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보는 게 취미는 아닌데. 그럼에도 계획과 집중에 대한 생각을 다잡는 요즘이다.
끝맺지 못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밀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 심각한 건 아예 '그 계획이 잊혀지는' 것 아닐런지. 물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건 전자일테지. 있었는데 없었다가 어느새 다시 생겼을 때 데미지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망각은 신의 선물.
애초에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딱 손에 닿을 만큼이라면 좋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기에 더욱 생생하게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텄다, 나의 인생은. 뭔가를 계속 해야한다. 그렇게 뭔가를 하는 와중에 시작만 있고 마무리는 없다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지 않을까?
공부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 하나, 뭔가를 배울 때 그것의 [활용]을 꼭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걸 내가 어디에, 무엇의 도구/수단으로 써먹을 것인지. 그게 공부의 필수 조건이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뭔가를 새로 배우는 걸 좋아하지만, 수단보다는 목적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왔다. 중국어도 엄마 큰딸에게 열심히 배워서 자격증까지 땄는데, '와 너무너무 재밌었다! 중국어란 정말 영어와 한국어의 중간 같구나! 하하 언어란 정말 놀라운 세계야!' 라고 외치고 그걸로 모든 만족을 채웠다. 더 재밌어보이는 뭔가를 찝적대러 슝 떠난 자리에 니하오 단어장만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의 인생을 부정하고 좌절하고 정답은 리셋 뿐이라며 신청려(지나가세요)마냥 뛰어내리자 다짐한 건 아니지만. 자주 생각해 온 부분이고 필요까지 느꼈으니 염두에 두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방금 문장 레전드 수능영어 해석본 같네요. 그녀는 기왓장처럼 두꺼운 중철 노트를 수직으로 적재된 도서 더미에 가볍게 올려두었다 3달러짜리 오렌지를 4봉지 샀는데 특별 할인 10%에 2달러 쿠폰까지 가진 상태에서 사실 그게 멤버쉽에게만 적용되는 할인이었다면 샐리는 얼마를 지불해야 합니까?
오늘 친구 지토와 그런 얘기를 했다. 뭔가를 하기로 했을 때 그것의 진짜 목적, 목표를 확실하게 두고 기억해야겠다는. 흐름을 잃지 않으려면-여기서 잃는다는 건 내버림과 잊어버림을 동시에 의미-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상위의 궁극적인 목표를 잡고, 그것으로 가는 나름의 단계를 설정해서 일정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목표와 단계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걸을 길을 고르다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9월이다. 난 가을이 좋다. 뭔가를 (다시)시작하기 좋은 계절. 시작이 반이라지만 정말 시작만 한다면 물이 반 밖에 안 남은 상황에 직면하고 말 것이랍니다.
*2022년 9월 개인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