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민음사
이디스 워튼의 책을 읽기 시작한 김에 그녀의 소설도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순수의 시대>라는 명작을 남긴 그녀이지만 또 다른 소설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오랜만에 회사 구내식당이 아닌 바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회사로 걸어 들어오는 길, 햇살에 눈이 부셨습니다. 썬크림도 바르지 않은 맨 피부가 상할세라 급히 손바닥을 펼쳐 이마께로 가져다 댄 순간, 펼친 손가락 사이로 노오란 꽃봉오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이 부셔 색상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그 형체 만은 확실했습니다. 주상복합건물 사이로 분명 생뚱맞아 보이는 나무 한 그루와 그 나무에 송편처럼 송글송글 매달린 꽃봉오리... 저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우와, 벌써 개나리가 폈나?"
무턱대고 허공에 던진 저의 말에 일순간 일행에게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개나리'라는 단어가 메아리처럼 귓전에 울렸고 그 단어는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한 찰나의 판단이 일사불란하게 두뇌에서 프로세싱을 끝냈습니다. 적어도 개나리가 저렇게 송편처럼 열리지는 않지... 음... 아니야...
그 찰나의 부끄러움을 스스로 인정하고 무어라 무마해 보기도 전에 하이에나같고 MBTI T 유형임이 틀림없는 일행 중 한 명이 쏜살같이 말했습니다.
"저건 개나리가 아니라 매화야."
아무튼 그 사건을 계기로 저의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전환 되었고, 따뜻한 봄 햇살같은, 가슴이 콩콩거리는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 때 마침 이디스 워튼의 로맨스 소설 <여름>이 제 눈에 포착된 것이었죠.
<여름>은 한 여성의 성장 소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설을 로맨스 소설로 분류하고 싶네요. 성장 소설로 보기에는 여주인공 '채리티'가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내용 요약] -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아래 점선 부분을 스킵해 주세요.
시골 마을 도서관에서 일하는 채리티는 우연히 도서관에 들린 도시 남자 '하니'를 만나게 됩니다. 하니는 시골을 돌며 오래된 건축물을 연구하는 일을 했고 채리티는 동네에 남아있는 오래된 건축물로 그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도중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채리티에게 하니는 사랑을 여름 공기처럼 밝고 싱그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채리티와 하니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채리티의 후견인인 '로얄'의 마음은 아파옵니다. 로얄은 산 속 빈민가에 살던 어린 채리티를 마을로 데려 와 양육해 왔습니다. 채리티의 부모조차 찢어지는 가난 탓에 어린 채리티를 양육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로얄에게 그녀를 순순히 맡긴 것이었습니다.
불행할 때면 언제나 비정한 세계에 맞서 궁지에 몰린 느낌이 들었고,
일종의 동물적인 은밀함에 사로잡히곤 했다.
어린 채리티가 소녀를 거쳐 여성이 되자, 아내를 여의고 혼자였던, 노인에 가까운 로얄은 채리티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로얄은 그녀에게 딱 한번 속내를 드러내었지만, 그 후로 채리티는 로얄을 경멸하게 됩니다. 로얄은 도시에서 온 상류층 하니가 채리티와 결혼함으로써 그녀를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생의 연륜이 있었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및 세상의 어두운 면까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채리티는 로얄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하니를 향한 마음을 거두지 않습니다. 결국 로얄이 예상한 대로, 하니는 도시로 돌아가 자신과 격이 맞는 상류층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되고 채리티는 버려집니다. 하니의 아이를 임신한 채리티는 담담한 어조로 하니에게 결혼을 약속한 여성과 결혼하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임신 소식은 밝히지 않죠. 임신한 몸을 이끌로 로얄의 집에서 지낼 수 없던 채리티는 예전 자신이 살던 빈민가로 돌아가보지만 하필 그 순간 그녀의 어머니는 임종을 맞이합니다. 기댈 곳을 잃은 채리티는 자신을 데리러 온 로얄의 손에 이끌려 결국 그와 결혼하고 그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소설 속 채리티는 사랑하는 남자인 하니가 다른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아파하고 절규하지만, 이내 담담하게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자신은 괜찮으니 결혼을 약속한 여성과 결혼을 진행하라고 말이죠. 이미 채리티는 자신의 운명을 예측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때문에 하니와의 달콤한 밀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상대와 이해타산적 계산없이 순수하게 현재를, 지금을 온전히 즐기고 헤어짐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채리티의 모습은 그동안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사랑 형태를 크게 비틀어 버립니다. 채리티는 사랑에 있어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습니다. 뜨거운 여름날 태양의 불꽃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하고 헤어짐의 순간엔 쿨내가 진동할 정도로 뒤돌아섭니다. 사랑의 대가를 상대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면서 말이죠. 물론 결말부에서 채리티는 결국 로얄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이 또한 채리티의 결심은 아닙니다. 로얄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그의 옆자리에 서게 된 것 뿐이죠.
현대에는 빈부와 계층의 격차를 이기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배신하는 남성의 등장, 그 남성에게 버려진 여성, 그리고 그 여성을 사랑하는 또 다른 남성과 같은 삼각관계 및 스토리 전개가 통속적이고 진부하다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디스 워튼이 집필 활동을 할 20세기 초에는 이렇듯 자주적인 여성상의 등장이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할 삶을 누릴 수 있는 남성과의 결혼을 거부하고, 자신이 진취적으로 사랑할 남성을 선택하여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이별조차 직접 선언함으로써 확실히 끝맺음하는 채리티의 모습은 푸르른 여름날의 배경과 이디스 워튼의 문장력을 만나 소설 속에서 더욱 섬세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사랑의 형태를 곱씹어 보게 됩니다. 채리티처럼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해서 원없이 사랑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상대의 손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사랑의 저울질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별의 형태 또한 곱씹어 보게 됩니다. 채리티처럼 원없이 사랑했지만 상대가 미래를 약속하지 못할 때, 그를 사랑한 자신의 선택, 그와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부정하지 않고 사랑의 대가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는 그를 원망하고 그와의 기억은 물론 그를 선택한 나 자신조차 부정하며 혐오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