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통신문>
‘급식실 내부 수리로 인해 당분간 운영을 하지..... 도시락.... 송구합니다.’
통신문은 그럴듯하게 적혀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학생들도 선생들도 학부모들도 전부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할 뿐이다. 급식실 위생문제로 한차례 뉴스에 나오고 그 이후 일이 커져 비리문제마저 거론되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학생들 밥값으로 비리를 저질러 봐야 얼마큼이나 벌어 들이나 싶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인지 생각보다 헉~ 소리가 날만큼 돈을 벌여들였다. 뉴스에 난만큼 자비 없이 당장에 철퇴를 찍어 짓누르려 했지만 학생들의 밥 먹는 곳이기도 하고 이곳 학교에 보내는 학생들 대부분 낙후된 동네 출신이었다. 학생들의 부모들도 3D업종의 블루칼라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 근처 지역은 블루칼라들이 먹여 살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 동네를 측은지심으로 생각하면서도 돈을 빨리 모아 이 동네를 빨리 벋어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밤낮 주말 휴일 할 것 없이 일, 일, 일 만했다. 자식들의 끼니를 신경 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걱정을 덜 수 있던 건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거였는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학교급식실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별거 아닌 일이라 말한 것은 오히려 부모들이었다. 위생문제에 대해 조금 울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장 밥을 챙겨줘야 하는 문제에서는 마음 놓고 목청 높여 말할 수도 없었다. 학교 측에서 손해를 보더라 급식비를 받지 않고 더 좋은 밥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해서 학교 측을 울며 겨자 먹기로 믿어주는 척 용서해 주었다.
“학교에 급식실 별문제 없이 한다고 하지 않았어”
철수의 엄마는 통신문을 읽자마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는 것도 버거워 죽겠는데 도시락까지 쌓야하니 벌써부터 피곤해 온다. 만 원짜리 한 장 지워 보내도 대겠지만 그 돈도 어쩐지 아깝게 느껴진다. 급식비를 면제를 받고 있었던 터라 어쩐지 더 그렇게 느껴졌다.
“몰라 급식실에 공사 같은 거 하는 것 같던데 모르겠다.”
철수는 도시락을 쌓가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한때 급식비 면제라는 말이 돌고 학교 급식면제받는 애들한테 은근히 깔보거나 사소한 심부름 같은 것을 시키기 시작했다. 서로가 말은 안 해도 서로가 잘 살지 못하는 것을 아는 아이들 무리에서도 이런 계급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니 면제를 받는 한 녀석이 왜 그러냐고 따져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 자신의 부모 들이 낸 돈으로 밥을 공짜로 먹으니 몸으로라도 때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말다툼 끝에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보았는지 급식비 면제를 받는 한 아이가
“공무원은 우리 부모님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선생님은 공무원이다. 급식비 면제는 너희 부모님이 낸돈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세금이다. 그러면 선생님에게도 심부름시킨다면 평생 노예가 되어 줄게 너희들 똥이라도 핥을게”
하얀 눈알에 핏줄이 잡힌 눈을 부릅뜨면 선언한 아이의 말에 평소 객기로 충만했던 한 아이가 평소 만만하게 보고 있던 선생님에게 아이들에게 하던대로 하다. 급식비 면제에 대한 일이 커져버렸다. 면제에 대해 아이들 사이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는 아이들끼리 그럴 수 있다면 웃으며 넘어 같지만 자신들의 공간에 까지 문제가 삐집고 들어오니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논하며 급식비면제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주의를 주었다. 그 사건 이후로 급식비면제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지만 급식 밥을 먹고 있으면 서슬 한 눈빛이 느껴진다. 밝았던 급식실이 어두운 퍼런색으로 변해 같다. 그러는 와중에 급식에 대한 문제가 터지고 급식은 중단되었다. 철수는 내심 좋았다. 도시락은 맘 편히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다.
철수의 엄마는 자신이 어렸을 적 못 먹었던 기억이나 돈이 쪼들리지만 피곤하지만 도시락에 신경 썼다. 며칠 동안은 피곤한 와중에도 고기반찬이며 여러 가지 음식재료를 사들고 와 저녁에 만들 수 있는 건 만들고 아침에 만들어야 하는 건 출근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었다. 피곤하고 힘들고 한 푼 두 푼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자식이 매일 저녁 도시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밥풀 한 톨 없이 싸악 하고 비워오는 모습에 그래도 그동안 없었던 어떤 감정을 느꼈다. 못 배웠지만 ‘모성애’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회사에 잔업가 특근이 잦었던 날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대충 싸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일하는 동안 신경이 쓰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반찬으로 창피는 당하지 않을까. 맛있는 거 목먹인 미안함 어떡해서든 챙겨줬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 그러면서 자신이 자식과 같은 나이 때 엄마한테 투정 부렸던 날이 떠올랐다.
철수는 학교에서 급식을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 도시락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통신문을 들고 같을 때 그걸 읽어보는 엄마에 표정으로 도시락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싸준다고 해도 늘 집에서 먹는 밥반찬정도만 생각했다. 그것을 교실에서 먹는 다니 어쩐지 싫기도 했지만 투정을 부리기 싫었다. 차라리 알아서 사 먹을 테니 돈으로 달라는 말도 못 했다. 비록 철들 나이는 아니지만 이런 일에는 보통의 어른들과 같아진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은 도시락이 오히려 집밥보다 맛있어 보였다. 며칠동아 괜찮은 반찬을 쌓오던 아이들도 며칠이 지나니 그저 그런 종류의 반찬을 쌓왔지만 어머니는 변함이 없으셨다. 그러나 어느 날 유난히 피곤해 보이던 표정으로 퇴근하던 다음날 점심도시락은 고기반찬이 없었다.
철수의 엄마가 다니는 공장에는 철수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의 엄마들이 여럿 있었다. 철수의 엄마는 그들에게 반찬을 뭐 쌓서 보내냐며 물어보았다. 그들은 대충 쌓서 보낸다고 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도 매번 소금에 절여진 반찬들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약속을 한 것이지 아니면 같이 공동구매하는 반찬가게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이들 반찬들도 처음과 다르게 점점 거기서 거기가 됐다. 그나마 집에 여유가 되거나 엄마가 일을 안 하는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나았지만 결국 다 비슷해졌다,
도시락을 절반쯤 남겨 집에 들고 간 적이 있었다. 그다음 날 아침 엄마가 잔뜩 짜증 낸 목소리로 밥을 남기며 안된다고 말했다. 아침네네 엄마의 짜증에 먼가 울컥했지만 점시시간에 마음이 풀렸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고기반찬이 있었다. 친구들도 고기반찬을 보더니 와 라는 소리와 함께 한 아이가 묻지도 않아도 젓가락질로 고기반찬을 집어 입에 넣었다. 오물거리는 친구의 입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퉤 퉤 퉤 하며 바닥에 뱉었다.
“이게 뭐야”
철수는 친구의 표정을 보고는 고기반찬을 유심히 바라보니 뭔가 고기라고 하기에는 먼가 달라 보였다. 젓가락으로 집어 요리 조리돌려보고 살짝 이빨로 씹어보았다. 장아찌였다. 고기처럼 생긴 장아찌라니 웃음이 나왔다. 도시락을 절반정도 먹고는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남겨가면 이유 없는 짜증을 받아야 하니깐 말이다.
철수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막노동을 하기에 현장이 자주 바뀌었다. 다른 지역이어도 가까우면 자주 집으로 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거리가 되어 짧게는 2주에 한번 길게는 한두 달에 한 번씩만 집으로 내려왔다. 3일에서 7일 정도 집에 있다. 다시 일하러 같다. 철수엄마는 현장이 먼 곳이라 숨통이 트였었다.
철수는 집에서 아빠의 얼굴을 보니 반가운 감정이 반 그리고 나머지 반은 잘 모르겠다. 철수의 아빠는 집에 술에 젖어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는지 집에는 술을 나 두지 않으려고 했다. 아버지가 술에 젖어 있을 때면 이따 금식 철수에게 만 원 한 장을 지워주고는 밖에서 놀다가 오라고 말했다. 만원은 반가웠지만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늘 생각하는 거지만 엄마에 모습은 구석 모퉁이의 어떤 공간처럼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철수는 아빠에게 돈을 받을 때면 카오스라는 슈퍼마켓에 있는 서푼짜리라 적혀있는 게임을 했다. 게임에 룰은 없다. 백 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요상한 멜로디와 함께 어설픈 빛이 기계에 둥그런 모양으로 뱅글뱅글 돌며 밝히고는 땡소리가 나면 꽝과 함께 백 원이 사라지는 것이고 딩동댕동 소리가 나면 어떨 때는 백 원이 어떨 때는 오백 원이 어떨때는 이백원이 가끔 천원의 동전이 기계에 붙어있는 조악한 동전받이에 동전이 나왔다. 철수는 해가지고 카오스의 슈퍼마켓 할머니가 잔소리할 때까지 게임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 같다.
다음날 아침 철수의 엄마는 더운 날씨인데도 목에 스카프를 둘렀다. 몸상태가 안 좋아 도시락을 못 쌓다며 철수에게 만 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 주었다. 아껴뒀다 나중에 서푼짜리 게임을 할까 했지만 어쩐지 만원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학교에 가는 길에 점심에 사 먹을 돈을 남기고 슈퍼마켓에 에서 싸구려 햄버거와 콜라를 사는데 써버렸다.
다음날 엄마는 여전히 목에 스카프를 했지만 도시락은 싸주었다. 반찬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아찌였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장아찌였다. 며칠 전에 먹었던 싸구려 햄버거와 콜라가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삼백 원뿐이 없었다.
철수는 카오스슈퍼마켓에서 서푼짜리 게임을 했다. 백 원이 됐다. 삼백 원이 됐다. 오백 원이 됐다. 또다시 백 원이 됐다. 나중에는 햄버거와 콜라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에서 삼백 원이 모자라게 되었다. 원하는 금액이 가까워지자 어쩐지 게임을 계속하다가는 돈을 다 잃을 것 같아 게임하기가 겁이 났다. 콜라를 포기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햄버거는 콜라 없이는 못 먹는 음식이었다. 철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햄버거는 콜라 없이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다라고
철수는 햄버거 대신 콜라 대신 소주 한 병을 쌓다. 그리고 집에 냉장고 늘 아빠가 물을 꺼내서 마시는 자리에 넣어두었다. 아빠는 다시 일하기 가기 전 하루 전이나 이틀 전에는 술을 입에 안 대려고 했다. 엄마는 그것을 알기에 이날만큼은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은 치워버렸었다.
다음날 엄마가 눈에 안대를 했다. 엄마는 도시락을 싸지 못했다며 손에 만 원짜리를 쥐어주었다. 학교 가는 길에 어제 사 먹지 못한 콜라와 햄버거를 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