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초 May 26. 2021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통증과 무기력감에 대한 지지리 궁상 넋두리

뭔가 정리되지 않은 듯한 복잡함과 만족스럽지 못한 이 상태를 불안, 초조, 우울함이라고 감히 말할  있다면, 맞다. 심리상태가 안정보다는 불안정 쪽으로 기울고 있는 요 며칠이다.

결핍과 불안, 초조, 우울함이 뇌 속에선 수없이 많은 생각들로 잡념처럼 엉켜서 덜 중요하게 취급당하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미숙아처럼 갈팡질팡하며 상황 속을 어지럽게 부유하는 중이다. 그래서 자꾸만 뭔가를 끄적거려서 내 안의 너덜너덜한 ‘지쳐있음’을 좀 덜어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무엇이 이토록 갈증을 느끼게 만드는 걸까? 불안과 초조와 잡념들 사이에서 미로 찾기라도 하고 싶은 걸까?

‘정신을 잘 붙잡고 가야지!’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나를 들쑤시는 사람과 상황들은 반칙인 걸까? 아님, 예방주사처럼 날 일깨워주는 면역증강제일까?


때로는 바쁘고 긴박한 일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때가 있다. 짜인 각본처럼, 마치 날 시험하기라도 하듯이.

뭐라도 포기가 쉬운 것 하나쯤 불쑥 내던지길 기대하는 악마의 유혹처럼 말이다.

거기에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 신체의 곳곳이 아프다.

작년 가을부터 목과 어깨 통증으로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다. 병원도 수시로 다니며 필요한 검사를 하고, 주사요법과 약물치료와 도수치료를 병행하며 한동안 집중적으로 통증관리를 해왔는데, 호전되지는 않고, 통증의 양상이 달라지면서 여전히 아프다.

그래서 바쁜 일 한 덩어리가 끝나는 시점에서 도수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24시간을 따라붙는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위협받고 있으니 마음까지도 피폐해진다.

이 죽일 놈의 어깨 통증!

가만히 있기만 해도 욱신거리고 아리고...

누구한테 뼈를 가격 당해서 멍든 것처럼 아프고, 어깨 곳곳이 시큰거려서 누워있다가 기가 막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기도 한다.

'아! 사람이 맨날 이러고 어찌 사누......'

탈을 챙길 새도 없이 통증을 삼켜야 하고, 해야 할 일의 마감이 코 앞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죽으란 법은 없다더라......'


핍진한 일상에 마음이 좀 심란하여, 가닥잡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딱히 불만이 있다거나 충족되지 못한 건 없지만,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싶은 자기 검열의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생각이 단순해지고 시간이 머뭇거리는 듯 천천히 가고 망설임이 반복되면서 행동이 느려지다 보면, 그저 그 순간이 의미 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뭐 하는 건가?'싶은 생각이 딱 들고 마는 것이다. 생각은 멈춰있는데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는 그 순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망설이는 그때는, 정말이지 '참 의미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냥 명분도 없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결과가 흐지부지 되고 만다고 하더라도 자책하지는 말아야지. 그러자고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했다. 

꼭 뭘 해야만 되는 게 아니고, 꼭 무슨 결과를 내놓아야 되는 게 아니지. 늘 생산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결과치를 내놓아야 하는 의무감도 없으니, 그냥 멀뚱히 지나쳐버린 시간이라도 괜찮다. 

안절부절못했던 망설임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 아무 소득도 없이 시간을 버렸다는 그 생각만큼은 버리기로 했다.

사실,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뻘쭘하게 있는 시간들이 참 무료하고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간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간이 아깝고 비 생산적이라는 생각에, 자조 섞인 후회와 자기반성을 하느라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제는 뭔가를 부지런히 해내야 한다는 그 생각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 무것도 안 한 채로 몇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고 해도, 설거지를 미뤄둔 채 티브이를 보며 멍하니 보낸 시간이 길어졌다고 해도, 안 될 건 없다. 

누가 뭐랄 것도 없고, 스스로 자책하지만 않는다면 누구한테 혼날 일도 아니다. 

기한을 넘겨버린 관리비? 가산금 내면 되지 뭐! 사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결과적으로 이번 달엔 놓쳐버렸다(이쯤 되면 자동이체를 할 법도 하다만).

여태 신청 못한 제휴카드? 내일이라도 생각나면 신청하고, 생각 안 나면 또 하루 더 늦게 신청하면 되는 거지 뭐!


긴박하게 다가오는 마감이 있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바쁜 일과를 보내면서 지나쳐버리고 마는 일들도 생겨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불리한 일들도 여태 해결하지 못한 채 여러 날을 흘려보냈다.

출근해서 하루일을 하다 보면, 퇴근 때가 되어서야 "아, 맞다!" 하게 되는 일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휴!

단순해지자!

내일은 다 잊고, 퇴근길에 친구를 불러내어 뜨끈한 쌀국수 한 그릇을 먹어야겠다.

고수를 듬뿍 올리고 잘게 다진 청양고추도 팍팍 넣고 말이지.

한 열 시간쯤은 아프단 생각이 안 들겠지.

가끔, 분신술의 능력이 있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커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