자 생각의 주체는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능력을 사용(use)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을 쓰기(write)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쓰기(write)'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글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생에 쓰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의식에 새기는 과정입니다. 의식을 사용해 읽지만, 그 내용은 무의식 속으로 스며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요. 그러나 글쓰기는 다릅니다. 글쓰기는 무의식에 있던 것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입니다. 막연하게 느껴왔던 것을 좀 더 명확하게 묘사하는 과정입니다. 더 분명하게 무의식에 새기는 과정인 것이죠.


독서가 지식의 양을 늘리는 활동이라면, 글쓰기는 지식을 정립하는 작업입니다. 독서를 통해 앎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글쓰기를 통해서는 앎의 경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쓰려고 하는 순간 막막해지거든요. 개념들은 존재하는데, 문장으로 묘사할 수 없고, 논리가 연결되지 않음을 몸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서가 우물을 파는 작업이라면, 글쓰기는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습니다.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죠. 물을 길어 올려 수면을 쳐다보면, 자신의 얼굴이 비칩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죠.


“나는 이런 것에 감동하는구나”, “나는 이 지점에서 분노하는구나”, “나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구나” 하면서요. 읽기를 통해서 멈춤을 경험했다면, 쓰기를 통해서는 멈칫하는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이 멈칫함이 중요합니다. “어? 내가 이렇게 생각했었나?” 라며 자신의 생각을 목도하게 되거든요. “이렇게 쓰면서 깨닫게 되네” 라며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정리되기도 합니다. “쓰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 라며 생각의 변화를 추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쓰기는 종이와 빈 화면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글을 남기게 됩니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상대방의 인생 한 페이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각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저마다의 분위기와 삶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처럼 위로가 되고 감동이 되는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맛깔나게 해서 흥미롭고 배울 점이 있는 '소설'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함께 있으면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책' 같기도 하고, 누군가는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는 '자기계발서' 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책일까?”를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읽을 때,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영향을 받을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소개한 질문을 다시 상기하며 마치고 싶습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 길을 가려고 하는가?”


이 질문들 외에도 '왜?'라는 의문부호의 질문들을 마주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왜?'라는 동기가 확실하면, 방법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를 정했다면,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죠.


지금까지 독서를 하며 얻은 지식과 쌓은 문장들이 삶의 여러 순간 도움이 될 때를 경험하곤 합니다. 때로는 마음을 붙잡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더 깊은 우울의 바다에서 허우적대지 않도록 구명조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의식적으로 마음가짐을 점검하고, 태도를 새길 수 있기에 독서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역시 독서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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