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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서히 Apr 15. 2024

[서평]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민음사

세상에는 참 천재적인 글솜씨를 지닌 작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그 중 하나로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하여 다양한 주제의 소설들을 꾸준히 써왔습니다. 그가 스물 아홉살이 되던 해에 발표한 첫 소설인 <창백한 언덕 풍경>은 그에게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안겨주었고 그 이후로도 그가 발간하는 소설들은 각종 문학 상을 휩쓸었죠. 정말 천재적인 글솜씨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이라는 책으로 가즈오 이시구로가 서른 여섯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쓴 소설입니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 살아서인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소설에서 영국적 색채를 진하게 녹여 내었습니다. 1950년대 영국 저택을 배경으로 한 어느 집사의 이야기니까요. 


[내용 요약] -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께서는 점선 부분 스킵해 주세요.


영국의 대저택 달링턴 홀을 오랜 시간동안 지켜온 집사 스티븐스는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집사라면 지성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주인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주인을 섬겨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내 탐색을 끝내고 '이 주인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고귀함과 존경할 만한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 이제부터 내 한 몸 다 바쳐 이분을 섬기겠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단언할 수 있는 순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지적으로' 부여된 충성심이다.


그는 1930년대 영국의 유명 인사인 달링턴 경을 자신이 모셨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1950년대인 현재는 비록 주인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달링턴 홀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1930년대 달링턴 경을 모시던 시절, 함께 일하던 총무 켄턴 양은 집사 스티븐스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며 그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스티븐스는 켄턴 양을 향해 커져 가는 자신의 마음을 모른 채 하며 집사로서의 업무에만 충실할 뿐이었습니다.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보다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던 켄턴 양은 결국 달링턴 홀을 떠나고, 자신에게 청혼한 남자를 따라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됩니다. 켄턴 양이 떠난 뒤에도 스티븐스는 투철한 직업 의식으로 달링턴 홀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50년대가 되자, 스티븐스는 켄턴 양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결혼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과 함께 달링턴 홀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메세지를 전합니다. 달링턴 경에서 패러데이 경으로 주인이 바뀐 달링턴 홀은 마침 인부가 부족했기에 스티븐스는 똑 부러지는 일솜씨를 지닌 켄턴 양이 달링턴 홀에 돌아온다면 이 보다 더 적합한 인부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마침 패러데이 경은 스티븐스에게 차를 내어주며 휴가를 보내주었고 스티븐스는 그 길로 켄턴 양이 있는 도시를 향해 출발합니다. 


스티븐스는 켄턴 양이 있는 서부 지방을 향해 이동하는 도중,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을 만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인 1930년대 달링턴 홀에서 일하던 시절의 추억과 상념에 젖기도 하지요. 스티븐스는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모셨던 달링턴 경이 실상은 나치 세력을 물밑에서 지원하던 핵심 역할을 했다는 기억을 떠올리지만 이내 자신이 달링턴 경의 집사로서 얼마나 훌륭한 행사들을 성공적으로 많이 유치했는지에 대한 무용담을 열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자신이 훌륭한 집사임을 설득하려 합니다. 그리고 주인의 결정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주인을 섬기는 것이 훌륭한 집사의 품위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목적지인 서부 지방에서 켄턴 양을 만난 스티븐스는 편지와 달리, 그녀가 결혼 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그녀의 편지에서 느낀 부정적 표현들은 스티븐스의 개인적인 착각이나 희망사항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만남에서 켄턴 양은 스티븐스와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있을 자리는 지금의 남편 곁이라고 일축합니다. 켄턴 양의 말에서 스티븐스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슬픔을 느끼지만 이미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에 마지막까지 켄턴 양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절대 내비치지 않습니다. 


일평생을 달링턴 홀에 다 바친 스티븐스는 젊은 시절 사랑하던 켄턴 양을 떠나 보낸 것과 나치 세력을 지원하는 달링턴 경을 향해 맹목적으로 복종함으로써 자신 역시 나치 세력에 일조한 것에 대해 후회나 회한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달링턴 홀로 돌아간 뒤, 자신의 주인인 패러데이 경이 지적한 자신의 부족한 유머감각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지 오로지 그 생각에 열중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마치 영국 영화 한 편을 본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눈 앞에 그려지는 대저택 달링턴 홀의 전경, 대저택에서 부지런히 왔다갔다하며 일하는 집사 스티븐스와 하인들. 스티븐스의 비윤리적 명령에 논리적인 태도로 항변하는 당당한 켄턴 양의 모습 등 가즈오 이시구로는 글을 통해 영화를 제작합니다. 


마지막 결말에서 스티븐스는 끝내 집사로서의 품위에만 집중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는 주인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명령도 여과없이 받들어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집사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조금 과장해서 보면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 같은 캐릭터입니다. 저는 이 결말이 꽤 신선하게 느껴졌는데요. 스티븐스가 20여년 만에 그리워 하던 켄턴 양을 만난 후 비로소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할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나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렇게 결말짓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가즈오식 결말이 훨씬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50-60대일 것으로 추정되는 스티븐스가 한평생 지니고 살아온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과도 동일할테니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가슴 한 켠에서 무언가 꿈틀거려도 애써 외면하고 짓누르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자신의 오십 평생을 굳건히 지키는 길이라 여길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이 결말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통찰력을 보았는데요. 인간에 대한 탐구가 정말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영화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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