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렇게 낙타를 사자!
오늘은 최근에 읽은 여행서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어떤 이야기인고 하니, 자그마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에 관한 이야기되시겠다.
마치 버킷 리스트의 단골 메뉴 마냥, 산티아고 순례 여행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야 할 여행처럼, 본디부터 타고난 본능 같은 끌림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알고 떠나도 변수가 많은 것이 여행의 본질인데, 하물며 이국 땅을, 그것도 한 달이 넘도록 걸어서 하는 순례 여행길의 변수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선뜻 이 여행을 계획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한 달 전후의 긴 여행 기간도 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이기는 하다.
여행의 보폭을 조절하고, 강약과 완급을 조절해 가면서, 자신만의 속도대로 걷는 여행이야말로 '진정성'있는 자아와 대면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따지고 보면 거창하게 산티아고까지는 아니어도, 당장에 제주도 올레길 탐방에 나서도 탁 트인 해안길을 따라 오래 걷는 일이 가능하다. 그뿐인가? 시원스레 곧게 뻗은 야자수는 여느 해외 못지않게 충분히 ‘여행’이라 느낄 수 있는 감상을 안겨 준다.
어떤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기 위해서 굳이 여러 나라를 여행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걷는 그 길 위의 순간이 나를 오롯이 행복으로 이끈다고 믿는 여행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소심쟁이 중년 아재, 나 홀로 산티아고]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에 대한 책은 꽤 여러 권을 읽어보았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느리게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복작대는 여행기가 아닌, 정해진 루트를 따라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숨 고르기 하는 여행이라서, 자신만의 속도대로 읽기에도 좋다.
여행자의 느낌보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과 같은 생활자의 느낌이라고 할까? 응당 여행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랜드마크만 찍기 바쁜, 무늬만 여행자가 아니라, 그 도시와 한 몸이 되어 그곳의 사람들과 기후와, 그곳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드는 진짜 여행 말이다. 길 위를 걸으며 한 도시를, 한 나라를 가로지르는 여행이니, 묵언을 수행하는 철학자의 시선이 가능할 것도 같다.
여행은 선물이다. 그 도시와 나 사이에 끼어들 것이 별로 없다.
어쩌면 여행은 앞선 상상이 불러오는 판타지일 수도 있다.
낭만 한가득일 거라는 과장된 마인드 셋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여행은 더 묘미가 있지 않은가? 빤히 아는 나라가 아닌, '여기, 이대로 괜찮을까?'하고 한 번쯤 의문을 품게 하는 미지의 나라로의 여행!
그래서 여행은 진짜 선물일지도 모른다.
설렘과 기대로 받아 드는 선물은 직접 확인해 보아야만 비로소 그 실체를 알 수 있으니까.
날 것 그대로의 여행지를 받아들이면, 조금은 불편하고 익숙지 않은 기대가 전부일지라도 전혀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이 있다.
34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한 채, 퇴직 후 여러 변수와 난관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순례자로서 떠난 저자의 뚝심과, 여행의 처음과 끝을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로서 단단하게 매듭지을 줄 아는 저자의 강인함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노매드적인 유랑에 관심이 유난히 많았던 나로서는 프랑스길 여행의 시작점인 생 장 피에르포르에서 스페인과의 국경인 피레네 산맥을 걸어서 넘는, 저자의 여행 루트가 너무 흥미로웠다.
나 역시도 언젠가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꼭 프랑스 길로 계획을 잡고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대로 길 위의 풍경들과 사람들을 채워가며, 매일매일의 여행을 기록으로 남긴 저자의 꾸준함이, 마치 실제로 순례길을 함께 걷고 있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주고, 여행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변수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 책은 다른 어떤 여행서보다도,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꿀팁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와 같이 호흡하며 낯설고 긴 여행의 진정한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저자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아무런 경계 없이 동행하며,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문화적 경계와 언어의 장벽을 스스럼없이 허문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은 중력을 이기는 강한 힘을 갖는다.
읽는 동안 '바람'이 떠올랐다.
평범함.
홀로 걷는 길 위에서 느끼는 그날의 바람.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또 다른 하루.
여행은 각자의 여행자가 각각의 경우로 엮어내는 이야기다. 삶을 해석하고 그것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나라를 여행해도, 개개인의 색깔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저자의 열린 마음은, 여러 날에 걸쳐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 순례자들에게 무언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또 하나의 노란 화살표로 남는다.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한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순례길을 여행하기에 앞서 이 의미 있는 여행이 시작되는 도시에서 시차 적응을 위한 사전 여행을 하는 것도, 꽤 영리한 여행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순례자가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걷는 여정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여행자의 입장이 되어 대서양 땅끝 마을인 '피스테라'와 '무시아'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것도 색달랐다.
900km에 달하는 프랑스길 대장정을 마치고 난 후의 삶은 어떠할까? 그 길 위에 섰던 수많은 순례자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스스로 깨닫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다고 할지언정, 여행이 끝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때, 비로소 내면의 울림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지막한 울림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삶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에 대해 더 깊은 가르침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 떠나고 싶은가?
나도 혼자 떠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으니, 같이 가보는 건 어떨는지!
그럼 이제 동전을 모으자! 아니다. 낙타를 사는 게 빠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