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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영 Nov 15. 2024

사춘기 아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TV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다  먹은 라면과 지저분한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서. 밤늦도록 tv 스포츠 중계를 켜 놓은 채 소파에 널부러져 있는 아들의 모습. 그것은 영락없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어른으로써 지켜야 할 선을 알기에  아들에게 몇 번의 경고장을 날렸고.  tv를 부셔버리는 대신   tv를 껐다



그러자 분노한 아들이 갑자기 식탁 의자에 포개어 둔 자신의 옷들을 모조리 방바닥으로 흩어놓고는 안방으로 쏙 들어가 방문을 잠궈버렸


예고도 없이 문을 잠그는 사춘기 아들의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안방 화장실에서 오늘 화장을 지워야 고. 화장대 위에 놓아둔 폰도 가져와야만 했다 . 오늘도 역시  아들과 나의  감정 타이밍은 어긋났다 .


쾅! 나는 손바닥으로 방문을 힘껏 내리치며 문을 열어보았지만 묵직한 소리는 공중에 흩어질 뿐 닫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분노를 느끼며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


'아니야, 이렇게 화낼 필요 없어.

소리 지를 필요도 없어 '


예전엔 분노조절장치에 오류가 난 듯  화내고 소리지를 때가 많았다. 빈정대는  사춘기 아들 앞에 설때면 내 마음은 이미 사람이 아닌 괴물이 된 헐크가 주먹을 꼭 움켜쥐고 행동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싫어하는, 고쳐야 할 사춘기 아들의 행동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화를  낼수록 정신적, 심리적 타격은 오히려  내게 되돌아왔다.  한번씩 심장이 두근거리, 고른 숨을 내쉬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살다간 제 명에 못 살거란 생각도 들었다 .


럴때면 꼭 지난 감정들도 함께 떠오르더라. 남편과 잦은 다툼으로 우울하고 외로웠던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 화는 슬픔으로, 또 슬픔은 우울함이 되어 내 본연의 모습까지 앗아가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아무 일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먹기 싫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오늘,  하루의 수고가 농축되어 옅어진 화장이었지만 나는 오늘 안에 화장을 지워야 고, 안방에 있는  폰도 가져와야 다. 그래서 아무말 없이 다시 한번 굳게 닫힌  방문을 두드렸다. 열리지 않는 문은 마치 아들의 닫힌 마음처럼  견고하고 단단해보였다.


딸깍. 그때 문이 열렸다.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에 살고있는  생물체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춘기 아들이 나를 힐끗 보았다 . 나는 아무말 없이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폰을 챙겼다.  오늘 당장 아들과 2차전을 시작할선택의 기로에서 ..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래, 신경쓰지 말자, 신경 스위치를 끄자'


'레인피킹스'의 편집장 마리아는
매주 삶의 행복, 가치를 담은 이메일을 쓰는데
그녀의 팔뚝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다.

"집중해야 할 것"
마리아는 행복에 집중하기 위해선
 '거절의  기술'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원치않는 부름에는 응답하지 않을 것.
그것이 행복의 본질이다.
거절하는 법을  알아야
우리 삶의 품질도 잘 유지할 수 있다고.

즉, 수많은 요청을 다 받아들이면
그  대가로 우리 삶의 품질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ㅡ<타이탄의 도구들> ㅡ팀 페리스


잠시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문을 활짝 열고 아들이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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