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선 Jan 03. 2024

새해에는 조금 덜 사랑해 줄게

"사랑하다"에 대하여

2023년 마지막 날,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나오면서 내가 말했다.

"새해에는 더 많이 사랑해 줄게."

그러자 첫째 아이의 두 눈이 놀란 듯 커졌다. 그리고,

"지금 엄청 많이 사랑해야지!"라고 말했다.

"아 그럼. 지금도 엄청 많이 사랑하지. 그럼 잘 자."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방을 나왔다. 무척 당황한 것이다. 내가 방을 나선 후 첫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생각 없이 던진 말에 혼란스러웠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와 나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사랑하다"라는 동사가 있었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나의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해 주겠다는 어떤 실천의 동사로 사랑한다는 말을 사용했다. 더 많이 안아줄게.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해줄게. 너의 말을 더 잘 들어줄게. 내가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랑의 실천에 대한 반성이자 다짐이 어린 말. 그런데 아이에게 "사랑하다"는 것은 사랑하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사랑해 주겠다는 말은 이제까지 엄마의 사랑이 온전하고 충만한 것이 아닌, 뭔가 여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사랑을 한 조각씩 남겨두는 엄마라니. 얼마나 놀랐을까.


온 마음을 다 해서 사랑하고 있음에도 그 사랑의 실천과 표현에서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역시, 엄마가 된 이후로 한 번도 떨쳐버리지 못했던 죄책감 때문이다. 일부러 사랑을 한 조각씩 남겨두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은 일상에서 온전히 표현되지 못하고 찝찔한 찌꺼기를 항상 마음에 남긴다.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 지친 모습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 엄마라는 자아에 내팽개쳐진 나의 꿈과 나 개인의 자아에 대한 상실감. 조급함. 충분히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은 불안감. 이 모든 것이 내 사랑을 갉아먹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충만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죄책감이 "더 많이 사랑할게"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다짐을 내가 내뱉게 만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애초에 일부러 사랑을 한 조각씩 남겨두는 것이 더 충만하게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겨둔 한 조각의 사랑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나를 쓰다듬고 나를 위로해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게. 


그래서 마음속으로 나는 나의 새해 다짐을 뒤집었다. "새해에는 조금 덜 사랑해 줄게."


작가의 이전글 잔잔한 우울감을 극복하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