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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Jun 20. 2021

도시 생활자의 소소한 먹거리

고요한 파랑을 무심하게 풀어놓은 호수 같다. 요 며칠의 하늘!

어린 날, 운동회 때 만국기 사이로 보이던 딱 그 하늘 같았다.

초여름의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을 머금고 있는 그늘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바질을 심어 키우고 싶은 맘이 강하게 일어서, 설거지까지 미루고 화원으로 걸음 하며 연신 이유 있는 해찰을 했다.


무더기로 피어 있는 개망초, 신록 사이로 보이는 아파트 꼭대기 뾰족 지붕과, 무심하게 흰 구름이 걸려있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가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늘 그렇듯 시골 출신의 도시 생활자는 도심의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린 시절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풀들이, 이제껏 세대를 대물림해서 시간과 장소만 옮겨 와, 숱하게 눈에 밟히고 발길에 차인다.

잔디밭에 빠끔히 고개 내민 그림자에 대고 손 하트도 만들어보고, 까맣게 익은 버찌를 좇아 목이 빠져라 고개를 젖히고는 애먼 나무기둥만 실없이 흔들어보았다.

손 닿는 곳은 죄다 따 먹고 내 몫은 하나도 안 남겼으니, 탱글탱글 달려 있는 까만 탐욕의 열매는 그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중력을 이기지 못한 실한 버찌들이, 보도블록 위에 거뭇한 속살의 흔적만 남겨 놓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구나.

어렸을 땐, 꽃을 따먹고 나무 열매를 따먹던 일이 청개구리가 도약하는 일만큼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허기진 배를 채운다기보다는, 수렵과 채취에 능했던 선조들에게서 대물림된 유전자의 발현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금도 그 본능적인 유전자의 발현은 계속되고 있다.

길을 가다가 멈칫하고 서서는 어김없이 잘 익은 열매를 따먹게 되는 것이, 속된 말로,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라고, 본능적으로 혀의 감각이 기억하고 있는 맛을 확인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얼마 안 되는 열매를 날름 따먹고는, '그래 이 맛이었어'하고 나에게 검증을 한다.

요즘엔, 대기 중의 공기는 차치하고라도 내리는 비도 깨끗하다고 할 수가 없으니 씻지 않고 먹게 되는 야생의 열매가 얼마나 깨끗할까마는, 이미 이 세상의 빛을 머금고 익어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하게 살아남았음을 인정받은 것이니,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각설하고, 후크 선장의 보물지도처럼 어디 어디에 가면 어떤 열매가 맛있다는 것을 훤히 좀 알 수 있는 열매 지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아차산에 가면 아까시 꽃이 특히 맛나다느니, 인왕산 초입엔 버찌가 실하다느니, 아시아 공원 오솔길에 가면 까마중 열매가 유난히 많다느니, 또 서울숲 습지에 가면 제대로 익은 오디를 맛볼 수 있다느니, 하는 알찬 정보를 제 때에 알면 참 좋으련만!

오늘처럼, 실하디 실하고 까맣디 까만 버찌를 한 발 늦게 발견하고는 잔뜩 풀이 죽어서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말이다.

그렇지만, 또 누군가의 손이 먼저 닿다거나, 거부할 수 없는 중력의 힘에 이끌려 투항하고 난 이후라면, 아무리 실하고 맛난 열매라 할지라도 말짱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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