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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선 Aug 23. 2023

내 아이가 안 예쁘다

어젯밤, 내 아이가 안 예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재운다고 한 시간 넘게 실랑이를 하고 난 후였다. 화를 억누르다가, 아주 무거운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인정해야 했다. 인정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금 나는 내 아이가 안 예쁘다.


겨우 잠든 아이를 바라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예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난 왜 안 예쁠까. 방을 나와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남편을 보니 눈물이 터졌다. "아이가 안 예뻐."


밤 9시 반. 밥도 먹지 못해서 허기가 진데, 이틀 동안 샤워도 못해서 샤워부터 해야겠다. 울면서 물을 틀었다. 왜 안 예쁘지. 언제부터 안 예뻤을까. 난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참을성 하나는 인정받는 나인데, 부처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던 나인데, 왜 요즘은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까.


답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잘 참는 엄마이기에 좋은 엄마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화가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나는 순간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아이가 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대부분 나는 나의 부족함에서 찾았다. 첫째 아이가 이렇게 예민해진 것은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내가 아이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했던 탓이다. 둘째 아이가 잠을 잘 못 자는 것은 내가 아이의 신호를 놓친 탓이다. 매일 매 순간 나는 내가 완벽하지 못함을 탓하고 자책하고 그 결과 우울해졌다. 분명히 나는 하루 종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이 없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해냈다는 성취감이 없었다. 집안일이라는 게, 육아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그 와중에 첫째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나날이 커졌다. 둘째를 돌본다고, 집안일을 한다고 바쁜 사이에 아이는 혼자 놀았다. 아이는 그러다 지치거나 화가 나면, 외롭거나 무서워지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찾았다. 둘째를 안아 묶인 두 손 때문에, 열린 입으로만 "다음에" "잠깐만" "기다려"를 말했다. 안아 달라고 하면 "여기 소파로 올라와 봐" "엄마 옆으로 와 봐"하고 아이에게 지시를 해야 했다. 나는 둘째 아이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첫째 아이를 안아줄 수도 없었다.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칭찬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돌봐 와서 이런 말은 잘 안 하는데, 아이가 정말 똑똑하다고, 천재 같다고. 이 말을 남편에게 전하자, 남편이 "기분 좋았겠네"하고 웃었다. 아니, 나는 사실 부담스러웠다. 이 아이가 정말 재능이 있다면, 내가 그걸 잘 알아보고 도와줘야 할 텐데. 혼자 노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를 방치하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될 활동들을 같이 하지 못 해서 아이의 잠재력이 꽃피지 못하면 어떡하지.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easy"하다고 했다. 지시를 하면 바로 이해하고 그대로 따르니 이렇게 편한 아이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너무 어려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She is being difficult."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렵게 구는 것. 그러니 화가 더 났던 거다. 잘할 수 있는데, 다 이해하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구는 거지. 아이가 힘들게 할 때마다, 그 행동들이 나를 향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자기를 잘 챙겨주지 않음에 대한 일종의 보복으로 나에게 어렵게 구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들면 거의 동시에 "그럴 리가 없잖아, 그건 아니잖아."하고 이성적인 내가 말한다. 그럼 또 한 번 화가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속도 조금 후련해졌다. 내가 지금 힘들다는 것. 말도 안 되게 감정이 앞선다는 것. 아이가 안 예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여유가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나니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단지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는 신호가 오는 것이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고 나를 다독여야 할 시간이다. 힘들다고 인정하고 도움을 청해도 괜찮다. 조금씩이라고 나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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