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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선 Aug 23. 2023

시계는 위험하다

어제는 둘째 아이의 백일이었다. 둘째 아이는 평소에는 이런 천사가 없다 싶을 정도로 순하다가 꼭 무슨 기념일이 되면 갑자기 돌변한다. Mother's Day, Father's Day, 그리고 우리의 5주년 결혼기념일까지. 모든 기념일을 펑펑 울면서 보냈다. 백일의 기적이라는데... 우리 아기는 또 나를 힘들게 하려나, 했는데 역시나. 아기는 아침 7시에 깨서 수유를 하고 난 후 10시 반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니 어린이집 등원 길에 차에서 고작 10분 정도 잔 것으로 끝. 하지만 졸린 아이는 계속해서 울고 보챘고, 아이를 안고 달래 크립에 눕혔다 안아 올렸다를 한 시간이 넘게 반복하다 녹초가 되어버렸다. 겨우 잠들었나 싶었는데 40분도 채 못 자고 나서 깨버렸다. 오랜만에 블로그를 쓰고 마음을 조금 정리한 직후였다. 11시부터 2시까지 똑같은 상황의 반복. 오전에 낮잠을 제대로 못 자서 더 힘들어하는 아이를 안고 달래다가 결국은 폭발해버렸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자자!" 소리를 질렀다. 100일 동안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아이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한참을 소리 내어 울다가 진정하고 아이를 다시 달랬다. 겨우 잠을 재우고 나니 첫째 아이 하원을 해야 할 시간.


이때, '시계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깨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슬슬 낮잠을 재울 준비를 한다. 그래도 3개월 때까지는 15분에서 30분 정도 아이를 재우면 잠들었다. 낮잠은 짧게 30-45분 정도.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내가 생각했던 루틴이 엉망이 된다. 3시간 단위로 먹-놀-잠 루틴을 만들고 싶은데, 두 시간 만에 먹-놀-잠이 끝난 것이다. 한 시간 정도 놀고 수유를 하면 아이가 졸려한다. 재우고 나면, 이번엔 두 시간이 남는다. 이렇게 매일매일 루틴 아닌 루틴으로 3개월을 보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아이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잠을 안 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아이가 깬 지 2시간이 지나면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고, 3시간이 다가오면 절망한다. 시계를 계속 확인한다. 1분 10분 30분이 지날 때마다 불안감이 증폭되다 곧 불안감이 화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하루 잠의 총량도 항상 내 걱정 중에 하나였다. 3개월 아기는 보통 14시간에서 17시간을 자야 한다는데. 우리 아기는 많이 자면 14시간인데. 지금 낮잠 한 시간을 안 자면 오늘도 14시간을 채우지 못할 텐데. 마치 수유를 한 번 거른 것처럼 찝찝했다.


첫째 아이를 재울 때도 마찬가지. 7시 반에 자러 들어가서 8시에는 잠이 든 아이를 확인하고 나오고 싶다. 현실에선 아이와 8시에 겨우 잠잘 준비를 마친다. 아이가 평소처럼 잠자리 책을 두 권 읽자고 하면, "아니, 오늘은 늦었으니까 1권만." 이미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두 권의 잠자리 책을 읽고 아이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종알종알 말을 건다. 동화책 이야기, 어린이집 이야기, 말도 안 되는 그냥 이야기. 그러다 물을 달라 하고, 인형을 달라 하고, 이불을 펴 달라고 하고, 이불을 덮어 달라고 하고, 이불을 빼 달라고 한다. 점점 조바심이 불안감으로 바뀌고, 불안감은 화가 된다. "이제 자자." "침대에서 내려가지 않아." "침대에서 내려가면 엄마 나갈 거야." 조곤조곤 말하지만, 사실은 협박으로 변해버리는 말들. 시계를 확인한다. 9시에 가까워지는 걸 확인하면 그때부터는 정말 화가 난다. 또 늦게 재우게 되네. 의식하지 못했는데 배도 고파진다. 9시인데 아직 밥도 못 먹었어. 화가 점점 자란다.


이상적인 루틴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강박적으로 시계를 확인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내 시간을 뺏긴 것이 되어 버린다. 아이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조바심이고 불안감이고 화다. 내 강박은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가린다. 종알종알 내게 늘어놓는 아이의 이야기들을 못 듣게 한다. 아이의 표정을 읽을 수 없게 한다. 아이에 대한 내 사랑도 내 조바심에 묶여버린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보다 엄마의 불안감을 더 느끼며 잠이 들 것이다.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에게 루틴이 꼭 필요하고 루틴을 만드는 건 필요하지만, 그 루틴은 그저 가이드일 뿐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그냥 조금 덜 잘 뿐이겠지. 물론 4개월이 다가오는 지금 시점에서, 이제는 4시간 루틴으로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꾹꾹 눌러야지. 아이의 얼굴을 더 볼 수 있게. 내 아이만의 신호를 읽어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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