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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May 26. 2024

칠보산 개구리 논 모내기 하는 날

그리고 행복한 이야기

칠보산 개구리 논 모내기 하는 날


칠보산 개구리 논으로 가는 길은 숲 길과 황톳 길로 이어져 이었다. 칠보산으로 들어서자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깊은 숲 속 어디쯤처럼 보였다. 도로 옆 작은 숲 속 길로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붉은 황토로 이어진 하얀 가르마 같은 오솔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로 옆은 산업도로로 닿아 있는 곳이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문명과 분리된 장소처럼 보였다. 커튼을 획 걷고 나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 듯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준 곳으로 주차를 하고 내린 곳에는 덩그러니 학교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디에도 개구리 논과 비슷하게 생긴 논이나 밭은 없었다. 주섬주섬 배낭을 둘러메고 아이들과 신호등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행사 담당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따라오면 된다며 앞장서 갔다. 앞장선 사람들은 이 길을 쭉 따라오면 된다며 서둘러 걸어갔다. 마법과 같은 붉은색 황톳길을 이십여분 걷고 나니 작은 텃밭과 논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작은 텃밭에는 구획을 나누어 심어놓은 상추와 고추 토마토와 고구마와 이제 막 꽃을 터트린 감자까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보는 것 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져 갔다.

그 앞으로 탁 트인 곳에 개구리 논이 보였다. 우리는 푹신한 논둑길을 걸었다.

아파트와 산업도로로 둘러 쌓여 있는 칠보산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빨려 들어간 낯선 장소처럼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품어내고 있었다.


두툼한 논둑길 옆으로 질경이와 쑥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보는 것보다 더 빨리 진한 꽃향기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찔레꽃 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가래질을 마친 논에서는 진한 흙내음이 물안개 피어나듯 올라온다. 개구리 논에는 물이 찰랑찰랑 들어찼다. 논물 속으로 시커먼 우렁이 긴 수염을 흔들며 움직인다. 찰랑 찰랑 꽉 들어찬 논물이 마치 물감  냄새가 풍겨나는 수채화 같다. 상추와 고추를 심어 놓은 아기자기한 텃밭들이 잇닿아 있다.  칠보산 생태계는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보였다. 적어도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빨라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연의 시간 그대로 물 길어야 할 순간들이 오면 초록의 식물들과 나무들은 왕성하게 뻗어 나간다. 땅 밑으로 깊게 뿌리내린 뿌리들은 인간이 만든 정교한 펌프보다 더 많은 물을 길어 올린다.


칠보산 숲길로 접어들자 좁은 오솔길이  양탄자 펼쳐 놓은 듯 기분 좋게 이어져 있었다. 비린 숲 향기는 밀도가 높았다. 이슬에 젖은 솔잎들과 검붉은 황톳길 그 안을 풍성하게 메우고 있는 연녹색 나뭇잎 칠보산 숲 속길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였다.


생태환경 체험 교육관은 해마다  모내기와 김매기  벼베기를 주관해오고 있었다. 지완이는 개구리를 잡고 싶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사각형 논둑길로 징과 꽹과리를 들은 풍악대가 질러가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라 모든 사람들이 논둑길로 따라나선다. 매년 풍년 농사를 짓게 해 달라며 울리는 풍악대의 노랫가락이 들녘으로 퍼져나간다. 아기 오리들처럼 논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은 뻘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은지 소리 지르며 좋아한다.

장화를 신은 쌍둥이들은 발을 뺄 때마다 장화가 벗겨져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모내기는 정확한 간격으로 심어야만 잘 자랄 수가 있다. 간격이 좁거나 멀어지면 뿌리가 엉기거나 바람막이가 없어져서 쌀알이 영글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부터 긴 줄을 이용해 심어야 된 위치를 정해서 모를 심는다.


"줄 넘어가요"


논둑 사이를 가로지르는 긴 줄 앞으로 빨간 헝겊이 묶여 있는데 그 뒤에 심어 주면 된다. 손가락으로 삼 센티 정도 진흙 속으로 뿌리를 밀어 넣어 심으면 된다. 이런 모내기를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건데도 제법 잘해나간다. 두세 살 아이에서부터 중고등 학생까지  그 뒤로 젊은 엄마 아빠들 모두들 논 속으로 들어가 모를 심는다. 휘청대며 넘어지는 아이들은  아예 머드 축제를 하듯 얼굴에도 찍어 바른다.

저 작은 풀에서 수백 개가 넘는 쌀알들이 영글어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집에서도 키우자고 거든다.

아마도 아이들은 그 짧은 시간에 온 모공을 열고 들어오는 세상의 빛과 비릿한 흙 내음과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진흙의 촉감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과 오월의 진한 향기들을 아이들이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 본다.


모내기 생태체험을 하기 위해 인근에서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해막이 천막 밑에 모여 앉아 수박과 떡을 먹으며 이야기한다. 진흙 묻은 손발을 대충 씻어내고 마치 농부들처럼 텊썩 주저앉아 두런두런 먹는 점심이 달았다.


칠보산 개구리 논 그곳엔 행복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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