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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하상목 Jun 19. 2023

저항, 이만 퇴사하겠습니다.

나의 최고의 저항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MZ세대가 화두에 떠오르면서 어딜 가든 빠지지 않는 주제거리가 MZ생활과 MBTI이야기이다.

나도 30대 초반으로 MZ세대의 생활패턴과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꼰대스러웠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이 시대에 겉 맞는 청년이고자 노력한다. 우리 세대의 최대 고민거리는 바로 직장을 다니지 않는 퇴사와 많은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유튜브에만 보아도 일하지 않고 훈련도 받지 않은 채 그냥 쉬고 있는 청년들이 66만 명이 달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다. 목표가 확실하고 미래를 꿈꾸어야 할 사람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산인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지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모세대 586세대들의 본격적인 은퇴를 앞두고 고령인구로 진입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도 누군가를 부양하느라 노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며 건강문제가 하나씩 생기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사화된 내용이다. 이제는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각자도생 해야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전처럼 청년들이 부양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

  30대 청년이 배부른 소리 하네. 배고파서 빌어먹고 사는 삶을 살아봐야 하지.라고 비아냥 거릴 수 있다. 

기꺼이 인정한다. 과거와는 달리 훨씬 먹거리들이 풍족하고 옷이나 화장품도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는 나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풍족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제대로 안 할 거면 이걸 왜 해?'

사람은 누구나 기여하고 사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개미방법이든 베짱이 방법이든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지 확인하고자 한다. 사실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분노라는 감정을 다루면서 화가 많이 났었는데 이 지점에서 가장 혼란을 많이 경험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감정을 차갑게 다루면서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열등기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나와는 좀 달랐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고 돈을 주는 사업주의 것이니까,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가면 되지,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 등등

한 직장과 사회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도 점차 알게 되었다. 그래서 딜을 해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소통이라는 것 자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한 사람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회의시간에 했던 말을 반복하고 그중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잊어버린 채 대화가 끝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청년들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도를 파악하는데 매우 익숙하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의미 없는 회의시간을 지루하게 하고 딴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핵심도 없는 말을 들을 때면 능력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인류애는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해해보려고도 했지만 그것은 나의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이었고 나에게도 건강 적신호가 켜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퇴사사유는 늘 없다. 형식 상 일신 상의 사유, 건강상의 사유라고 대충 둘러 되지만 내가 자각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사직을 유보할 방법들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편이다. 고용주 측면에서야 붙잡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지만 이미 결정된 것에 흔들릴 이유는 없다. 다양한 방법과 근로조건을 제시하며 현혹되게도 하지만 그것 또한 잠시 잠깐이라는 모래시계와 같은 것을 잘 알기에 굳이 말을 섞으려 하지 않는다. 같은 조건이라면 어딜 가던 비슷한 연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당신이 세상을 잘 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본질적으로 저항하고 싶은 나의 외골수 기질과 같다.


조용한 퇴사

  자신의 할 일만 하면서 더 이상의 성장과 희망을 버리는 근로만큼 확실한 노동은 없었다. 나도 짧지만 조용한 퇴사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주어지는 일보다 업무를 하지 않으며 나를 고용함으로써 성장이 없거나 더딘 생활을 잠깐 해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양심적이기 때문에 기여하고픈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본질은 그 가치관을 늘 저울질하게 만든다. 때문에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피곤을 느꼈고 무기력해졌으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서 퇴근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용한 퇴사를 하고 나면 나의 워라밸은 더 당연해지고 저녁바람을 맞으며 러닝을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야채를 다듬을 수 있는 손가락에 힘이 없고 무기력해져 술을 찾는 날들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무언 해 해 보겠다는 에너지가 한 사람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 같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번아웃을 경험한다고는 하는데 오히려 일을 안 해서 번아웃과 비슷한 증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자신의 삶을 채울지에 대해서만 하루 시간을 다 보내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생활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졌고 이 사회가 잘못이라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나의 문제, 나의 능력 부족, 나의 목표성 상실 등등 내가 해결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 반대로 사회가 병들어 나마저도 힘들게 하는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말도 되지 않는 급여를 제시하며 최악의 노동시간을 제공하게 하고 포괄임금제라는 보이지 않는 노예생활은 지금까지 사회에 헌신한 부모세대들을 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기대와 반대로 가는 삶이 청년들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고 속에 곪아 터진 고름을 짜낼 수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중독되어 가는 청년들

  청년들이 희망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니 돈, 섹스, 마약과 같이 빠른 시간에 행복감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빛투사태, 성매개 질환의 확산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마약에 손대기 시작한 것이다. 

가정을 일구어 집과 차를 사고 자녀를 양육하는 등의 과거에만 일반적이었던 것이 지금에는 그거 선택이라고 여겨지게 되면 오래되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들이 등장했다. 지금 글을 쓰는 나도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으로서 포기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족쇄와 같았던 것을 벗어던지니 해방감 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 노후는 쓸쓸한 것 같아 한편의 마음은 무거운 지점은 언제나 고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이지만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이들은 위험한 것들에 손대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 청년 세대들은 가정불화, 한부모 가정,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등등 친구들과 하나쯤은 통하는 주제거리이다. 유년기 시절부터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부모의 사랑을 확인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해야 하지만 성장이 끝난 성숙해야 할 시점에도 이 사회는 존재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은 왜 태어났는지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서 이 현실에 살고 있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중독으로 나타나고 있다. 알코올 중독 청년도 현재 중장년들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다. 퇴근을 하고 매일 편의점에 들러 맥주 네 캔을 구매하는 청년, 슈퍼에 들러 페트병으로 된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청년은 근처에도 너무 많다. 청년들의 속이 상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나에 주제로 묶어질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며 산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식들에게 강요했던 업보이다. 



강력한 무기

  나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라 한다. 누군가와 공통의 주제로 떠드는 행위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가 아니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서로 관심사가 같으면 밤새도록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같은 주제로 떠들기 좋아하는 나와 같은 분과 통화를 할 때면 기본적으로 5시간은 필요했다. 무엇보다 갇혀있지 않고 통통 나오는 주제거리를 잡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동이 트고서야 대화는 종료된다. 가장 중요한 시점은 대화가 종료된다는 것이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그 주제로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의 강력한 무기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정말 강력하다. 열정이 충만했던 회의시간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만 대답한다. 그리고 주말 동안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도 그냥 집에 있었다고 말문을 닫아 버린다. 왜냐하면 에너지를 다 사용할 만큼 노력을 해보았음에도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것에 투자했더라면 성과라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내가 고민하던 것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마침표는 개인이 아닌 조직에 대한 마침표가 되어 버렸다. 조직이 나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하면 나와 함께 가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침묵이라는 강력한 나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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