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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의료 현장에서

잠 오는 약 없는 곳에서 살았으면

by 하상목 Feb 22. 2025

현대인은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수면 문제 하나쯤은 모두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밤에는 잠이 안 와서 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찾고,

아침에는 잠을 쫓느라 커피나 각성 드링크를 찾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간호사인 나도 요즘 잠이 오질 않아 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을 처방받아 억지로 수면을 이루고는 했다.

그런데 과연 현대인 만의 문제인지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재택의료 현장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의사와 같이 방문진료를 다니다 보면 환자를 진찰하고 약물을 처방한다.

어느 진료시간과 같이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대변이나 소변보는데 불편한 것은 없는지 가장 먼저 묻곤 한다.

신체 컨디션에 따라 식사를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만성 고질병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잠이 오질 않는 불면증이다.


재택의료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는 신체 움직임이 아예 없거나 매우 적은 편에 속한다.

거동이 불편하니 어딜 나가서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니 꼼짝없이 집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하루종일 집 안에서 있다 보니 무료함에 젖어 낮에도 잠이 오면 잠을 청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낮잠을 자니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먹는 식사량은 여전한데 신체 움직임이 적고 수면리듬 마저 망가지니 뱃살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지니 더 움직이기 싫어지고 악순환의 고리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재택의료로 만난 환자 분들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으면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곤 했다.

꾸준히 만남을 이어나가는 만큼 잠을 청하는 약이 늘거나 용량은 점점 증가하기만 했다.

급기야 수면제에 손을 대고자 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만날 때 절대로 안된다고 설득하지만,

도무지 잠을 청하지 않는 환자를 간병하는 보호자도 시간이 점점 갈수록 지친다고 말했다.

정말 마지노선으로 아주 작은 용량으로 수면제를 의사가 처방하지만 날이 갈수록 용량을 더 높여달라는 요청이 빈번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어르신의 경우는 섬망도 함께 찾아왔다.

밤낮 구분 없는 수면리듬과 인지기능이 점점 없어지다 결국은 치매증상과 비슷한 섬망 증상이 찾아올 때에는

가족들과 의료진이 잔뜩 긴장하게 되었다.

특히 밤에는 화장실을 가거나 인지기능의 상실로 혼자 움직일 때 낙상과 같은 사고가 많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는 틈을 타서 밖으로 혼자 나가 거기를 배회하거나 실종되는 사례도 보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해서 침대에만 꼼짝없이 지내다가 섬망이 찾아온 어르신의 경우는 무적의 힘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간호사로써 수면제나 잠을 청하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재택의료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임이나 안정적인 생활로 밤에 잠을 잘 자는 환경으로 바꾸고 싶었다.

비록 침대에서 생활은 하지만 휠체어와 같이 보조기구를 이용해 햇빛을 보러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신체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데로 보호자들을 설득해서 여러 운동방법을 소개하지만 매일매일 환자와 만나는 보호자들도

하루 이틀 뒤에는 지친 내색을 하곤 했다.


습관과 환경을 조절하지 않고 문득 약에만 의존하면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치매 증상이 있는 환자분은 점점 인지기능을 잃어만 갔고 섬망 증상은 줄어들었을지는 몰라도 하루 종일 잠만 자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낮에는 무료함에 잠을 자고 밤에는 잠을 오게 하는 약으로 억지로 잠을 자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은 욕창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신체 기능이 급격히 퇴화되기 시작해 음식을 삼키고 대소변을 배변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금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의료적 처치를 받다가 선종하게 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제는 수면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과도한 시험으로 밤을 새우는 날들이 잦았고 취업을 해서도 성과를 잘 이루어내느라 잠을 반납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만성질환 하나쯤은 얻게 되어 평생 약을 먹으며 생활을 지속해 나간다.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이나 사고는 침대에서 생활하는 삶으로 바꾸어 버리기도 했다.

안락한 침대에서도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했지만 또다시 만난 수면 문제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재는 잠시 멈추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잠을 오게 하는 약에 의존하지 않는 삶에서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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