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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r 26. 2021

치타와 달팽이 2

구별 그리고 체념

  언제부터 내가 그녀를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좋아함으로써 겪을지 모를 아픔과 상처를 두려워했으니까. 정확히는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좋아한다는 표현을 했을 때 따라올 만한 여러 어색함과 곤란함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겁을 이만큼 집어먹고는 뒤로 껑충 물러선 채 ‘좋은 사람’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했다. 솔직히 그 와중에도 전혀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막연하게 좋은 사람으로 주변에 머물다 보면 좋은 연인이 되는 날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얄팍한 기대가 겨울날 창문에 물방울이 맺히듯 자꾸 서리곤 했다.


  장애와 비장애. 그 간극을 분명하게 확인한 일이 하나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어느 수업에서 교수님을 비롯해 여타 학생들과 MT를 갔다. 여럿이 게임을 하는 중에 내가 한 ‘여학생’을 업어야 했고,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안 보이는데, 업을 수가 있나?”

  온 방이 시끌벅적한 가운데에서도 나는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을 선명하게 들었다. 순간이 그대로 멎는 듯했다.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빙글 돌았다. 듣지 못했거나 속으로만 하는 중얼거림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야속하게도 늘 그런 종류의 말은 천둥처럼 울린다.

  그래. 시각장애인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더구나 자신이 업혀야 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가질 만한 의문이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모멸감으로 후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나는 상대를 업고 일어섰다. 글쎄, 무엇에 대한 부끄러움과 모멸감이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마치 세상 모두가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안 보이는데 너 그거 할 수 있어?” 하고. 지금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이지만 확실히 어린 나에게는 개별성과 일반성을 구별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아, 비시각장애인은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 그렇게 확신했다. 얼마간은, 상대가 ‘이성’이었기에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상대를 마음에 두고 있거나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더라도 그것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뭐랄까, 내가 누군가의 애인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후보에라도 오를 수 있어야 하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너는 애초에 대상이 아니었다는 통지서를 받아든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내가 가진 수표가 진짜인 줄 알고 은행원에게 입금을 부탁했더니 은행원이 못볼걸 봤다는 얼굴로 “저, 고객님? 이거 위조수표인데요. 아니면 아이들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거 같네요.” 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그 후로 친한 비시각인 ‘여성’들에게 “만약에 시각장애인이 고백을 하면 어떨 거 같아?” 라는 질문을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던지곤 했다.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어서였다. 말하자면, “안 보이는데 업을 수가 있나?” 가 아닌, 나아가 “너는 애초에 대상이 아니었어. 신청권이 있어야 탈락을 하든지 할 거 아냐?” 외의 다른 대답과 다른 생각. 나는 그게 절실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묻지는 못했다. 차가운 진실 또는 거절도, 다소 거짓말을 포함한 따뜻한 위로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관심이 가는 상대가 생기더라도 그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후다닥 털어버렸다. 부끄러움이나 모멸감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제 수많은 커플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대학교 1~2학년 시절에도 나는 어느 로맨스나 스캔들에 휩싸이지 않았다. 웃긴 일이지만 그게 또 어떤 순간에는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거봐, 아무도 내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표시하지 않잖아 그걸 확인받은 것 같아 입안이 썼다. 나는 동기 남학생들의 거리낌없음이, 솔직함이, 때로는 무모함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신체의 ‘정상성’이 부러웠다. 그렇지 못한 나를 초라하게 여기면서.

  연애를 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중/고등학교때긴 했지만 몇 번의 연애를 거쳤다. 다만 비시각인을 마주한 경험은 전혀 없었다. 시력의 유무가 핵심에 있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나는 그동안 저시력(잔존 시력이 있는 사람)이 아닌 전맹(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 다시 말해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하고만 연애를 했어야 하는 거였다. 뒤집어 보면, 저시력하고도 충분히 연애를 했는데 그보다 시력이 더 좋은 비시각인과 만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어야 했으나 나는 기꺼이 구별과 범주를 받아들였다. 그래. 문제는 시력의 유무가 아닌, 장애와 비장애에 있었다. 나는 내가 구별과 범주를 받아들이는 만큼, 상대도 거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는 이 벽을 깨고 나에게 다가와주지 않을까 헛된 운명을 기다리곤 했다. 그래서 절망하고 체념하다가 끝내는 시간이 흐르며 정말 관심이 가는 상대가 없는 건지 아니면 없는 척을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조금은 자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라는걸. 마치 나와 친한 몇몇 이성이 충분히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게 인간적인 호감 외에 연애 감정을 품지 않는 것처럼,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상대를 마음 속 액자에 걸어두지 않는 것처럼. 무엇보다 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모두에게 또는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걸.

  더구나 내가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나는 분명히 장애가 내 연애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나로 하여금 또는 상대로 하여금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유일하면서 절대적인 요인이라고 믿었다. 어느정도 영향은 있을 거다.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하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모든 연애 또는 사랑의 실패가 장애에 기인했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어린 내게 장애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것이어서, 내가 감당할 만한 무게보다는 좀 더 많이 얹어진 것이어서 늘 거기에 관심을 쏟았을 뿐. 그래서 과도하게 중요하고, 심각하게 보았을 뿐, 정말 장애는 요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장애가 모든 것의 요인이었다면, 시각장애인이 아닌 나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였을까? 진심으로 그럴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넘어지고 깨어지고 이별에 아파하기도 하면서 사랑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사랑꾼들에 대한 모독이다. 시각장애인이어서 연애를 하지 못하는 거라면 시각장애인이 아닌 모든 사람은 사랑을 쟁취해야 하는 건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너무 사랑했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어느정도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으며, 장애 외에는 별로 모자랄 것이 없는 그런 존재라고 확신했던 거다. (웃음) 정말이지 덧없는 자신감이었다. 이것은, 장애로 인해 사랑, 연애, 설렘 앞에 작아지고 흔들리는 사람들에 대한 자그마한 응원이기도 하다. 나처럼 너무 땅굴을 파지는 않았으면 싶어서, 그러다가 자칫 존재에 구멍을 내지는 않았으면 해서. 존재의 일부를 전부로 받아들여 거기서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채 울먹거리며 길잃은 아기고양이가 되지 않았으면 해서.


  다만, 그녀가 처음 괜찮은 사람을 넘어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지던 날에, 나는 조금은 슬픈 밤을 보냈다. 그녀에게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면서 물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어린 나에게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이 그것 외에는 있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감정이 깊어진 상태가 아니어서 매듭을 질끈 동여매는 것이 가능했다. 그녀와 나의 관계를 ‘친구’로 규정하고 나니 마음이 얼마간 평평해졌다. 확실히 그때의 체념은 그리도 간단하고 성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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