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가락을 늘이고도 남을 듯 기세 좋게 내리쬐는 땡볕에는 반공일,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의 느슨함과 나른함이 배어있었다. 이를테면 게을러지고 싶게 만드는 귀찮은 질척함이 있었다. 시골에서의 그런 느슨한 게으름은 나름은 괜찮은 구석이 있었다. 어찌 됐든 먼 길을 걸어 등하교를 하는 고단함이, 그 하루의 반을 담보로 맥없이 맥이 끊기게 해주는 것이었으니까.
지칠만한 그때에 딱 다가오는 토요일, 그러니까 반공일은 그렇게 말이 적던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널따란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집에 올 수도 있었겠으나, 4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할 귀갓길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테니, 그냥 집 마당을 운동장 삼아 놀았던 때다.
동네의 고만고만한 친구들하고 봄에는 들로 나가 쑥과 자운영 등을 캤고, 초여름이면 냇가에서 빨래를 하곤 했다. 아직 야물지 못한 여린 손으로 조물 거리던 빨래가 얼마나 깨끗하게 빨아졌을까마는, 지금처럼 하루만 입고 내놓는 빨랫감을 세탁기가 알아서 빨아주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농사일로 바쁜 시골 부모의 손을 덜어주기엔 그만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빨래를 마치고 나면 흐르는 냇물에 그대로 머리를 감았다. 엉덩이를 쳐들고, 윗도리의 반은 적셔가며 감았을 게 뻔 하지만, 어김없이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면서 집에 가기 전 마지막 단속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선 샘가에서 펌프질로 길어 올린 깨끗한 물에 마지막 헹굼을 하고 빨래를 짜 널었다.
섬유유연제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땡볕에 잘 마른빨래에선 정직하게 '무궁화 표' 빨랫비누 냄새가 났다. 그렇게 빨래를 널고 나서는 땅거미가 질 때까지 연신 놀았겠지?
구슬치기도 곧잘 했는데, 내가 잘하는 게임은, 가만히 서서 눈높이로 구슬을 조준했다가 땅 위에 놓인 구슬을 맞추는 놀이, 일명 '눈깔 따먹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애들 놀이 이름치고 꽤나 상서로웠다.
반인륜적임. 뭐, 구슬을 속된 말로 눈깔에 비유한 거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따 먹을 게 없어서 눈깔을 따먹냐?
암튼 그 분야(?)에선 달인급 실력을 보유했던 내 주머니엔 언제나 '눈깔'들이 한가득이었다.
반공일 우리들의 노동은 언제나 적절했고, 놀이는 과도했으며, 어스름이 몰려들 때까지 놀다 지쳐 먹게 되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그렇게 공일을 기다리던 반공일의 밤은 '토요 명화'를 보면서 잠들 수 있었다. 잠잘 준비를 마치고 이불속에 들어가 누운 채로 채널을 돌리면 어느 순간,
"빰빠바바밤 빠바바밤 빠바바밤, 빠 바 밤 빠라빠라 바라바라 밤"(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리듬이다. 토 달지 마시길!)으로 시작되던 토요 명화!
올리비아 핫세와 레오나르도 파이팅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얼마나 그윽하게 봤던가. 두 배우의 키스 장면에서는 내 입술에 경련이 이는 것만 같았지 아마?
그리고 가톨릭 신부와 나이 어린 소녀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다룬 미드, '가시나무 새'를 볼 때면 가슴이 절절하면서도 흙먼지 휘날리는 사탕수수밭의 이국적인 감상에 심하게 매료되곤 했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레이철 워드 >
여주인공 '매기'역할을 했던 그 청순한 배우'레이철 워드'와 잘 생긴 랄프 신부 역할의 '리처드 챔버레인' 그리고 그보다 더 나를 흥분시켰던 것은 다름 아닌 드라마 OST였다. 드넓은 목장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The Thorn Birds Theme '.
극장에서 영화를 접하기가 어려웠던, 그래서 어서어서 크기를 기다려야만 했던 나이 어린 시골 소녀에게는, 오로지 토요 명화나 주말의 명화와 같이, TV를 통한 외화 방영이 문화생활의 대부분이었다.
오전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은 뒤엔 친구들과 빨래를 하거나 나물을 캐면서 보냈을 하루 일과가, 콧대 높고 얼굴이 조막만 한 외국 배우들의 영화 한 편으로 달게 보상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은 보다가 잠든 기억이 더 많다.
토요명화 오프닝 곡을, 단순한 바람 빠지는 소리로 방정맞게 재현을 했다만, 찾아보니 'Concierto de Aranjuez'라는 곡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